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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끌마루 Dec 29. 2021

하려고 하면 길이 보인다

 자전거는 말이 필요 없는 정말 좋은 운동이다. 처음에는 자전거 구매에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간다. 나의 경우 입문자용으로 저렴하게 나온 50만 원 대의 하이브리드 자전거로 시작했다. 50만 원이 비싸다고 할 수 없는 것이 자전거는 다른 운동처럼 다달이 나가는 수업료가 없다. 집 근처 구립체육센터에서 수영을 배웠을 때 한 달 레슨비가 6만 원가량 했었다. 일 년이면 72만 원이다. 물론 자전거를 타다 보면 자전거 전용 신발, 자전거 전용 의복, 헬멧, 자전거 업그레이드 비용 등... 돈이 계속 들어간다. 그러나 헬멧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개인의 취향에 속해서 사지 않아도 무방하다.

 잘 닦인 자전거 도로는 항시 무료 개방이다. 대관료가 없다.

 자전거를 열심히 타면 배가 쏙 들어간다. 단, 조건이 있다. '자전거를 타니까, 많이 먹어도 되겠지'하고 평소보다 많이 먹으면 체중도, 뱃살도 줄지 않는다. 그래도 더 찌지 않고 현상을 유지할 수 있으니, 안 하는 것보다는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자전거는 유산소 운동과 하체 근육 운동의 효과를 동시에 볼 수 있다. 스트레스 해소는 덤이다.

 자전거를 탄지 5개월이 되었을 무렵, 병원에 가서 4달마다 하는 피검사를 받았다. 중성지방 수치와 나쁜 콜레스테롤(LDL) 수치가 평균보다 낮았다. 지난 5개월의 평균 혈당을 나타내는 당화혈색소 수치 역시 좋았다. 피검사 결과를 보신 의사 선생님은 "어머, 이게 무슨 일이래요? 이런 수치를 본 적이 없어요." 하시며 놀라워했다. 자전거를 타면 피도 맑아진다.


 이렇게 좋은 운동을 일 년 내내 할 수 없다는 점이 너무 아쉽다. 자전거는 야외에서 즐기는 운동이라서 날씨와 공기질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봄에는 황사와 미세먼지 때문에, 여름에는 장마와 30도를 넘나드는 해 때문에, 겨울에는 매서운 추위 때문에 밖에서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날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래도 타려고 하면 방법은 있다. 여름에 자전거를 얼마나 자주 탔는지, 알고 싶어서 에버노트에 저장해 놓은 나의 자전거 일지를 살펴봤다. 여름 더위가 시작되는 소서(음력 7.7)부터 가을에 접어드는 입추(8.7)까지 비 오는 날을 제외하고 자전거를 탔다. 9시만 넘어도 해가 뜨거워서 한나절이 소요되는 장거리는 못 탔다. 오전 6시에 나가서 오전 9시 전에 돌아올 수 있는 짧은 거리를 달리는 대신 남산이나 아이유 고개처럼 업힐을 골라 탔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12월도 여름과 마찬가지로 40km 안팎의 단거리만 달리고 있다. 겨울이지만 한낮의 기온이 10도를 넘는 날, 시험 삼아 60km, 80km를 달려본 적이 있었다. 달릴 때는 안에 여러 겹으로 끼어 입은 옷들이 다 젖을 정도로 땀이 나서 추운 줄 몰랐다. 그런데 잠깐 쉬는 동안 체온이 뚝 떨어져서 몸이 오들오들 떨렸다. 10분 이상은 쉴 수가 없었다. 충분히 쉬지 못한 상태에서 맞바람의 저항을 받으며 페달을 밟으니 체력 소모가 심했다. 100km를 달려도 거뜬했던 체력이었는데, 그날은 집에 와서 그대로 뻗고 말았다. 한여름 라이딩처럼, 한겨울 라이딩도 짧고 굵게 타야 할 것 같다.


 안 하려고 하면 할 수 없는 이유들만 생각난다. 반대로 '하려고 하면' 할 수 있는 길이 보인다.  

우리 뇌에는 입력된 목표에 따라 우리를 원하는 곳으로 데려가는 생체 경로 탐색 시스템이 있다.
<결국 해내는 사람들의 원칙>, 피즈·앨런, 반니

 이 시스템의 이름은 '망상 활성계'(Reticular Activating System)이다. RAS는 감각기관을 통해 몸에 들어온 정보를(후각정보는 예외. 후각 정보는 뇌의 감정 처리 영역으로 바로 직행) 취사선택해서 대뇌피질로 보내는 망이다.

 우리 뇌는 1초에 4억 비트 이상의 정보를 처리한다. 이중 2000비트 만이 의식으로 들어온다. 매일 뇌로 들어오는 정보의 99.9999%가 들어오는지도 모르고 무시되는 셈이다. 이렇게 많은 정보가 무시되고 있는데도 하루 중 내 의식 속으로 몰려오는 생각의 양은 '오만 가지'가 넘는다. 일상을 건강하게 살아내려면 '불필요한 정보 걸러내기'는 필수다. 이 고마운 일을 해주고 있는 게 RAS이다.

사진 출처 Pixabay


 RAS가 밀려드는 정보에서 중요한 정보만 추려내 뇌로 보내면 뇌는 그 정보가 만들어내는 이미지에 딱 들어맞는 행동을 취할 것을 몸에게 명령한다. 내가 하고 싶은 행동, 원하는 행동이 있다면 RAS에게 알려주면 된다. 그러면 RAS가 알아서 길을 찾아낸다.

RAS에는 일종의 내장형 GPS가 있다. 어디로 갈지만 결정하면 GPS가 원하는 곳에 데려다준다. GPS가 있으면 어디로 가겠다는 것만 알면 될 뿐 거기까지 가는 방법은 알 필요가 없다. RAS도 마찬가지다. 목표와 목적이 수립되면 RAS가 그리로 연결된 것들을 알아서 선별한다. 어디로 갈지만 정하면 RAS가 알아서 내가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준다.
<결국 해내는 사람들의 원칙>, 피즈·앨런, 반니  


 자전거에 꽂히면 자전거만 보이고, 글쓰기에 관심이 생기면 서점에 진열된 그 많은 책 중 글쓰기 관련 책만 보이는 게 RAS 때문이다. 내 마음에 어떤 목표를 입력하느냐가 중요할 뿐, 방법은 문제가 아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서울의 날씨는 '영하 1도'이다. 내일은 모처럼 한낮의 기온이 '영상 4,5도'까지 올라간다고 한다. 겨울에도 자전거를 타고 싶어 하는 내게 이 기상 예보는 '내일은 자전거를 탈 수 있겠어'라는 말로 들린다. 같은 말도 마음에 입력된 목표에 따라 다르게 들릴 것이다. 입력된 값이 없는 사람에게는 무시해도 좋은 정보가 될 테고.

마음이 무엇을 품고 무엇을 믿든 몸이 그것을 현실로 이룬다.
<나폴레온 힐, 1937>

 2021년도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내년에는 마음에 어떤 목표를 입력할까?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으면서 소박하지만 내가 정말 이루고 싶은 일들을 찬찬히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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