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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끌마루 Jan 06. 2022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일어날 사고는 일어난다

 2022년이 되었다. 코로나 확산으로 올해도 1월 1일 오전 6:00-8:30까지 남산 팔각정과 전망대 일부는 폐쇄되었다. 오래전, 남편과 함께 새해맞이 이벤트로 일출을 보러 남산에 간 적이 있었다. 매일 오르는 남산이지만 그날처럼 그렇게 많은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차도는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버스와 신문, 방송국 차량들로 붐볐고, 인도는 일출을 보러 가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그런데 올해는 조용하다. 남측 순환 도로를 올라가는 버스 안에는 빈 의자만 가득하고, 인도에는 새해 아침부터 힘차게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과 자전거를 타고 언덕을 오르는 몇몇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달리기와 라이딩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인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머리가 시리고 귀가 얼 것 같은 영하 10도의 추위 속에서 저렇게 얇은 옷을 입고 달릴 수는 없다.

 한 동안 발뒤꿈치가 아파서 달리지 못한 나는 그들을 따라 달려본다. 심박수가 170을 찍고 발뒤꿈치에서 통증이 느껴져 달리기를 잠시 멈추고 다시 걸어본다. 심박수와 통증이 가라앉자 나는 다시 달리기를 시작한다. 앞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 때문에 볼이 얼어붙고 귀가 나가떨어질 것 같이 아프다. 콧물은 닦아도 계속 흐른다.

 그러나 심장은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심장은 혈관을 통해 열에너지를 내 몸 구석까지 실어 나르며 동면상태에 빠져 있는 내 몸을 마구잡이로 깨운다. 내 몸은 그제야 기지개를 켜고, 내 마음은 다시 기운과 희망에 차오른다.

 사람들은 사람을 신체와 정신, 몸과 마음으로 나눈다. 그러나 이 둘은 하나다. 몸의 병이 마음의 병으로 이어지고, 마음의 병이 몸의 병으로 발전하는 것처럼 몸과 마음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공동운명체다. 몸을 돌보지 않으면 몸은 물론이요 마음과 정신까지 망가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다 알고 있다.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되어 있다.

 작년 4월 말에 자전거를 사고 발바리처럼 열심히 여기저기 다니면서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는 사실을 체험했다.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테지만,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일부터 말해보겠다.


 나의 자전거 사고 일지(2021년 5월~11월)

 작년에 내가 경험한 사고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첫 번째 큰 사고는 자전거를 탄지 한 달도 안 돼서 발생했다. 암사둔치 생태공원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헬멧이 안경을 눌러 안경이 아래로 쳐지는 감이 있어 왼손으로 안경을 들어 올리려고 하는 찰나, 자전거가 중심을 잃고 심하게 좌우로 요동치다가 오른쪽 옆에 있던 펜스에 크게 부딪혀 쓰러지고 말았다. 자전거가 쓰러지면서 나도 자전거 도로 위로 나가떨어졌다. 오른쪽 머리가 먼저 바닥에 쿵 하고 부딪혔고 나의 허벅지는 자전거에 깔려 심한 타박상을 입었다(자전거 무게가 13kg쯤 되니까 13kg 덤벨이 허벅지에 떨어졌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 정도로 아프다.)

 그 와중에 나는 내 뒤에 오는 자전거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용수철처럼 바로 일어나 쓰러진 자전거를 세우고 뒤를 살폈다. 내가 생각해도 놀라운 반사 반응이었다. 감사하게도 자전거 도로에는 나밖에 없었다. 아픔과 부끄러움을 느낄 새 없이 나는 얼른 자전거를 끌고 자전거 도로에서 나왔다. 이 사고의 여파로 허버지가 시퍼렇게 멍들어 2,3일은 자전거를 타지 못했다.

광진구 자전저공원 인증센터 옆, 여기서 할아버지를 칠 뻔 했다.

 첫 번째 사고는 나 혼자 다치는 것으로 끝났지만 두 번째는 사람을 칠 뻔했다. 그것도 나이 드신 할아버지를. 광진구 자전거공원 인증센터 옆을 시속 20km 이상으로 달리고 있는 데 갑자기 100m 앞에 할아버지 한 분이 지팡이를 짚고 자전거 도로를 건너가고 계시는 게 아니겠는가! 나는 놀라서 브레이크를 잡았다. 내 기억으로는 자전거가 할아버지 바로 앞에서 멈춰서 할아버지를 치지는 않았다. 다만 할아버지가 놀라서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때 손 등에 가벼운 찰과상을 입으신 것 말고는 다치신 데가 없어서 정말 감사했다. 문제는 나와 자전거였다. 빠른 속도로 달리던 자전거에 갑자기 브레이크를 걸자, 자전거는 멈춤과 동시에 포물선을 그리며 인도 쪽으로 '쿵'하고 떨어졌다. 그러면서 체인이 풀려버렸다. 나도 자전거와 함께 공중에 떴다가 떨어졌지만, 이번에는 자전거에 깔리지 않아서 멍이 들지는 않았다.  

 나는 일어나자마자 할아버지 상태를 살피고 연신 '죄송하다'라고 고개를 숙였다. 할아버지는 자신이 좌우를 살피지 않고 자전거 도로를 건너려고 한 게 잘못이라며 괜찮다고 하셨다. 지나가던 아저씨가 이 사고를 목격하고 다가와 할아버지에게 '그래도 모르니 전화번호라도 받아 두라'라고 했지만, 할아버지는 '괜찮다'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가던 길을 가셨다. 얼마나 감사하던지, 나는 인도에 널브러져 있는 자전거를 잠시 그대로 두고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계속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감사합니다. 할아버지의 너그러운 마음, 잊지 않겠습니다."

 나의 가슴을 훈훈하게 해 주는 또 다른 사고는 남편과 함께 춘천에 가다가 발생했다. 구리시 한강 시민공원을 지나 수색교로 가는 길에서 무리하게 앞에 가는 사람을 추월하다가 크게 넘어져서 겨울 라이딩용으로 산 새 바지의 무릎 부분이 찢어졌다. 뒤따라오던 남편의 말로는 내 자전거 뒷바퀴와 내가 추월하려고 했던 분의 자전거 앞바퀴가 살짝 닿았는지, 닿을 뻔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정말 위험한 상황이었다고 했다. 만약 내 자전거 뒷바퀴와 그분의 자전거 앞바퀴가 부딪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만 해도 눈앞은 캄캄, 머리는 하얘진다. 어쨌든 추월당한 사람 입장에서 '미쳤어. 당신 때문에 다칠 뻔했잖아.'라고 크게 화를 낼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분은 쓰러진 나를 걱정하며 오히려 '괜찮으세요?'라고 물어봐 주셨다. 뒤에서 자전거를 타고 오던 나이 드신 분도 가던 길을 멈추고 '괜찮아요? 나도 자전거 도로에서 8번 이상은 넘어졌어요. 조심하세요.' 하며 매서운 욕이 아니라 따뜻한 조언을 해주셨다.

 자전거를 타다가 나의 잘못으로 넘어질 때마다 그런 나를 모른 척 지나치지 않고 '아이고, 이런. 괜찮아요?'라고 물어봐 주는 분들을 자주 만난다. 자신의 일도 아닌데 자신이 사고를 당한 것처럼, 나의 상태를 염려해 주는 분들을 만날 때마다 '세상이 아직은 살만한 곳'이라는 것과 '괜찮아요?'라는 말이 주는 힘을 느낀다. '괜찮아요?'라는 말은 어떤 힘든 상황도 긍정적으로 보고 감사하게 한다.

무릎과 팔에 찰과상을 입은 것 말고는 다친 곳이 없어서 감사하고, 나 혼자만 다쳐서 감사하고, 숨어 있는 좋은 분들을 발견해서 감사합니다.
내 뒤를 빠른 속도로 따라오던 분이 내가 코너에서 중앙선을 살짝 침범하자 입에 담지 못할 험한 욕을 계속 퍼부었던 추억의(?) 장소

 그러나 세상에는 마음이 넓은 사람들만 있지 않다. 직각으로 꺾이는 코너에서 속도를 줄이고 브레이크를 잡아야 하는 타이밍을 놓쳐 그만 중앙선을 살짝 넘은 적이 있었다. 반대편에서 오던 분이 그런 나를 보고 재빠르게 피해 가셔서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자전거를 타고 내 뒤를 바짝 따라오던 아저씨가 뒤에서 이 상황을 보고 나에게 '이 미친**야! 죽고 싶어!' 하며 욕 펀치를 날렸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마치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나에게 쏟아붓기라도 하듯이 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거친 말을 계속 퍼부었다. 면전에서 그런 욕을 먹었다면 충격이 커서 한 동안 자전거를 못 탔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다행히 헬멧과 고글과 마스크에 가려 그분의 얼굴을 볼 수 없었고, 그분이 나보다 빨라서 거친 욕들이 나의 귀에 닿기도 전에 공중으로 흩어져버렸다. 잘잘못을 떠나서 과도한 욕 때문에 불쾌하고 화가 났지만, 그래도 이 날 욕을 먹은 뒤로 코너가 나오면 조심하게 된다. 욕도 필요하면 먹어야 한다.


 전화위복

 위에 열거하지 못한 사고들까지 합치면 근 6개월 동안 10번 이상은 넘어진 것 같다. 사고를 겪은 뒤에는 반드시 자전거 대리점이나 수리점에 방문해서 자전거 점검을 받아야 한다. 사고의 여파로 자전거에 미세한 균열이 가 있을 수도 있고, 기어에 이상이 생겼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다. 자전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육안으로 문제가 없어 보이니 괜찮겠지 마음대로 생각해 버렸다. 그러다가 결국 2021년 11월 11일 중랑천에 갔다가 집으로 오는 길에 기어를 바꾸다가 자전거 뒷 변속기가 '아작' 나고 말았다. 기어 변속기가 잦은 사고로 충격을 받아 휘어졌는데, 내가 그걸 모르고 무리하게 기어를 바꾸다가 부러진 것이었다. 집 앞에서 이런 일을 당한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자전거 뒷 변속기

 자전거를 끌고 집에 도착한 나는 남편에게 "나의 부주의함 때문에 자전거 뒷 변속기가 부러졌어요."라고 자책하며 말했다. 남편은 "탈만큼 탔잖아요. 수업료 지불했다고 생각해요." 하며 나를 위로해 주었다. 남편의 말이 맞다. 50만 원짜리 자전거로 달린 거리가 계산해보니 3,400km 나 되었다(4월 말~11월 초 까지). 내 생애 처음 산 자전거로 가보고 싶은 곳은 다 가봤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 북한강 자전거길을 따라 춘천도 가봤다. 그래서 후회는 없다.

  내가 다시 과거로 돌아가 자전거를 처음부터 다시 배운다면 사고가 나지 않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일어날 사고는 일어난다. 사고가 나에게는 '전화위복'(轉禍爲福, 화가 바뀌어 오히려 복이 된다는 뜻)이 되었다. 사고 덕분에 자전거 도로에서 가슴 따뜻한 분들을 만났다. 사고는 나의 몸에 '자전거를 탈 때 해서는 안 될 위험한 행동'이 무엇인지, 깊이 새겨 넣었다. 무엇보다 사고로 내 자전거가 하이브리드에서 로드로 업그레이드 되었다.

왼쪽이 로드 자전거, 오른쪽이 하이브리드 자전거

 남편은 처음부터 나에게 로드용 자전거를 추천했다. 하지만 내가 거부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로드용 자전거 핸들이 익숙하지 않아서 중심을 잡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딱 한 번 타보고 '나는 로드용 자전거 못 타'라고 결론을 내려버렸던 것이다. 공자께서 마흔을 불혹(不惑)이라고 했다.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지혜로운 나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나는 '지혜'대신 '고집'만 늘었다 보다. 전에 경험해 보지 않은 것은 일단 겁내고 거부하니 말이다. 사고로 자전거 뒷 변속기가 부러지고 나서야, 남편의 제안을 전격 수용해서 로드용 자전거로 갈아타기로 했다.

 변속기를 수리하는 대신 로드용 자전거를 사기로 했다. 자전거 무게는 기존의 것보다 2kg 가볍고, 자전거의 타이어 폭도 38mm 에서 32mm로 얇아졌다. 이 말은 평균 속도가 3,4km 이상 빨라졌다는 뜻이다. 실제로 로드용 자전거를 타보니 하이브리드보다 가볍고 빨랐다. 특히 오르막에서 속도 손실, 힘 낭비가 덜했다. 적은 힘으로도 더 빨리, 더 가볍게 언덕을 올라갈 수 있었다. 나의 평균 속도도 최대 시속 19km 에서 25km까지 올라갔다. 내가 왜 처음부터 로드 자전거를 타지 않았을까, 후회가 되었다. 로드 자전거가 하이브리드 보다 중심 잡기도 훨씬 쉬웠다. 자전거 도로에서 나는 더 이상 하이브리드 자전거들에게 추월당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하이브리드 자전거들을 추월한다.

 자전거에 푹 빠진 자전거 덕후들을 보면서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대단하다. 나는 저 사람들만큼 자전거를 탈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어느새 나도 그들처럼 클릿슈즈(자전거 전용 신발)를 신고 있고, 로드용 자전거로 갈아탔고, 자전거 덕후들이 추천한 몇몇 코스에 다녀왔다. 2022년에는 남편과 함께 국토종주에도 한 번 도전해 보려고 한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는 말이 맞다. 어떤 일을 좋아하다 못해 사랑하면 사랑에 빠진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일어날 일이 나에게도 일어난다.

 그러니 앞으로 일어날 일을 겁내지 말고 먼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탐색해보자. 사랑에 빠져도 후회하지 않을 일을 찾았다면, 그 길로 계속 가자. 다른 사람은 뭘 하고 있나, 기웃거리지 말고 앞만 보고 그냥 뚜벅뚜벅 걸어 가자. 그러면 사랑에 빠진 사람들에게 일어날 일이 일어날 것이다.


*덕후_특정 관심사에 깊이 빠져 고립된 생활을 하는 사람. 1970년대 일본에서 생겨난 단어 ‘오타쿠’를 한국식 발음으로 줄여서 부르는 말. 지금은 긍정적인 의미로, 한 분야에 깊이 있게 빠진 사람을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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