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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끌마루 Jan 19. 2022

좋아 보이는 것과 좋은 것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권태기 극복법  

  아프리카 속담에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다. 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 남편의 도움을 약간 받은 것 말고는 주로 나 혼자 연습을 했다. 나에게 맞는 훈련 계획을 세우고 실행한 결과, 중거리 정도는 거뜬히 다녀올 수 있는 체력이 생겼다. 또 나의 소원이었던 '자전거 타고 남산의 남측 순환도로 오르기'와 '아이유·소찬휘 고개', 양평의 '후미개 고개'까지 쉬지 않고 올라가는 놀라운 성과를 냈다.  

  2년 전, 따릉이 타고 10km도 못 가서 출발지로 되돌아왔던 나의 체력을 생각하면 정말 많이 성장했다. 이렇게 빨리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혼자' '집중해서' 연습하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목표를 세우고 실행 단계를 설계하고 바로 움직였기 때문에 자전거 초보에서 빨리 졸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자전거를 오래, 꾸준히 타려면 역시 '함께' 할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나의 경우, 토요일마다 남편이 함께 자전거를 타 주었기 때문에 남한강 자전거길로는 양수리 넘어 양평, 이포보, 여주보까지, 북한강 자전거길로는 춘천까지 갈 수 있었다. 자전거 타기에 권태를 느낄 무렵에는 권산 TV와 쭈파크님이 유튜브에 올린 영상을 보면서 라이딩 불씨를 되살릴 수 있었다.  

  나를 다시 자전거에 앉힌 두 코스는 '공릉천 순환코스'와 '국립 수목원 북부 순환 자전거길'이다. 두 코스 다 처음 가는 길이라 기대가 되었다. '공릉천 순환코스'는 여러 사람이 영상을 찍어 유튜브에 올릴 정도로 인기가 많은 코스 같았다. '국립 수목원 북부 순환 자전거길'은 최근에 생긴 길로, 쭈파크님은 '이 코스만 왔다 갔다 하고 싶을 정도로 너무 좋다'라고 했다.

  권산님과 쭈파크님이 영상편집을 잘해서 그런가, 두 곳 다 내 눈에 좋아 보였다. 그러나 좋아 보이는 것이 나에게 좋은 것인지는 직접 가서 확인해 보지 않으면 모른다. 이렇게 해서 나의 권태기는 막을 내렸다. 나는 다시 자전거를 끌고 밖으로 나왔다.  

 

 좋아 보였던 국립 수목원 북부 순환 자전거길

국립 수목원으로 가는 북부 순환 자전거길(2km). 이 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3km 정도 공도를 타고 가면 국립 수목원이 나온다.

  국립 수목원은 광릉 수목원으로 불리기도 한다. 옥수에서 자전거를 타고 출발하면 국립 수목원까지 3시간 안에   있다(쉬는 시간 포함). 이번에는 국립 수목원 북부 순환 자전거길이 끝나는 지점까지만 갔다가 되돌아왔다.

  자전거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광릉 수목원까지 대략 3km 정도 공도를 타야 한다. 짧은 거리지만, 2차선이라서 자동차보다 빨리 달리지 않으면 자동차 주행에 방해가 될 수 있었다. 시속 30km 이상으로 업힐을 달릴 자신이 없어서 이번에는 안전하게 새로 생긴 국립 수목원 북부 순환 자전거길만 보고 왔다.

  영상을 보고 기대를 많이 해서 그런가. 나는 쭈파크님 만큼 좋지 않았다. 인터넷에서 찾아본 어떤 글에서는 "짧아도 운치 만점의 숲길"이라고 소개했던데,  나에게는 '운치 1점' 정도였다.

  2시간 이상을 달려 도착한 자전거길이 5분? 10분? 만에 끝나버리니 허무했다. 쭈파크님은 사색하기 좋은 길이라고 했는데, 사색하기에는 너무 짧았다. 다음에 다시 방문하면 후한 점수를 줄 수 있을까? 그래도 '만점'은 아닐 것 같다.

  내가 실망한 이유는 뭘까? 그건 내가 남산 근처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자전거를 배우기 전 나는 하루에도 2,3번 남산에 갔다. 남산 타워, 남산 둘레길, 야외 식물원 등 남산에서 안 가본 곳이 없다. 사시사철 거의 매일 가서, 남산의 사계절을 다 경험해봤다.

  메마른 가지에 돋아난 어린잎이 하루가 다르게 자라서 나무를 초록색으로 덮어버리는 과정을 놀람과 경이로운 시선으로 지켜봤다. 초록색 잎들이 여름에는 그늘막이 되어 산책하는 사람들의 더위를 식혀 주었고, 찬바람이 부는 가을에는 붉고 노란 잎으로 바뀌어서 추운 마음을 훈훈하게 데워 주었다. 잎이 다 떨어져 앙상한 자태를 드러낸 겨울나무들은 저녁에 보면 "운치 만점"이었다. 나무 가지 사이로 보이는 서울 시내의 야경은 너무 맑고 깨끗해서 눈이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다.

  365일, 남산에서 눈 호강을 즐기는 나에게 2km 남짓하는 국립 수목원 북부 순환 자전거길이 성에 찰리가 없는 게 당연했다. 그러나 평소 빌딩과 아파트 숲에 막혀 진짜 자연을 접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국립 수목원 북부 순환 자전거길'이 복잡한 마음과 머리를 맑게 비워낼 수 있는 '좋은 시간, 좋은 경험'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좋아 보이는 게 다 나에게 좋은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에게 좋다고, 나에게 좋은 것도 아니다. 우리는 다 다르게 태어났기 때문이다. 겉으로 똑같아 보이는 일란성쌍둥이도 유전적으로는 100% 같지 않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다른 사람에게 좋은 것이 나에게도 좋을 것이라며 무턱대고 따라 할 필요도, 나에게 좋으니 너에게도 좋을 것이라며 나에게 좋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할 필요도 없다. '아, 그렇구나.' '너의 말처럼 좋아 보여'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쳐 주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그러나 이번 라이딩처럼, 좋아 보이는 것, 끌리는 것을 하다 보면 나에게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알아낼 수 있다.   


 좋았던 공릉천 순환코스(71km)

파주 평화누리 자전거길

   파주 평화누리 자전거길을 따라가는 공릉천 순환코스는 71km 밖에 되지 않는 중거리 코스지만, 공릉천 순환코스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방화대교 북단까지 가는 거리가 있어서 결과적으로 총 110km를 달려야 하는 장거리 코스다. 그런데도 또 가고 싶을 만큼, 나에게는 좋은 코스였다(일주일 후, 나는 다시 공릉천 순환코스에 다녀왔다.)

  국립 수목원으로 가는 북부 순환 자전거길은 너무 짧아서 힘들이지 않고 갈 수 있었지만, 늘 보던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그냥' 그랬다. 그러나 파주 평화누리 자전거길을 따라가는 공릉천 순환코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나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것도 올해 나의 목표 달성을 도와줄 경험이었다.

  2022 나의 목표  하나는 '아라 서해갑문에서 낙동강 하구독(국토종주, 633km)까지 완주하기다. 파주 평화누리 자전거길을 따라 공릉천 순환 코스를 돌면서,  가꿔진 한강의 자전거길과 다르게 삭막하고 거친 지방의 자전거길을 달리는 기분을 미리 경험할  있었다.   몸이 자전거 위에서  시간까지 버텨줄  있는지 시험해   있었다. 본격적으로 국토종주에 도전하기 전에 모의시험을 치르는 느낌이었다. 덕분에 '국토종주를 하면 이런 느낌이겠구나' 체험하고 '나도   있겠다' 자신감을 얻어   있었다.

왼쪽은 공릉천으로 가려면 거쳐야 하는 비포장도로, 오른쪽은 비포장도로에서 보이는 공릉천 하류, 철새들의 도래지다.

  국토종주 예행연습이 아니더라도 공릉천은 나의 뇌와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파주 평화누리 자전거길에서 나와 공릉천으로 진입하기  3km 비포장도로 때문에 나의 엉덩이는 너덜너덜해졌지만, 겨울을 나기 위해 공릉천을 찾아온 철새들과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강물, 성인 키만큼 자란 억새풀밭을   있었다.  낙동강 하류에서나   있는 풍경을 고양시에서 보다니, 로또에 당첨된 기분이었다. 자전거를 배우지 않았다면, 멀쩡한 사지를 갖고 있지 못했다면, 아이들과 남편의 배려심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자전거길이 깔려 있지 않았다면, 결코 누리지 못했을 호사 같아서 지금 여기 내가 살아있는  기쁘고 감사했다.  기쁨, 감사는 내가 무엇을 많이 성취하고 많이 가져서 누리는 행복이 아니었다. 크게 이룬 것도, 많이 가진 것이 없음에도 감사하고 황홀한 기쁨이었다.  

왼쪽은 억새풀, 오른쪽은 공릉천에 찾아온 철새들.

  '사지 멀쩡하게 살아있음' 너무 단순한 사실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은 사실에 감격하고 감사하는 마음, 지금으로도 충분히 넉넉해서 뭔가를  바라지 않는 마음,  마디로 하면 자족.  자족감은 행복을 담는 그릇이라고   있다. 가진  많다고, 목표한 바를  이루었다고 행복한  아니다. '자족'이라는 튼튼한 그릇이 있어야 행복을 담을  있다. 나는 공릉천 순환코스에서 자족감을 발견하고  안에 행복을 담을  있었다.

  '감사하면 달라지는 것들'에서 제니스 캐플런은 '물건보다는 경험에서 얻는 즐거움이 더 지속적이다'라고 했다. 공릉천에 다녀온 지 2개월이 넘었다. 한낮에도 기온이 영하권에 머물러 있어서 잠시 자전거를 안 타고 있지만, 공릉천 순환코스에서 받은 '행복과 기쁨'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있다.


 나에게 좋은 것 찾기, 늦지 않았다.

  남이 가진 것, 남이 하고 있는 것이 좋아 보이는 이유가 뭘까. 나에게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아직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나에게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좋아 보이는 것'에 마음이 끌리지 않는다. 처음부터 그건 나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노력해서 '좋아 보이는 것'을 '나의 것'으로 만들었다 쳐도 나에게 좋은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무거운 짐덩어리가 될 뿐이다.

  나에게 '좋은 것'을 찾아가는 과정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타고난 마라톤 선수가 아닌 이상 제 체력에 맞게, 속도를 조절하면서 근육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달려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옆사람을 보지 말고 나에게 집중해야 한다.

  나에게 '좋은 것'이 무엇인지 발견하기 위해, 내가 처음 시도한 것 중 하나가 익숙한 환경, 익숙한 사람들과 '거리두기'였다. 하루에 단 몇 분이라도 나만의 시간을 갖고 나를 인터뷰해봤다. '언제 행복해요?' '혼자 있을 때 주로 뭘 하세요?' '언제 화가 나요?' '왜 화가 나죠?' '당신에게 충분한 시간과 돈이 주어진다면 무엇을 하고 싶으세요?' 이 인터뷰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시간을 두고 다시 같은 질문을 나에게 던져봤다. 계속 같은 답이 나온다면, 그게 나에게 '좋은 것'일 가능성이 짙다.


 나에게 좋은 것이 무엇이지 알게 되면 삶이 달라진다.

  나에게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알고 나서 사람들의 요구에 당당하게 '아니오'라고 거절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이 나에게 바라는 대로 내가 행동하지 않아서 미움을 받을까,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사람들의 요구가 나에게 좋지 않다면, 그 일은 오래 할 수 없다. 나중에 후회할 바에 처음부터 미움받을 각오를 하고 거절하는 게 낫다. 또 나에게 좋지 않은 일, 다른 말로 해로운 일을 오래 하면 정신이나 신체 어딘가에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 건강은 유리공과 같아서 한 번 깨지면 원래 상태로 되돌릴 수 없다. 나와 너의 행복과 지속 가능한 관계를 위해서, 나에게 좋은 것을 아는 것은 너무 중요하다.

 어떤 개그맨이 방송에서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는 때가 정말 늦은 때다'라고 말한 것을 들었다. 다른 사람을 웃기려고   소리라면 성공이다.  개그맨의 역발상에 나도 '피식'하고 웃었으니 말이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때가 가장 빠를 때다. 하루  15 만이라도 나에게 시간을 주자. 나에게 '좋은 ' 무엇인지, 스스로 탐색해보고 시도해   있는 자유를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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