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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끌마루 Feb 02. 2022

자전거 타고 춘천에 가면 보이는 것들

 춘천, 자전거 배우면 정말 가고 싶었던 곳

 자전거를 배우고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것 2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남산의 자전거 부대들처럼 나도 자전거를 타고 남산의 남측순환도로를 올라가는 것이고, 두 번째는 북한강 자전거길을 따라서 춘천에 가는 것이었다. 첫 번째는 자전거를 배우고 두 달도 안 돼서 이루어졌다. 두 번째 바람은 첫 번째 소원이 이루어지고 딱 3개월 지나서 성취됐다.

 '교육에서 주위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라는 고사성어를 자주 사용한다. 맹자의 어머니가 어린 맹자를 바르게 키우기 위하여 이사를 세 번 하였다는 일에서 비롯된 말이다. 맹자의 어머니와 맹자는 처음 묘지 가까이서 살았다. 어린 맹자는 매일 장사 지내는 것을 보고 그 흉내를 냈다. 그래서 맹자 어머니는 집을 시장 근처로 옮겼다. 그런데 어린 맹자가 거리에서 물건 파는 것을 보고 그 흉내를 냈다. 맹자 어머니는 어린 아들의 교육을 위해 서당이 있는 곳으로 집을 옮겼다. 그제야 맹자는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한다.

 내가 자전거 이야기를 하다가 '맹모삼천지교'를 꺼내 든 이유는, 내가 자주 보는 것과 나의 바람이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남산은 내가 자주 가는 산책코스이자 달리기 코스이다. 거기서 자전거 부대를 만나지 못했다면 '나도 저 사람들처럼 자전거를 타고 남산에 오르고 싶다'는 꿈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한강 자전거도로에서 북한강 자전거길을 따라 춘천에 가는 라이더들을 봤기 때문에 '나도 언젠가 저들처럼 춘천에 가고 말겠어'라는 결심을 할 수 있었다. 내가 읽는 책이 나가 누구인가를 말해주듯이 내가 자주 보는 사람이 나를 만든다.

 

 나의 추억 속 춘천

 나에게 춘천은 애틋한 추억의 장소이다. 내가 처음 춘천에 간 것은 2015년, 1월이다. 남편이 퇴사를 앞두고, 남은 휴가를 다 써야 한다며 급한 대로 서울에서 가까운 춘천이나 갖다오자고 했다. 남편이 새 직장을 구하지 못한 채 퇴사해서 마음이 무거운데 날씨까지 추웠다. 나는 춘천에 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어찌하겠는가. 남편이 가자고 하니 갈 수밖에.

 초등학교 3학년에 올라가는 큰 아이와 이제 곧 초등학생이 되는 둘째 아이는 기차를 타서 좋아라 했다. ITX를 타고 춘천역에 도착한 우리는 '이제 뭘 하지?' 잠시 방황했다. 아무 계획 없이 무작정 서울을 떠나 왔기 때문이다. 그때 마침 '춘천 시티 투어' 버스가 출발하려고 했다. "저거 타고 춘천이나 한 바퀴 돕시다."

 남편이 이끄는 대로 나와 아이들은 춘천 시티 투어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를 타자마자 눈발이 날렸다. 금방 그칠 눈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눈이 온다며 좋아했다. 나도 좋았다. 눈 때문에 우리의 여행이 더 특별해진 느낌이었다.

 춘천 시티 투어 버스 여행은 알차고 즐거웠다. 잘 짜인 프로그램 때문에 반나절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춘천 여러 곳을 가볼 수 있었다. 강원도립화목원에도 가보고, 날리는 눈발 속에서 소양강 댐 위를 걸어도 보고, 춘천에서 유명한 닭갈비도 먹어 보고, 옥광산에 가서 옥동굴 체험도 해보고, 춘천 국립박물관에서 달콤한 핫초코도 먹어봤다.

 남편의 퇴사와 생각보다 길어진 이직 준비 기간으로 우리 가정은 잠시 경제적 불안에 놓이게 되었다. 하지만 나와 아이들은 과중한 업무에 뺏겼던 남편과 아빠를 잠시나마 되찾을 수 있었다. 함께 한 시간이 부족해서 서먹서먹했던 남편과 아이들의 관계는 다시 활기를 띠었다. 아이들 교육에서 동상이몽이었던 나와 남편은 한 공간에서 두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관찰하며 성인이 된 두 아이의 모습을 함께 그려나갈 수 있었다.

 춘천 여행이 나에게 특별한 이유, 달라도 너무 달랐던 나와 남편이, 남남이었던 남편과 아이들이 비로소 하나가 되어가기 시작한 출발점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남편의 갑작스러운 퇴사로 마냥 기뻐할 수 없었던 춘천 여행이 아이러니하게도 내 평생에 잊지 못할 아름다운 장면이 되었다.


 자전거 타고 다시 찾아가는 춘천

 그로부터 6년이 지났다. 나와 남편은 다시 춘천에 가보기로 했다. 이번에는 자전거를 타고 간다. 2021년 9월 3일, 나와 남편은 꿀잠에 빠진 사내 녀석 둘을 집에 남겨 두고 일찌감치 집에서 자전거를 끌고 나왔다. 옥수에서 밝은 광장 인증센터까지는 워밍업이었고, 본 여행은 이제 시작이다. 밝은 광장에서 춘천역까지, 카카오 맵이 알려주는 거리는 78.2km이다. 밝은 광장 인증센터에서 아이스라떼로 체력을 끌어올린 다음, 나와 남편은 자전거 안장 위에 올라탔다.

 오늘 여행을 준비하기 전에 유튜브에 올라온 '춘천 라이딩 영상'을 찾아봤다. ITX를 타고 춘천역으로 가서 북한강 자전거길을 따라 내려오는 방법과, 반대로 북한강 저전거길을 따라 춘천까지 올라가서 춘천역에서 ITX를 타고 서울로 돌아오는 방법이 있었다. 어떤 분은 북한강 자전거길을 따라 춘천까지 올라오는 길이 미세하게 오르막이어서 춘천역에서 내려서 서울로 가는 방법을 추천했다.

 정말 그런가? 알고 싶어서 2주 간격을 두고 한 번은 서울에서 춘천역으로, 한 번은 춘천역에서 서울로 와봤다. 남편은 춘천역에서부터 내려오는 게 조금 더 편하다고 했다. 춘천에서 서울 방향으로 내려오는 길이 칼로리 소모가 덜하기는 하다. 그거 말고는 큰 차이가 없지만, 그래도 다른 점을 찾는다면 몇 가지가 있다.

 주말에는 ITX 자전거석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이나 어려워서 경춘선을 타고 춘천역까지 이동해야 한다. 주말 경춘천 맨 앞과 뒤칸은 자전거와 사람들로 붐빈다. 춘천역에서 경춘천을 타고 내려올 때도 자전거를 끌고 지하철을 타는 사람이 많기는 마찬가지다. 다른 점이 있다면 춘천으로 가는 경춘선 자전거칸은 처음에는 만원이었다가 춘천에 가까워질수록 텅텅 빈다. 조금만 참으면 편하게 앉아서 갈 수 있다. 반대로 춘천에서 내려오는 경춘선 자전거칸은 처음에는 자리가 넉넉하다. 그러다가 강촌, 백양리, 가평, 청평, 대성리 등 유명한 역들을 지날 때마다 사람들이 꾸역꾸역 자전거칸으로 몰려든다. 바람 쐬기 좋은 주말일수록 자전거칸은 숨 막힐 정도로 답답해진다.

 경춘선을 타고 8시 넘어 춘천역에 내리면 이른 아침이라 시내가 고요하다. 사람도, 자동차도 없다. 부지런한 라이더들만 눈에 보인다. 텅 빈 거리처럼 마음도 텅 비는 느낌이다. 자전거를 타고 공지천 자전거길을 따라 춘천을 빠져나오면 의암호가 반겨준다. 탁 트인 호수와 깨끗한 하늘과 병풍처럼 호수를 둘러싼 나지막한 산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의 묵은 때들이 말끔하게 씻겨지는 느낌이다.

 옥수에서 출발해서 오후 3시 넘어 의암호를 지나 공지천에 들어서면 이와 같은 고요함과 평화로움을 느끼기 어렵다. 춘천에 가까워올수록 자동차와 ITX-경춘선을 타고 춘천을 찾은 나들이객들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자전거길은 자전거들과 좌우측 통행 표시를 무시하고 마음 내기키는대로 걸어다니는 사람들 때문에 복잡하다.

 나는 우측으로 바르게 가고 있는데 좌측에서 오던 자전거가 앞에 가는 사람을 피한다고 내 쪽으로 방향을 틀다가 나와 부딪힐뻔한 적도 있었다. 얼마나 놀랐던지, 등에서 식은땀이 났다. 이른 아침 공지천과 의암호에서 고요함과 평화로움을 발견하고 싶다면 경춘선을 타고 춘천역에 내려서 거기서부터 자전거를 타고 아래로 내려오기를 추천한다.


 자전거 타고 춘천에 가면 보이는 것들

9월의 춘천
11월에 다시 찾은 춘천
언제 봐도 깨끗한 춘천의 하늘과 호수

 어디서 출발하든 춘천 가는 길은 항상 아름답다. 강물에 하늘이 비추어 보일만큼 강과 하늘은 깨끗하다. 강과 하늘 사이에 산이 없었다면, 내가 보는 게 강인지, 하늘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다. 끝을 알 수 없는 물줄기를 보면서 자전거를 타면 물을 마시지 않았음에도 갈증이 해소되는 느낌이다.

 푸른 강에서 수상스키를 즐기는 사람들도 보이고, 얕은 강가에 발을 담그고 물고기를 잡는 사람도 보인다. 강을 따라 펜션, 음식적, 카페, 편의점 같은 상업시설이 줄줄이 사탕처럼 서 있다. 도로 위를 무섭게 달리는 자동차들과 높은 다리 위에 놓인 철도를 빠르게 지나가는 경춘선까지, 북한강 자전거 길에도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이 만들어낸 문명은 그 보다 더 크고 위대한 자연의 품에 안겨서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 도시에서 맹위를 떨치던 사람도 이곳에서는 하늘과 강과 산의 위용에 가려 존재감이 없다. 그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눈으로 북한강을 실컷 마시고 행복한 감정에 취해서 춘천 시내로 들어오면 취기가 사라지는 느낌이다. 주말인데도 한산한 춘천 시내 골목과 달리 소양강 스카이 워크 주변에는 사람들이 몰려 있다. 쭉쭉 뻗은 아파트와 와글와글 거리는 사람들을 보니 춘천에 도착한 실감이 난다. 7시간 넘는 라이딩으로 몸이 지쳐서 그런지, 어서 빨리 경춘선을 타고 집으로 가고 싶어 진다.

 6년 사이에 춘천이 달라진 것일까, 아니면 내가 달라진 것일까. 6년 전, 남편의 갑작스러운 퇴사로 마음 한 구석은 시리지만 한겨울 눈 날리는 춘천이 좋아서 아이처럼 함박 웃었던 춘천은 더 이상 없다. 이제는 춘천보다 춘천까지 오는 길이 더 좋다. 그것도 편하고 빠른 ITX-경춘선이 아니라 두 발로 밟아야 나가는 자전거를 타고서 오는 게 좋다.  

 ITX-경춘선을 타면 1시간 만에 춘천에 올 수 있다. 자동차보다 빠르다. 그런데 자전거를 타면 7시간이 걸린다. 서울에서 춘천까지 이어지는 미세한 오르막 때문에 칼로리 소모도 심하다. 그러나 자전거를 타고 춘천까지 오면 자동차나 ITX-경춘선 안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것들을 볼 수 있고, 결코 느낄 수 없는 것들을 느낄 수 있다. 자연이 주는 황홀감, 넘치는 행복은 길에서 흘린 땀과 비례한다. 내가 땀을 흘릴수록, 두 다리가 아플수록 여행의 기쁨은 올라간다.

 남편과 결혼하고 10년 만에 다시 제주도를 찾았을 때도 나와 남편은 제주도의 풍경을 가까이서, 온몸으로, 온전히 느끼고 싶어서 일부러 숙소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내려 숙소까지 걸어갔다. 아이들과 남편과 처음으로 경주와 부산을 찾았을 때는 일부러 버스를 타고 경주와 부산 시가지를 내려다볼 수 있는 산을 찾았다.

 나태주 시인은 '풀꽃 1'에서 말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무엇이든 자세히,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고 예쁘다. 자세히, 오래 보려면 속도를 줄이고, 때로는 완전히 멈춰야 한다.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다들 성공과 성취를 향해 달리고 있는데 나는 멈춰서 들가에 핀 꽃을 바라보며 여유를 부린다? 이러다가 나만 뒤처지는 것이 아닐까 해서 두렵고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빨리 간다고 제대로 가는 게 아니다. 잘못된 길을 빨리 가는 것보다 제대로 된 길을 천천히 가는 게 낫다. 천천히 가면, 내가 놓치고 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다른 사람 신경 쓰느라 방치한 '나'가 보이고, 개인적 성취에 밀려 저만치 멀어진 소중한 사람들이 보이고, 성공보다 더 중요한 가치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제대로 된 길을 걸어갈 수 있다.

 굳이 춘천이 아니어도 된다. 꼭 자전거가 아니어도 괜찮다. 잠시 멈춰서 나와 주변을 오래, 천천히 들여다볼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괜찮다. 나에게는 자전거를 타고 춘천에 가는 길이, 그런 시간, 그런 장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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