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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끌마루 Feb 15. 2022

자전거를 타지 않는 시간이 주는 힘

 

 잠시 쉬어도 괜찮아

 2021년 12월 23일 40km 라이딩을 끝으로 한 달 넘게 자전거를 타지 않고 있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지만 않으면 탈 수 있다고 호언장담을 했지만, 맞바람과 추위에 굴복하고 말았다. 매주 타던 자전거를 타지 않으려니 마음이 불편해서, 날씨 앱을 보며 자전거 타기 좋은 날을 찍어봤다. '이 날은 한낮 기온이 10도까지 올라가니 괜찮겠지? 꼭 타야지' 벼르고 있으면 이상하게 라이딩 하루, 이틀 전에 눈이 왔다. 그것도 많이 왔다. 눈이 내린 다음 날은 한파가 찾아와 길이 꽁꽁 얼어서 빙판이 되었다. 도로 표면에 생긴 얇은 빙판을 '블랙 아이스'라고 한다. 운전자가 볼 때 빙판이 아스팔트 색상인 검은색으로 보여 블랙 아이스라고 부른다. 겨울철에는 이 블랙 아이스를 조심해야 한다. 한겨울에 자전거를 타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자전거도로에도 블랙 아이스가 있지 않을까? 다리 밑이나 음지처럼 햇빛이 덜 비치는 곳에 빙판이 숨어 있다가 나처럼 조심성이 부족한 사람을 붙잡아 넘어뜨릴지 모른다. 시속 25km 이상으로 달리다가 빙판에서 미끄러져 자전거에서 떨어지면 얼마나 아플까. 걷다가 미끄러지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아플 것이다. 나도 모르게 몸서리가 났다.

 나는 도전과 모험을 좋아한다. 6월 초여름에 겁도 없이 하프 마라톤에 도전해서 강렬한 태양 빛에 얼굴이 빨갛게 익어서 결승선을 통과했다. 생애 첫 설악산 등반을 가장 힘든 오색 코스로 갔다가 한계령 코스로 내려왔다. 마흔 넘어 자전거를 배우고 혼자서 양평, 파주 평화누리 자전거길을 따라 공릉천·창릉천까지 다녀올 수 있었던 것도 호기심과 모험심 때문이었다. 모험심은 좋지만, 무모함은 위험하다. 단 하나의 목적과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위험을 무릅쓴 모험이라면 좋다. 그러나 아무런 목적도, 의미도 없이, 단지 내가 세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혹은 일확천금의 꿈을 갖고 덤비는 것이라면 그건 모험이 아니라 무모함이다.

 '자전거를 안 탄 지 한 달이 넘었어. 추워도 타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진정한 자덕(자전거 덕후의 줄임말) 아니겠어? 빙판쯤이야. 잘 보고 피하면 되지.'라는 나의 요구에 응하는 게 올바른 모험일까? 아니면 무모함일까? 내가 자전거를 타는 이유는 '자전거 덕후 되기'에 있지 않다. 이왕 운동하는 거, 즐겁게 하고 싶어서 자전거를 배웠다. 그런데 추위와 빙판의 위험 속에서 자전거를 타는 게 즐겁지 않다면? 오히려 고통스럽고 위험하다면? 잠시 쉬어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추위와 사고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자전거를 타야 할 이유는 없다. 날이 풀리고 자전거를 타고 싶어 견딜 수 없을 때 자전거를 끌고 밖으로 나가도 괜찮다.


 자전거를 타지 않는 시간이 주는 유익

 라이딩을 잠시 쉬기로 결정했을 때 이제 나는 무슨 즐거움으로 사나 싶어서 처음에는 기분이 좀 우울했다. 그러나 자전거를 타지 않는 시간은 나에게 또 다른 유익이 되었다. 열역학 제1법칙, 에너지 보존법칙에 대해 들어봤을 것이다. '하나의 계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는 형태만 바뀔 뿐 에너지의 총량은 일정하다. 에너지는 사라지거나 생성되지 않는다. 다만 형태가 변할 뿐이다.' 이 법칙은 나에게도 적용이 되는 것 같다. 내가 가진 에너지의 총량도 일정해서, 한 가지 일에 많은 에너지를 쏟으면 나머지 다른 일들에 쏟을 에너지가 없어진다. 자전거를 탄 날은 지쳐서 청소도, 요리도 하기 싫었다. 냉장고에 식재료가 가득한데도 요리하기 싫어서 간편하게 도시락을 배달시켜 먹었다. 피곤한 몸으로 집안일을 마치고 나면 늘 하던 대로 핸드폰을 집어 들고 이 드라마, 저 예능을 기웃거리며 소중한 시간들을 생각 없이 흘러 보냈다.   

 외식으로 돈은 줄줄 새고, 나의 본진이라 할 수 있는 독서와 글쓰기는 뒷전으로 밀리는 이 상황을 보면서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나는 건강해지고 싶어서 자전거를 배웠다. 자전거를 타고 혈당, 중성지방 수치 다 좋아졌다. 문제는 돈과 시간 관리였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으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습관을 버리고 어떤 습관을 새로 익혀야 하는지, 나의 삶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루틴을 재설정하는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그러나 나의 몸은 눈만 뜨면 자전거를 끌고 나갈 생각부터 했다. 6개월을 그렇게 살았으니, 몸이 깨자마자 '오늘은 자전거 타고 어디로 갈까? 가서 무엇을 먹을까?' 하며 나를 채근하는 것도 당연했다.

 이때 겨울이 추위와 함께 찾아왔다. 추위는 매서운 바람과 함박눈으로 '겨울에도 자전거를 타겠다'는 나의 의지를 꺾어 놓았다. 찬 바람과 함박눈은 '추위가 물러가고 다시 따스한 바람이 불 때까지 라이딩은 잠시 쉬라'는 자연의 메시지였다. 라이딩이 강박이 되어버린 나에게 자전거를 타느라 소홀했던 것들을 챙기라는 메시지였다. 라이딩이 '즐거운 활동'이 아니라 '강박'이 되어버린 지금, 한겨울은 나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


오전 8시, 남산으로 가는 길에서 마주친 태양, 따스하다.
오전 8시, 남산 남측순환도로 1전망대에서 바라본 서울

 나는 자전거를 타느라 소홀했던 걷기와 근육운동을 다시 시작했다. 겨울이라 일출이 7시 30분으로 늦어졌다. 태양이 기상하는 시간에 맞춰 나의 아침 운동도 늦어졌다. 영하 11도의 추운 날씨 속에서 만나는 해는 초여름 방화대교 남단에서 바라보던 해와 다르지 않았다. 여전히 따스하고 희망찼다.

 아침 운동으로 에너지를 충전하고 집에 와서 내가 하는 일은 단순했다. 가족들 아침을 대충 차려주고 나의 작업실로 들어간다(작업실이라고 해봤자 책상 하나와 의자 2개가 달랑인 작은 방이다). 타이머를 25분에 맞춰놓고 한국어 교원 자격증 3급 공부를 한다. 25분이 채워지면 5분 휴식에 들어간다. 5분 휴식 시간에는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는다. 휴식 시간이 끝나면 다시 타이머가 일할 시간이 되었다고 알려준다. 이번에는 글쓰기를 한다. 이것을 3,4번 반복하면 점심때가 된다. 아이들은 방학, 남편은 재택근무라 먹여야 할 사람들이 좀 된다. 배달음식은 쓰레기가 많이 나오고 가격에 비해 양, 질 둘 다 떨어져서 내 몸이 좀 불편해도 집에서 간단히 만들어 먹기로 한다. 점심 식사가 끝나면 아침에 했던 루틴을 반복한다. 식후 걷기 혹은 집에서 근육 운동, 한국어 교원 자격증 3급 공부, 독서. 저녁 식사는 점심보다 더 간단하다. 볶음밥, 덮밥처럼 일품요리가 주를 이룬다. 식사가 끝나고 나와 남편은 저녁 산책을 간다. 집에 돌아와 나는 다시 한국어 교원 3급 자격증 공부를 하고, 읽고 싶은 책을 읽는다. 잠들기 전에 마지막으로 오늘 하루를 돌아보는 일기를 쓰고, 내일 '할 일 목록'을 적는다.

 자전거를 타지 않는 한 달 동안 나는 이 루틴대로 아침, 점심, 저녁을 보내고 있다. 대충 보면 하루가 고만고만한 활동으로 채워져 있어서 재미없어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전, 오후, 저녁 활동이 다르다. 오전에 걷기와 달리기를 열심히 한 날에는 오후에 고강도 근육 운동을, 반대로 오전에 가볍게 걸었다면 오후에는 땀이 나도록 걷고 달린다. 저녁에는 주로 남편과 남산 산책로를 걸으면서 서로의 마음에 담아 두었던 고민, 생각, 앞으로의 계획을 나누기 때문에 지루함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책 읽기'라고 한 단어로 표현했지만, 오전에 읽는 책과 오후에 읽는 책, 저녁에 필사하는 책이 다르다.


 자전거를 안 타면 무슨 즐거움으로 살지?라는 나의 걱정은 기우였다. 자전거를 타지 않아서 생긴 힘과 시간 덕분에 새로운 꿈을 꾸게 되었고,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공부를 시작하고, 틈만 나면 핸드폰을 보던 나쁜 습관도 사라졌다. 읽어야 할 책이 많아져서 자투리 시간이 생기면 책을 읽고 싶지, 핸드폰을 보고 싶지가 않다. 내가 좋아하는 오은영 박사님이 나오는 TV 프로그램도 끊었다. 단 5분도 허투루 사용하고 싶지 않아서 한 가지 활동이 끝날 때마다 플래너에 '내가 해낸 일'을 기록하고 있다. 처음에는 플래너를 작성하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기록하다, 말다를 반복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플래너를 작성하는 게 즐겁다. 내가 못한 일보다 해낸 일이 조금 더 많아질수록 만족감도 올라간다. 내가 이제야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아서 이제야 마음이 놓이고 만족스럽다. 다시 자전거를 타더라도, 이 루틴은 깨지지 않을 것 같다. 자전거를 타는 즐거움과 자전거를 타지 않는 시간에 내가 했던 활동들이 주는 즐거움을 잘 알고 있는 내 몸이 알아서 균형을 유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맞는 균형점 찾기

 가끔 삶은 '줄타기'라는 생각을 한다. 좌, 우로 치우침 없이 눈앞의 목표 지점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을 조심스럽게 내딛는 줄타기 말이다. 줄타기에서 중요한 것은 균형이다. 어느 한쪽으로 무게가 쏠리는 순간 줄 위에서 떨어지고 만다. 줄 위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면 무게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 줄타기 같은 우리 삶에도 '중심잡기' '균형'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것을 말로 가르칠 수 있을까? 사람마다 갖고 태어난 기질, 성향, 신체 조건, 관심 분야, 에너지 양이 달라서 무엇을 얼마큼 더 하라고 말해 줄 수 없을 것 같다. 어떻게 살아야 건강하고 행복하다는 누구나 수긍할 만한 법칙은 있지만, 그 법칙이 실현되는 방향, 모습은 사람마다 다른 것 같다. 그래서 무엇이든 해봐야 한다. 자전거에 미쳐서 눈뜨자마자 자전거를 끌고 밖으로 나가도 봐야 하고, 잠시 쉬어도 봐야 한다. 삶은 균형점 찾기다. 그래서 삶은 재밌다.

이미지 출처_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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