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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끌마루 Feb 28. 2022

자전거를 타지 않는 동안 휴식의 기술을 익히다

휴식의 기술에 대해서

멀리 가려면 잘 쉬어야 한다

 입춘이(2022년 2월 4일) 지났는데도 겨울 추위가 매섭다. 2월에는 자전거를 끌고 한강 자전거 도로로 나갈 수 있겠지라고 기대했었는데 겨울 추위가 쉽게 물러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3월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황홀한 감정을 다시 느끼고 싶지만, 자전거를 타지 않고 있는 지금도 나는 좋다. 마침 휴식이 필요했는데, 겨울이 그런 시간이 되고 있어서 좋다.  

겨울 잠에 빠진 나무들

 나무에게도 겨울은 휴식 시간이다.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 한 해를 통째로 쉬기도 하지만, 겨울처럼 광합성에 필요한 충분한 양의 빛과 수분이 부족한 계절에도 무리하지 않고 그냥 쉰다. 거추장스러운 잎들은 땅에게 거름으로 내주고 나무 자신은 깊은 겨울잠에 빠진다. 나무는 자는 동안 내년 봄에 다시 싹을 틔울 힘을 모은다. 잘 쉰 나무가 굵고 단단하다. 이런 나무는 강한 비와 바람에도 잘 무너지지 않는다. 나무처럼 오래오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나무처럼 잘 쉬어야 한다.

 그런데 누구인들 잘 쉬고 싶지 않겠는가. 아이들은 공부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서 학교와 학원에서 내 준 숙제를 빨리 끝내려고 한다. 주부들은 끝없는 집안일에서 잠시라도 나의 시간을 갖기 위해  눈뜨고 일어나는 순간부터 쏟아지는 집안일을 숨고를 틈 없이 해나간다. 직장인들이 오늘도 열심히 일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잘 쉬고 싶어서이다. 어쩌면 휴식은 식욕처럼 인간의 본능일지 모른다. 그런데 우리는 왜 나무처럼 잘 쉬지 못할까? 그냥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잘 쉴 수 있을까?

 

휴식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여기 보통의 사람이 있다고 치자. 한 가지 일을 마치고 다음 일로 넘어가기 전에 잠깐 쉬려고 의자에 앉아 본다. 그러나 몇 분도 못 앉아 있고 벌떡 일어나고 만다. 아직 끝내지 못한 일들이 눈에 밟혀서 가만히 앉아있을 수가 없다. 결국 잠들기 전까지 쉬지 못하고 일한다. '아이고, 피곤해. 오늘도 정말 열심히 살았구나. 이젠 진짜 쉴 수 있겠지' 하며 잠자리에 철퍼덕 누워본다. 불은 꺼졌고 집은 조용하다. 눈앞에 보이는 건 흑색의 어둠밖에 없다. 그런데 생각 공장은 멈출 기미가 없다. 오늘 끝내지 못한 일들이 생각난다. '내일은 꼭 마무리해야 하는데 언제 하지?', '오늘도 못한 일을 내일은 할 수 있을까?', '그거 말고도 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은데 언제 다 하냐?' 걱정이 슬금슬금 머릿속으로 파고든다. '그러고도 네가 지금 잠이 오냐?', '한심한 인간아. 그렇게 해서 언제 남들처럼 사냐', '너는 쉴 자격도 없어!' 가슴을 후비는 말들이 소나기처럼 머리에 쏟아진다.

이미치 출처, Pixabay

 잘 쉬려면 기술이 필요하다. 휴식의 핵심 조건은 '집중'이다. 나의 욕구, 사람들의 요구, 지나간 시간에 대한 후회와 자책,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나와 휴식 시간 사이에 끼어들지 못하게 해야 한다. '지금'이라는 유일무이한 이 순간에 집중해야 한다. 글쓰기든, 독서든, 걷기든, 좋아하는 사람과의 대화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무엇이든, 그 일에 온전히 집중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휴식을 누릴 수 있다. '딱 한 걸음의 힘'에서 미리암 융게는 '집중 훈련'을 '마음 챙김 훈련'이라고 불렀다.

마음 챙김 연습으로 뇌에 휴식 선물하기

마음 챙김 연습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는 연습이다. 호흡에 집중하자.
숨을 평소보다 조용히, 더 깊게 쉰다.
폐로 들어온 숨결을 느껴보고 흉곽과 배의 움직임을 느껴보자.
걷거나 서 있거나 누워 있거나 앉은 자신의 자세를 자각해보자.
호흡의 흐름을 느껴보자.
잡념이 떠오르면 잡념임을 인식하고 다시 호흡에 집중하여 잡념을 떠나보낸다.
이렇게 마음 챙김 훈련으로 자기 생각과 감정을 인식하면 자신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된다.
가령 자신이 변화하려 노력하지 않고 푸념만 해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럼 자연스럽게 방해가 되는 습관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_미리암 융게, '딱 한 걸음의 힘'에서

 식사를 할 때 먹으면서 핸드폰을 보면 우리 뇌는 점심시간에 쉬지 못하고 다른 일을 하는 셈이 된다. 지금 내 앞에 놓인 음식을 요리조리 살피고 한 숟가락 퍼서 입 안에 넣고 천천히, 오래오래 씹으면서 그 맛을 음미한다면 그 시간이 바로 휴식이 된다.

 식사 준비도 휴식이 될 수 있다. 건강한 음식이 주는 유익과 내가 해주는 요리를 군말 없이 먹어주는 가족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재료를 다듬고 씻는 행위와 얇게 저민 생마늘을 사정없이 두드리는 행위에 온전히 집중하면 요리하는 시간이 휴식 시간이 된다.

 오만가지 생각에서 벗어나 진짜 휴식을 누리고 싶다면 몸을 움직여라. 가벼운 걷기도 좋고, 심장이 팔딱팔딱 뛰는 중고강도 운동도 좋다. 운동을 할 때는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다. 운동을 하고 나면 뇌가 다시 말랑말랑 해지고, 몸에 다시 활력이 돈다. 좀 전의 우울하고 불안했던 감정은 사라지고, 대신 그 자리에 어떤 힘든 과제도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과 내가 바라고 기대하는 모든 일들이 다 이루어질 것 같은 긍정적인 감정이 움튼다.


자전거를 타지 않는 동안, 나는 이렇게 쉬었다

 휴식의 핵심 기술은 '집중'이다. 이 기술은 '마음 챙김 훈련'을 통해 획득할 수 있다. 이것 말고 내가 애용하는 기술이 2개 더 있다. 하나는 포모도로 기술과 다른 하나는 플래너 작성이다. 포모도로 기술은 아주 간단하다. 스마트폰 알람이건 탁상용 알람이건 타이머를 25분에 맞춘다. 이 시간 동안에는 온전히 한 가지 일에 집중한다. 25분이 다 되었다는 알람이 울리면 5분 정도 잠시 쉰다. 네 번 반복한 후에는 조금 길게, 15분에서 20분 정도 쉬어준다.

 남편에게 이 기술을 처음 소개받았을 때 너무 단순해서 그 효과를 믿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이 기술의 최대 수혜자이다. 딴짓이 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타이머를 25분에 맞추고 바로 글쓰기를 시작한다. 타이머가 자동적으로 '주인님, 25분이 다 됐어요. 이제 5분 쉬세요.'라고 친절하게 알려줄 때까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온전히 집중한다. 몇 문장 안 썼는데, 25분이 훅 가버려서 놀랐다. 더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어도 하던 일을 멈추고 5분 동안 쉰다. 쉬는 동안에도 핸드폰은 보지 않는다. 책을 읽거나 몸을 움직인다. 너무 다른 세상으로 가버리면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 데 많은 에너지와 시간이 들기 때문에 최대한 지금 하고 있는 일 가까이 머물러 있는 게 좋다. 25분 집중, 5분 휴식, 이것을 2번 반복하면 50분, 4번 반복하면 100분 동안 한 가지 일에 집중할 수 있다.

 두 번째 내가 추천하는 시간 관리 도구는 '플래너'이다. 플래너, 너무 식상한가? 맞다! 식상해도 너무 식상하다. 계획을 세우면 뭐하나, 어차피 계획대로 안 될 텐데. 그냥 마음 편하게 계획 없이 사는 게 낫지. 그렇게 해서 내가 버린 플래너가 몇 개인지 모르겠다. 앱으로 관리하면 좀 다를까 해서 유료 앱을 구입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것도 금방 귀찮아져서 내 아이패드 바탕 화면 어딘가에 처박아 두고 있다. 그러나 '나의 하루는 4시 30분에 사작된다'를 읽고 나도 김유진 작가처럼 다시 플래너를 써 보기로 했다. 내가 시간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

하루를 주도하는 플래너 작성법

하루 24시간은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어진다.
하지만 이 시간을 사용하는 방법은 각자 다르다.
어떤 사람은 많은 일을 하면서도 여유로운 하루를 즐기고,
어떤 사람은 별로 하는 게 없는데도 정신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곤 한다.
여유로운 하루는 시간에 끌려 다니느냐 아니면 내가 시간을 장악하느냐에 달려 있다.
나의 목표와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파악하고
나에게 얼마만큼의 시간이 주어졌는지, 자투리 시간을 얼마나 더 확보할 수 있는지 확인해
스케줄을 주도해야 한다.

_김유진, '나의 하루는 4시 30분에 시작된다'에서

  지금까지 다양한 플래너를 써 봤지만 나의 마음에 딱 맞는 플래너가 없었다.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플래너 양식에 나를 끼어 맞추는 게 영 불편하고 거북스러웠다. 그런데 김유진 작가가 '나의 하루는 4시 30분에 시작된다' 부록에 공개한 플래너 양식은 나와 잘 맞아 보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저렴한 그리드 노트에 김유진 작가가 알려준 대로 표를 그렸다. 처음에는 그대로 베껴 쓰다가 나랑 잘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나의 기준에 맞춰 살짝 바꿨다. 양식이 어떻든 매일 플래너를 작성했다.

 플래너 작성의 일차 목표는 '내가 실제로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To Do List' 대로 살지 못한 날에도 플래너에 '어떤 활동'에 '얼마의 시간'을 사용했는지 나의 못난 모습을 피하지 않고 기록했다. 내가 잘 못한 것만 기록하면 기분이 우울하니까, 내가 해낸 일은 무엇인지도 빼놓지 않고 기록했다.

 처음에는 기록한다고 뭐가 달라지나? 싶었다. 그런데 나를 관찰하고 기록만 했을 뿐인데 달라지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핸드폰을 볼 때마다 무슨 프로그램을 얼마나 봤는지 플래너에 기록하고 하루를 마감하기 전에 통계를 냈다. 나의 경우, 3분에서 5분짜리의 짤막한 영상을 여러 개 봤기 때문에 내가 핸드폰을 많이 본다는 생각이 젼혀 들지 않았었다. 새 영상으로 갈아탈 때마다 나의 뇌가 새로운 작업의 시작으로 착각해서 그런 것 같았다. 그러나 3분에서 5분짜리의 짧은 영상을 모아 보니 2시간이 넘었다. 세상에나! 집안일 하느라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그동안 내가 나의 거짓말에 감쪽같이 속고 있었다.

 자기 감찰과 기록은 나의 안에 각성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핸드폰을 보는 대신에 한 손에 펜을 들고 책에 줄을 그어가면서 한국어교원 자격증 3급 온라인 수업을 들었다.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책을 필사했다. 손이 놀고 있으면 자꾸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손에 핸드폰 대신 연필을 쥐어주었다. 나의 뇌는 손이 쥐고 있는 게 핸드폰인지, 연필인지 구분하지 못했다. 옛날처럼 손에 뭔가가 있고, 눈은 새로운 정보를 계속 좇고 있기 때문에 금단증상 없이 나쁜 습관을 새로운 습관으로 대체할 수 있었다. 이 전략으로 나는 두 달째 자투리 시간에 핸드폰을 보지 않고 있다. 통화, 문자, 타이머나 사전 검색, 온라인으로 은행 업무나 장보기 등 꼭 필요한 경우에만 핸드폰을 사용한다. 기록이 가져온 변화가 놀랍지 않은가.

 처음에는 플래너를 작성하는 게 습관이 되지 않아서 플래너에 공백이 많았다. 그래도 플래너 작성을 그만두지 않았다. 이제는 플래너 작성이 자연스러워져서, 한 가지 일을 마치고 다른 일로 넘어가기 전에 먼저 플래너를 펼친다. 그리고 '방금 전에 내가 한 일'과 '지금 내가 하기로 나와 약속한 일'이 무엇인가 기록한다. 내가 해 낸 일이 늘어날 때마다 나 자신이 정말 자랑스럽고, 기분이 아주 짜릿하다. 마치 도장깨기 같다고나 할까.

 계획이 틀어져서 오전에 해야 할 일을 못한 날은 어떨까? 도장깨기에 이미 재미를 본 후이기 때문에 이렇게 하루를 넘기고 싶지 않은 강한 욕구가 내 안에서 발동한다. 타이머를 25분에 맞춰 놓고 오전에 못한 공부를 하나씩 하나씩 격파해간다. 플래너는 다시 내가 해낸 일로 채워진다. 플래너에 내가 해낸 일과 남은 하루 동안 할 일을 적어보는 것만으로도 탈진 상태에 빠진 몸과 마음을 다시 '활동 모드'로 끌어올릴 수 있다.


휴식은 연습이다

 2월도 이제 끝나간다. 겨울 동안 멀어졌던 해가 봄과 함께 다시 돌아오고 있음을 느낀다. 이제는 진짜 자전거를 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에 나도 모르게 가슴이 뛴다. 이번 겨울은 정말 잘 쉬었다. 자전거를 타든 타지 않든, 지금 내가 있는 이곳에서 온전한 휴식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술들을 익힌 덕분이다.  

 휴식의 핵심 조건은 '집중'이다. 지나간 과거에 대한 후회,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을 내려놓고 지금 여기 살아서 숨 쉬고 있는 나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것, 그것이 휴식의 가장 첫째 되는 핵심 조건이다. 나의 호흡에 집중해보는 단순한 행위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고 수많은 욕구와 요구에 가려 보이지 않던 나의 진짜 모습을 보게 되는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시간도, 돈도 들지 않는다. 자극의 밀도가 낮은 근처 공원으로 가서 잠시 혼자 조용히 있어도 좋고, 그게 어렵다면 나를 유혹하는 핸드폰을 안 보이는 곳에 치우고 눈을 지그시 감은 다음 들숨과 날숨을 천천히 반복하며 나의 호흡에 집중해 봐도 좋을 것이다. 휴식은 시간과 돈의 문제가 아니다. 의지와 결단의 문제이다.

 우리 앞에는 언제 어디서나 휴식을 누릴 수 있는 아주 쉽고 간단한 기술들이 있다. 지금 바로 연습해 보자. 자주 반복할수록 쉬워진다. 그러니 포기하지 말고 계속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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