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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끌마루 Mar 14. 2022

굴러온 자전거가 박힌 나를 빼내다

굴러온 자전거가 박힌 나를 빼내다

 남편과 결혼하고 지금 살고 있는 곳에 정착한 지 벌써 17년이 되었다. 나와 남편에게는 30대를 보낸 제2의 고향이고, 아이들에게는 태어나고 자란 제1의 고향이다. 아이들 친구뿐 아니라 나와 가까운 사람들도 다 이곳에 살고 있다. 정든 사람들 때문에 내가 아는 분들은 이사를 가더라도 같은 동네 안에서 다녔다. 나에게도 이사 갈 기회가 몇 번 있었지만 아이들 때문에, 지인들과 시댁에서 보내주신 싱싱한 먹거리들을 나눠 먹는 재미 때문에 눌러앉은 게 벌써 17년이 되었다.

 17년 동안 큰 불만 없이 잘 살았던 이곳을 이제 와서 떠나려고 하는 이유는 자전거 때문이다. 자전거를 배우고, 한 가지 소망이 생겼다. 현관문을 열고 나오면 바로 자전거를 타고 달릴 수 있는 곳에서 살고 싶다는 소망.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한강으로 나가려면 복잡한 사거리를 4개나 지나야 한다. 차도와 인도는 차와 사람들로 북적거려서, 자전거에서 내려 걸어가는 일이 자주 생겼다. 자전거를 타면 탈수록 '자전거 타기 좋은 곳에서 살고 싶다'는 나의 소망 또한 커져갔다. 굴러온 자전거가 한 곳에 박혀 우물 안 개구림처럼 살아가고 있는 나를 빼내려고 하고 있다.


굴러온 자전거 타고 멀리, 높이 날아갈 준비를 하다

 나는 '자전거 타기 좋은 곳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만 품고 있었지 구체적으로 그곳이 어디인지 찾아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나도 자전거를 샀어. 대리점이 남양주시 000에 있어. 토요일 오전에 가지러 간다고 했어'라고 말했다. 남편과 나는 자전거 대리점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남편은 버스를 타고 이동하고, 나는 자전거를 타고 갔다. 마침내 자전거와 남편이 구매한 자전거가 같은 브랜드라서 대리점 사장님이 내 자전거까지 점검해 주셨다. 대리점에서 나오니 시간이 점심때였다. 남편과 나는 여기서 점심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근처 도시락 집에서 도시락을 사 가지고 나와서 근처 공원으로 갔다.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식사를 즐기고 있는 나에게 남편이 물었다. "이 동네 어때요?"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주말인데도 한적하니 너무 좋네요." 이곳은 나의 소망을 현실에 그대로 옮겨 놓은 곳이었다. 아파트에서 나오면 바로 수변공원이고, 공원을 지나 내려가면 왕숙천이 나온다. 왕숙천을 따라 15분 달리면 내가 자전거와 함께 자주 달리는 자전거도로가 나온다. 남편은 '여기 참 좋죠. 아이들 통학 문제만 해결되면 이곳으로 이사를 와도 좋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남편의 말대로 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자전거를 배우는 것과 삶의 터전을 옮기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자전거와 자전거 관련 용품을 사는 데 200백만 원도 들지 않았다. 그러나 집을 사서 간다면 자전거 값의 30-40배가 필요하다. 월세를 끼고 간다면 다달이 150만 원에서 200백만 원의 비용이 나갈 수도 있다. 자전거를 타는 것은 나의 마음에 달려 있지만, 이사는 아이들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이곳으로 이사를 와도 좋겠다'는 남편의 말에 선뜻 '그래요. 여기로 이사와 요'라고 대답할 수 없었다. 대신 '이사 오면 좋죠. 그런데 돈 있어요?'라는 가슴 아픈 말을 내뱉고 말았다.

 나와 남편이 아이들에게 이사 계획을 밝혔을 때 첫째가 했던 말도 "엄마, 아빠, 돈 있어요?"이었다. 엄마, 아빠가 상세한 설명 없이 이사를 간다고 하니까, 첫째는 정말 궁금해서 던진 질문이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엄마는 돈도 없으면서 무슨 배짱으로 이사를 가려고 하세요'라는 말처럼 들렸다. 나는 당황해서 첫째에게 '엄마, 아빠한테 돈 있어. 그러니까 돈 걱정은 하지 마.'라고 큰 소리를 쳤지만, 마음은 착잡했다. 내가 남편에게 했던 말을 자식에게서 그대로 돌려받고 보니 남편에게 정말 많이 미안했다. 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수중에 가진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돈의 노예가 되어버린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더 심각한 것은 내 아이까지 돈의 노예가 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남편은 첫째 아이의 대답을 듣고, 더더욱 이사를 가야겠다고 했다. 나도 남편의 뜻에 함께 하기로 했다. 주머니가 비어 있다고 생각까지 가난해지라는 법은 없다. 부자라면 '왜 이렇게 돈이 없지?', '난 왜 이렇게 가난할까?'라고 걱정하는 대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금액은 얼마지?', '그 돈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까?'를 생각할 것이다. 필요하면 대출도 받기로 했다. 이 돈은 빚이라기보다 돈의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 경제적 자유를 이룰 수 방법을 배우는 수업료 혹은 투자금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남편은 네이버 부동산 앱을 통해 매일 매물을 확인하면서 시세를 확인하고 은행에 가서 대출 조건을 확인했다. 나는 아이들을 대신해서 미리 통학 체험을 해보기 위해, 통학시간에 맞춰 이사 갈 동네에 가봤다. 아파트에서 역까지 마을버스로 얼마나 걸리는지, 출퇴근 시간에 마을버스는 몇 분 간격으로 오는지 등... 섬세하게 통학 동선과 소요 시간을 체크했다. 주말에는 남편과 함께 그곳으로 가서 아파트 주변에 편의시설이 무엇이 있는지, 어떤 사람들이 사는지, 관찰했다. 처음에는 낯설어서 내가 여기에 잘 정착할 수 있을까, 살짝 걱정이 되었다. 그럴수록 자주 와서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나태주 시인이 '풀꽃 1'에서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라고 했는데, 정말 그렇다. 자주 와서 자세히 살펴보니 동네가 예쁘고 마음에 들었다.


꿈이 이루어지는 것은 시간문제일뿐

 자금 마련 계획도 세웠고, 아이들 통학 동선과 걸리는 시간도 확인했고, 아이들의 마음도 준비시켰고, 나와 남편의 마음도 정해졌다. 이제는 나와 남편이 '이곳이 좋겠어'라고 점찍어둔 아파트에서 집이 나오기만 하면 된다. 새끼가 알을 깨고 밖으로 나오기를 숨죽이며 기다리고 있는 어미 닭처럼 나와 남편은 기다리고 있다. 둘째 녀석도 기다리고 있다. 첫째는 변화가 싫어서 속으로 몸서리를 치고 있지만 새 집을 보고 나면 '나쁘지 않네요'라고 한 마디 날릴 것이다.

 새로운 환경에 놓이면 내가 가장 많이 바뀌지 않을까.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될 것 같은 기대감이 든다. 지금으로부터 5년 후, 그러니까 2027년까지 내가 세운 목표들이 다 실현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압도적인 성취와 발전으로 나도 놀라고, 내 주변 사람들도 놀랄지 모른다. 나는 이미 그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기 때문에 나의 꿈이 이루어지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나의 작은 소망이 성취되는 과정에서 즐겁고 짜릿한 순간도 있을 것이고, 지루하고 실망스러운 순간도 있을 것이다. 삶이란 원래 그렇다.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도 있다. 내 힘으로 감당하기 벅찬 어려움 앞에서 좌절감이 들고 비관적인 감정이 나의 마음을 잠식해가도, 멈추지 않고 꿈을 향해 계속 걸어가면 내가 꿈꾸던 것들이 다 이루어질 것이다. 내가 뭘 믿고 이런 생각을 하는지 나도 모르겠지만, 왠지 그렇게 될 것 같은 확신이 자꾸 든다. 결코 안전하지 않은 안전지대에서 변화의 첫 발을 떼면 자전가 바퀴 굴러가듯이 나의 삶이 옳은 방향으로 굴러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가 아니라
삶이 우리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을 중단하고,
대신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해 매일 매시간마다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말이나 명상이 아니라 올바른 행동과 올바른 태도에서 찾아야 했다.
인생이란 궁극적으로 이런 질문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찾고,
개개인 앞에 놓인 과제를 수행해 나가기 위한 책임을 떠맡는 것을 의미한다.
삶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고, 때에 따라 다르다.
일반적인 방식으로 삶의 의미를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_'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 지음

 내가 자전거를 배우게 된 것, 자전거가 연이 되어 살고 싶은 곳이 생긴 게 된 것, 나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사는 곳을 바꾸기로 결심하고 거기에 필요한 과정을 밟고 있는 것이 다 우연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삶이 나에게 던진 "그냥 이렇게 살다가 죽을래? 아니면 너와 너의 아이들을 위해 변화할래?"라는 질문에 대해 나의 무의식이 대답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이왕 새로워지기로 결심했으니 즐겁고 신나게 변해보자. 변화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실패와 좌절을 마음껏 즐겨보자. 아이들에게 변화의 바람을 타고 더 높은 곳으로, 더 넓은 곳으로 날아가는 엄마의 멋진 모습을 보여주자. 그러면 첫째 녀석도 더 이상 '돈 있어요? 돈이 있어야 하죠.'라는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엄마, 아빠가 했던 것처럼 일단 시작하고 결국 해내고야 마는, 생각이 부유한 사람으로 자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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