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끌마루 Mar 25. 2022

나의 봄은 아직 오지 않았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무서운 놈을 만나다

 날짜로는 이미 봄이다. 하지만 산책로의 나무들한테는 아직 감감무소식이다. 언제쯤이나 나뭇가지에서 새순이 돋으려나. 그래도 한낮의 기온이 제법 올랐다. 한 자릿수로 시작한 기온이 오전 10시를 넘으면 빠르게 올라서 정오쯤에는 15도를 넘기도 한다. 이 정도면 자전거를 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대통령 선거일 혹은 그 이후 자전거를 끌고 한강으로 나가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목요일 저녁에 남편이 갑자기 몸이 너무 힘들다고 했다. 둘째가 '아빠, 자가진단키트로 코로나 검사 한 번 해보세요.'라고 했다. 결과는 '양성'이었다. 아이들도, 나도 깜짝 놀랐다. 확진자수가 20,30만 명을 넘어도 남편과 나는 안전하리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남편은 재택근무 중이라서 커피를 사러 잠깐 밖에 나가는 것 말고는 외부인과 접촉할 일이 거의 없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코로나로부터 가장 안전하다고 믿었던 남편이 보기 좋게 코로나에 걸리고 말았다.

 가까운 보건소에서 실시한 PCR 검사에서도 남편은 '양성' 판정을 받았다. 남편은 바로 자가 격리에 들어갔다. 남편과 24시간 같은 공간에 있었던 나는 자가진단키트에서 음성, PCR 검사에서도 '음성'이 나왔다. 아이들도 음성이었다. 그런데 토요일 아침부터 콧물이 흐르더니 일요일 아침에는 목이 따끔거렸다. 같은 날 저녁 자려고 누웠는데 기침이 나왔다. 월요일 아침, 목이 부어 있었다. 부은 목은 금세 가라앉았고 컨디션도 그리 나쁘지 않아서 몸 상태를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다. 그래도 불안해서 월요일 저녁에 자가진단키트로 코로나 검사를 다시 했다. 결과는 '음성'이었다.

 그런데 화요일 오후부터 피로가 급격히 몰려와 그냥 아무 일도 안 하고 싶어졌다. '혹시 코로나?' 불안해서 자가진단키트로 다시 검사를 해보기로 했다. 자가 진단 전 둘째 녀석이 '엄마, 병원에서 신속항원 검사할 때 고개를 숙인 상태에서 면봉을 코 안 깊이 집어넣더라고요.'라고 알려 주었다. 둘째가 가르쳐 준대로했더니 바로 '양성'이 나왔다. 둘째는 '엄마, 힘내세요. 제가 아는 동생도 자가진단키트에서 양성이 나와서 PCR 검사했는데 음성이 나왔데요. 엄마도 혹시 모르잖아요.'라고 희망을 주었다. 그러나 콧물에서 시작된 증상이 가래, 기침, 목 아픔, 두통과 근육통으로 점점 발전되어가는 모습을 볼 때 PCR 검사에서도 '양성'이 나올 것 같았다.

 나는 잠시 갈등했다. '보건소에 갈까? 말까?' 보건소에 가서 '양성' 판정을 받으면 7일 동안 밖에 못 나간다. 하루, 이틀만 집에서 쉬면 나을 것 같은데 7일씩이나 밖에 못 나간다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코로나보다 격리가 더 무서웠다. 방문을 사이에 두고 나는 남편에게 '양성이 나왔어요. 어떻게 하죠?'라고 물었다. 3일 동안 앓아누워 있다가 회복 중에 있던 남편은 '당신처럼 보건소에 가면 바로 확진 판정받고 격리될까 봐 양성이 나왔는데도 보건소에 안 가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많데요. 그래서 코로나가 무섭게 퍼지고 있데요.'라고 말했다. 코로나에 걸리기 전에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면 '나쁜 사람들. 그러면 안되지.'라고 화를 냈을 것 같다. 그런데 막상 내가 걸리고 보니 '뭐야, 가벼운 감기잖아. 7일 격리는 좀 길지 않나. 사람들이 많은 곳이 아니라면 가벼운 걷기 정도는 괜찮지 않나? 보건소에 가지 말고 내가 알아서 할까?'라는 유혹에 끌렸다.

 자가진단에서 '양성'이 나왔다는 말을 엄마 말을 듣고 엄마를 피해 자기들 방으로 도망친 아이들이 방에서 엄마, 아빠의 대화를 듣고 아우성을 치며 말했다. "엄마! 그러면 안 돼요! 정직하게 검사받고 7일 동안 집에 있어야죠!" 유혹에 빠져 혼미해진 마음이 아이들의 아우성에 번쩍 깼다. "엄마가 그냥 해 본 소리야. 갈 거야. 갈 거라고. 가야지." 나는 같은 말을 세 번 반복하며 나에게서 다짐을 받아내려고 했다.


 귀하는 코로나19 확진으로 격리 대상입니다

 목요일 오전, 보건소에서 문자가 날아왔다. PCR 검사에서 음성이 나오면 문자가 짧다. 이번에는 문자가 길다. 내용을 안 봐도 '아, 확진이구나' 알 수 있었다. 친절하게 격리기간 까지 못을 박아 두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격리기간이 14일에서 10일로, 10일에서 7일로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검사일로부터 7일째니까, 통지를 받은 오늘이 격리 2일 차다. 앞으로 5일만 참으면 된다.

 남편이 격리 해제되는 날, 나는 남편이 7일 동안 갇혀 있었던 방으로 들어갔고, 남편은 거실로 나왔다. 3차 백신까지 맞고 코로나에 걸린 남편은 이제 '슈퍼 항체 보유자'가 되었다. 부러워라. '나도 7일 후에는 격리에서 해방되고 슈퍼 항체 보유자가 되리라'. 그렇게 나는 큰 소리를 치고 바로 앓아누웠다. 나는 아프지 않다고, 평소처럼 운동하고 밥하고 청소하고 글을 쓸 수 있다고 자신했지만 마음과 다르게 몸은 축 늘어졌다. 공부하려고 책을 폈지만, 내용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냥 누워 있고만 싶었다. 밥도 하기 싫었다. 남편에게 부탁해서 점심은 배달시켜 먹고, 저녁은 라면으로 대충 때웠다. 자도, 자도 피곤이 풀리지 않았다. 허리가 끊어질 정도로 누워 있었는데도 잠이 쏟아졌다. 올해 들어 가장 많이 잤던 것 같다. 자가격리를 당하지 않았어도 밖에 나가 돌아다니는 것은 무리일 듯싶었다.


자가격리 3일 차, 나쁜 습관이 되살아나다

 두통과 근육통은 여전하지만 일어나서 간단한 일은 할 수 있었다. 코로나로 비대면 수업을 듣고 있는 둘째와 오전 수업만 듣고 집에 오는 첫째, 재택근무 중인 남편, 세 사람의 식사를 챙기고 나서 글쓰기를 하려고 의자에 앉았다. 이틀 동안이나 글을 쓰지 못했다. 오늘은 꼭 써야 한다. 왜냐하면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음과 다르게 손가락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머리를 쓰는 게 싫다. 쓰고 싶은 마음이 들 때까지 책이나 읽어볼까? 옆에 쌓아 놓은 책 쪽으로 눈을 돌렸다. 그런데 선뜻 책에 손이 가지 않는다. 누워 있기는 싫고, 머리와 마음을 써서 뭔가 하고 싶지는 않고, 결국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핸드폰을 들었다. 2개월 전에 버린 나쁜 습관을 다시 주워 와서 보고 있다니, 마음이 정말 불편했다. '이러면 안 되지'라는 마음의 소리 때문에 내가 참여하고 있는 독서모임에서 정해준 책을 집어 들었다. 핸드폰으로 손이 갈 때마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을 읽었더니, 페이지가 잘 넘어갔다.


자가격리 4일 차, 흔들리는 루틴을 붙잡아라

 격리 4일 차, 근육통은 사라졌다. 두통만 조금 남아 있다. 코로나 이전처럼 짜인 스케줄대로 움직여 보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몸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중고 강도의 근육운동을 해봤다. 평소와 다르게 숨이 매우 찼다. 30분 하고 힘들어서 쓰러져 잤다. 글쓰기와 공부는 3일째 휴업 중이다.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을 다 읽고, 딱히 읽고 싶은 책이 없어서 계속 핸드폰만 보고 있다.

 나는 코로나보다 격리가 더 무섭고, 격리보다 루틴이 흔들리는 게 더 무섭다. 그런데 내가 힘들게 닦아 놓은 루틴이 '코로나'와 '자가격리'로 흔들리고 있었다. 루틴은 나의 삶을 지탱해주는 버팀돌이자, 목표로 인도하는 사다리다. 내가 어떻게 해서 올바른 루틴을 만들었는지를 생각하니, 코로나라는 작은 바람에 흔들리는 자신이 한심하고 안타까웠다. 그렇다고 루틴을 만들기 위해 내가 쏟아부었던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어 버리지는 않는다.

목표로 가는 길은 직선이 아니다. 길 곳곳에는 실망의 계곡이 숨어 있다. 하지만 아무리 뒷걸음질을 치더라도 너무 실망하지 마라.
당신 노력은 결코 헛수고가 아니다. 우리 두뇌는 모든 노력을 저장한다. 그 모든 노력과 반복이 모여 당신을 목표로 이끈다.
인간은 경험의 총합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_'딱 한 걸음의 힘'에서 마리아 융게

 몸이 약해진 순간을 틈타서 과거의 나쁜 습관이 되살아났다고, 더 이상 나를 나무라지 않기로 했다. 자책한다고 뭐가 달라질까. 전혀! 자책은 백해무익하다. 자책은 좌절감에 불을 지펴서 자포자기하게 만든다. 자책하기보다 내가 왜 나만의 루틴을 설계하고 실천했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 보는 게 더 이롭다. 내 안에 담겨 있는 강력한 동기를 다시 불러 내야 한다. 내가 이 일을 해야만 하는 가장 큰 이유에 다시 불이 들어오면 그 이유가 다시 나를 움직일 것이기 때문이다.

 자책과 후회를 넘어서 5년 후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을 상상해봤다. 5년 후 나는 출간 작가, 1억 원의 자산가,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어 있을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상상이라고 해도 좋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건 내 마음이니까. 상상은 무료인 데다가 무제한이다. 5년 후 되고 싶은 나의 모습을 생각하면 신나고 즐겁다. '히죽히죽' 웃음이 절로 난다. 상상이 주는 힘 덕분에 나는 다시 아이패드를 열고 글을 쓴다. 5년 후의 나가 진짜 나의 모습이 되기를 바라는 일념 하나로 한국어 교원 자격증 3급 공부와 투자 공부를 다시 시작한다.


자가격리 6일 차, 여기까지 온 나에게 박수를 보낸다

 자가격리 해제 시까지 이제 하루 남았다. 완전하다고 할 수 없지만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을 완독 했고, 한국어와 투자 공부를 다시 시작했고, 격리 3일 차부터는 가족들 식사를 직접 챙겼다. 코로나로 나만의 루틴이 흔들리기는 했지만 그동안 내가 기울인 노력이 있어서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았다. 나에게 비난과 자책 대신 격려와 칭찬의 박수를 보낸다.

 자가 격리 해제를 하루 앞두고 독서모임에서 만난 한 후배가 '자가격리에서 풀려 나오시면 꽃이 피겠어요. 남산에 가실 때 드세요.'라는 톡과 함께 커피 쿠폰 2장을 보내 주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과 아침부터 지저귀는 새소리에서 벌써 봄이 왔음을 느낀다. 이번에는 진짜 자전거를 끌고 한강으로 나갈 수 있을까? 날씨를 보니 주말에 비 소식이 있다. 누구에게는 벌써 봄이지만, 나의 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자전거를 타는 날, 나의 봄은 시작된다. 처음에는 코로나로, 이번 주는 비 때문에 봄의 도착이 자꾸 늦어지고 있다. 이러다가 자전거 타는 법을 잊어버리면 어떡하지? 별 쓸데없는 걱정을 해본다. 몸으로 익힌 것은 절대 까먹지 않는다. 연습하면 다시 잘할 수 있다. 코로나로 살짝 흔들렸던 루틴을 다시 회복할 수 있었던 것도 내 몸에 루틴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자가격리에서 풀려나도 3일 동안은 사적인 모임과 사람 많은 장소는 피해야 한다고 한다. 한적한 시간을 골라 남산에 가서 꽃이 정말 피었는지 확인해봐야겠다. 그리고 봄비가 그치면 이번에는 정말로 자전거를 타고 한강 자전거 도로로 나가야겠다. 생각만 해도 기대가 된다.


 후기_자가격리 해제 이후

 자가격리에서 풀리고 남산에 갔다. 후배의 말대로 개나리가 피었는지 내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었다. 내가 상상했던 꽃은 없었다. 하지만 내가 집에 갇혀 있는 일주일 사이에 변화가 있었다. 가지에 꽃봉오리가 맺혀 있었다. 자전거를 끌고 한강으로 나가기 좋은 날씨를 기다리고 있는 나처럼 이 녀석들도 껍질을 벗어도 좋을 만큼 포근한 날씨를 기다리고 있나 보다.

왼쪽은 원추리, 오른쪽은 철쭉
다른 녀석들보다 일찍 껍질을 까고 나온 개나리꽃
내가 가장 좋아하는 봄꽃, 진달래. 여리여리한 꽃잎과 연한 분홍빛이 내 안의 보호본능을 깨운다.


작가의 이전글 굴러온 자전거가 박힌 나를 빼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