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타고 한강 자전거 도로로 나간 지 일 년이 지났다. '작심삼일에서 하루 더해 작심사일만 하기'챌린지를 시작했던 게 2021년 4월 26일 월요일이었다. 자전거 하나 배웠을 뿐인데 내 삶이 많이 바뀌었다.
1. 실력과 체력
먼저 자전거를 타는 실력이 꽤 늘었다. 처음에는 자전거를 타고 앞으로 나가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속도는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전거를 계속 타다 보니 같은 힘으로, 더 멀리, 더 빨리 달리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경사도가 10% 이상 되는 고개를 만나도 두려워하지 않고 완주하고 싶었고, 인천에서 부산까지 자전거를 타고 국토를 종주하고 싶은 큰 꿈도 생겼다.
더 큰 꿈을 위해 자전거를 배운지 6개월 만에 하이브리드 자전거에서 로드 자전거로 갈아 탔다. 자전거 페달은 평페달에서 클릭 페달로, 신발은 운동화에서 클릿 슈즈(자전거 전용 신발)로 바꿨다. 자전거 도로로 나가면 로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에게 항상 추월을 당하거나 내가 알아서 왼쪽으로 비켜주었다. 그런데 자전거와 페달, 신발을 바꾸고 나서 평균속도가 3~5km 빨라졌다. 고수들을 이길 수는 없지만 웬만한 하이브리드 자전거는 제친다.
자전거를 타기 전에도 체력이 약하지는 않았다. 남산을 달려서 올라갈 수 있을 정도의 체력은 되었다. 그러나 하루에 30km 이상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 고단해서 집에 오자마자 쓰러져 잤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100km를 달리고 집에 돌아와서 바로 앉지 않고 일할 수 있게 되었다.
2. 자유와 행복
자전거가 가져온 가장 큰 선물은 '자유'와 '행복'이다. 작년 초, 건강이 점점 더 나빠져서 어쩔 수 없이 나의 몸에 해로운 관계들을 정리했다. 오랫동안 함께 일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정리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건강해야 다른 사람도 도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과감하게 관계를 정리했다.
내가 참석해야 할 모임과 만나야 할 사람이 줄면서 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늘었다. 나는 평소 시간이 있으면 하고 싶었던 일을 했다. 그중의 하나가 '자전거 배우기'였다. 그렇게 자전거를 배우고 처음에는 한강 자전거 도로를 열심히 달렸다.
한강 자전거 도로만 다니다가 한강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궁금해서 동쪽으로는 팔당대교를 넘어 춘천, 양평, 이포보, 여주보까지 다녀왔다. 서쪽으로는 방화대교와 행주대교를 넘어서 인천 서구에 있는 아라서해갑문 인증센터와 파주 출판단지에 다녀왔다. 작년 가을에는 나 혼자 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가을을 마음껏 느낄 수 있는 곳으로 말이다. 그래서 자전거를 타고 옛 경춘선 철길을 개조해서 만든 경춘선 자전거길을 따라 팔당을 다녀왔다. 철새의 도래지, 공릉천은 너무 좋아서 일주일을 사이에 두고 두 번 다녀왔다.
복잡한 도심을 벗어나 가공이 덜 된 자연 속을 달리는 기분은 상쾌하고 행복했다. 마음에 묵은 짐들이 바람과 함께 날아가 버리는 것 같았다. 자전거 페달을 굴리는 데 필요한 근육들에 집중함으로써 쓸데없는 오만가지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건 자유였다. '나는 자전거를 탄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나에게 자전거를 타는 시간은 '잃어버린 나'를 찾는 시간이었고, 온전히 '나'로써 존재하는 시간이었다.
3. 글쓰기
자전거를 타고 본격적으로 브런치에 글을 써서 발행하게 되었다. 글쓰기는 전부터 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의 이야기를 세상에 공개하기가 두려웠다. 용기가 없었다. 그러나 자전거를 배우고 그동안 마음으로 원하기만 하고 몸으로 살아내지 못한 일들을 해보고 싶어졌다. 마흔 넘어 자전거도 배웠는데 못할 게 뭐가 있겠어, 죽을힘으로 시도해 보고 안 되면 말자는 마음으로 글쓰기를 시작했다.
글쓰기가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던가, 내가 왜 글을 쓰겠다고 했을까, 지금이라도 글쓰기를 중단할까, 글을 쓰면서 내가 했던 생각들이다. 내가 원해서 시작한 일이기 때문에 힘들면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글쓰기는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뭔가 부족하고 모자란 글이라도 숨이 붙어있는 한은 계속 쓰고 싶었다. '아이고, 힘들어'라는 곡소리가 나와도 다시 아이패드를 열고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자신을 보면 '나에게 글쓰기는 숙명인가'라는 생각까지 든다. 자전거처럼 말이다.
4. 이사
자전거에서 시작된 작은 변화는 '이사'로까지 이어졌다. 자전거를 타고 서울 밖으로 나가기 전까지 나의 세계는 정말 좁았다. 한 곳에 17년을 살다 보니 매일 마주치는 사람이 똑같았다. 내가 만나는 사람도 정해져 있었고, 하는 일도 정해져 있었다. 좋게 말하면 잔잔한 호수 같은 삶이었고, 나쁘게 말하면 더 이상 흐르지 않는 고인 물이었다.
나는 누구보다 고요와 평화를 원한다. 내가 일부러 숲을 찾아 걷고 달리는 이유, 자전거를 타고 서울 외곽으로 벗어나는 이유는 거기에 '고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고요는 폭풍 속의 고요함이다. 폭풍 같이 거친 인생의 한 복판에서 느낄 수 있는 고요함, 혹은 이제 곧 불어닥칠 푹풍 직전에 느끼는 고요함, 나는 이런 고요함이 좋다. 잔잔하기만 한 삶이 어디 있을까 싶지만, 설사 그런 삶이 있다고 해도 나와는 맞지 않다. 나는 태생적으로 몸으로 부딪히고 다치면서 성장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17년 동안 한 곳에 붙잡혀 어제와 오늘이 다름없고 내일도 오늘과 같으리라 예상되는 무난하고 정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몸과 마음이 갈수록 시들해지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나는 왜 진즉에 떠날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그건 '살고 싶은 곳'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나에게도 '살고 싶은 곳'이 생겼다. 자전거가 인연이 되어 지금 살고 있는 곳으로 이사까지 오게 되었다.
이사를 간다고 하자 시아버님은 "너희가 어떻게 그 동네를 떠날 생각을 다 했다냐" 하면서 놀라워하셨다. 친정 식구들은 "정말 잘됐다. 축하해"하며 선물을 보내 주었다. 이게 축하받을 일인가?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상하게 마음이 뭉클했다. 17년 동안, 나는 왜 한 번도 변화를 꿈꾸고 시도하지 않았을까? 다른 사람의 꿈을 나의 꿈으로 착각하고 다른 사람의 꿈에 나의 삶을 통째로 갈아 넣어서 나와 아이들을 위한 신선한 변화를 꾀하지 못했을 것이다. 자전거가 그런 나를 바꿔 놓았다. 자전거를 배워서 얼마나 다행인가.
5. 도전하는 습관, 변화하는 습관
일 년 전, 4일 연속 자전거 타기라는 나만의 챌린지 성공을 위해 약한 황사와 여우비를 뚫고 자전거를 끌고 한강 자전거 도로로 나갔던 기억이 난다. 나의 삶을 바꿔 놓은 그날을 그냥 보낼 수 없어서 '자전거 입문 1년 기념 챌린지'를 기획했다. 제목은 '한강 한 바퀴 챌린지'다. 행주대교에서 팔당대교까지,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한 바퀴 돌면서 내가 처음 자전거를 타고 다녔던 장소를 추억하기로 했다. 총거리는 110km, 카카오 맵이 알려준 예상 소요 시간은 7시간이다. 간식은 따로 가져가지 않기로 했다(한강에는 편의점이 많다. 가다가 힘들면 편의점에 들려서 아이스크림이나 쿠키를 사 먹으면 된다.)
5월 3일, 예상보다 1시간 늦은 9시에 집에서 자전거를 끌고 나왔다. 지금 동네로 이사 오기 전에는 한강까지 자전거를 타고 나가려면 넘어야 할 장애물이 많았다. 인도를 점유한 차와 사람들 때문에 자전거에서 내려 자전거를 끌고 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현재 집은 창릉천 자전거 도로에서 가깝다. 신호등만 아니면 자전거에서 내려올 일이 없다.
하늘은 눈이 부실 정도로 밝고, 나무에 달린 초록 잎들은 싱그럽다. 한 점 없이 말끔한 날씨다.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서 자전거 타기에 더없이 좋은 날씨다. 그래서일까. 팩 라이딩(pack riding, 여러 사람이 무리를 지어 함께 달리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100km가 넘는 라이딩은 5개월 만이다. 오르막이 3단계로 되어 있는 아이유 고개(암사고개)와 경사도가 갑자기 높아지는 소찬휘 언덕(미음나루)이 걱정이다. 아이유 고개는 가볍게 넘을 수 있었다. 구리에서 서울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만난 소찬휘 언덕은 팔당대교를 건너고 충분히 쉬지 못한 탓에 허벅지에 피로가 축적이 되어서 중간에 한 번 쉬었다. 그리고 다시 자전거 페달을 밟아서 결국 정상에 올랐다. 이게 다 로드 자전거 덕분이다.
행주대교를 건너 팔당대교를 향해 달릴 때는 초반이라 속도계 숫자가 25km에 가까웠다. 그러나 팔당대교를 건너 행주대교로 돌아오는 길에는 맞바람이 얼마나 세게 불던지,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다리에 힘을 '빡빡' 주어도 속도계에 찍히는 숫자가 20km였다. 그럴수록 충분히 쉬어야 봉크(우리 몸의 중요한 에너지원인 글리코겐이 고갈된 상태를 지칭하는 말. 라이더들 사이에서 흔히 사용되는 용어.)가 나지 않는다. 봉크에 빠지면 다리에 힘을 주어도 다리가 힘을 받지 못한다. 작년에 혼자서 양평에 다녀오는 길에 봉크를 만났다. 목적지까지 10km를 앞두고 결국 라이딩을 포기하고 말았다. 가까운 한강 공원에서 20분가량을 누워 있었다. 쉬지 않고 절약한 시간을 막판에 몰아서 쉬어버린 셈이 되었다. 봉크가 오기 전에 쉬는 게 지혜다.
50~60분 달리고 5~10분 정도 쉬기를 2번 반복하고 나니 집까지 27km가 남았다. 1시간 3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다. 30분 남겨두고 쉬는 게 애매해서 쉬지 않고 그대로 달렸다. 1시간 이상 같은 자세로 자전거를 타니 팔목이 아팠다. 허벅지와 어깨는 뻐근했다. 그래도 쉬고 싶지 않았다. 예상 주행시간(7시간)을 단축하고 싶었다. 주행시간 단축을 위해 팔당대교를 건넌 뒤로는 물만 마시고 달렸다. 목표가 눈앞에 있다고 생각하니 힘이 났다. 나를 방해하던 맞바람도 사라졌다. 다시 속도계의 숫자가 20km에서 25~28km로 올라갔다.
챌린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항상 즐겁다. "돌아갈 곳이 있으면 여행이고, 돌아갈 곳이 없으면 방황이다." (오래전에 어디서 봤던 글인데 누가 한 말인지, 어디서 봤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자전거 여행이 즐거운 첫 번째 이유는 자전거를 타는 나만의 이유, 나만의 목표가 있기 때문이고, 두 번째 이유는 목표를 달성하고 돌아갈 나의 집이 있기 때문이다. 그 집에는 나를 기다리는 가족들이 있다. 나를 살게 하는 소중한 나의 가족.
130km 라이딩을 마치고 집에 도착해서 내가 한 일은 '다음 장거리 여행 목적지 정하기'였다. 130km를 달려놓고, 또 달리고 싶을까. 한계를 한 번 넘으면 '나의 한계는 과연 어디일까?' 시험해보고 싶어 진다. 한계를 뛰어넘으면 도전정신, 실험정신이 생긴다. 도전과 변화가 습관이 된다.
나는 변화하고 싶지 않은데 외부의 힘에 의해 변화를 강요당하는 것만큼 굴욕적이고 고통스러운 게 또 있을까. 살아 있는 것은 계속 변한다. 변화의 시점과 속도가 다를 뿐이다. 변화를 즐겁게 받아들이고 변화에 적응하는 것도 훌륭하지만 내가 먼저 변화를 꿈꾸고 주도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자꾸 변화를 꿈꾸고, 계획하고, 실행하면 점점 변화가 쉬워진다. 변화 또한 기술이다.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다. 자주 하면 할수록 실력이 늘어난다.
살아있는 한 나는 계속 도전하고 변화할 생각이다. 새로운 도전과 변화, 성장을 위해 매주 목표를 정하고 도전할 생각이다. 작년에 2번 다녀온 공릉천에 또 갈 수도 있지만, 올해 봄에는 공릉천 하류로 진입하는 송촌교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임진각 평화누리 공원에 가려고 한다. 이번에도 130km의 장거리 여행이다. 처음 가보는 길이라 살짝 긴장이 된다. 하지만 내 안의 ''변화와 도전을 즐거워하는 DNA' 때문에 나는 기꺼이 도전을 즐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