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끌마루 May 19. 2022

편견을 걷어 젖히면 보이는 세상

 내가 장거리 라이딩을 선호하는 3가지 이유

'한강 한 바퀴 라이딩'을 하고 너무 좋아서 '매주 한 번 장거리 라이딩(내 기준으로 100km 이상)을 하자'고 마음을 먹었다. 매일 30,40km만 타도 되는데 힘들게 100km 이상을 달리려는 이유가 뭘까? 나 혼자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봤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다 먼 곳에 있어서다. 초록색으로 뒤덮힌 산, 시원하게 흐르는 강, 지천 주변에 피어 있는 초록 풀들, 풀들 사이에 숨어 있는 들꽃들, 모내기를 위해 물을 가득 담아 놓은 논. 이 친구들은 인적인 드문 곳에 살고 있다. 사람이 그립다고 사람을 찾아 사는 곳을 떠나면 금방 시들어 죽어버린다. 그러니 내가 시간을 내서 찾아가는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이유, 살이 빠진다. 단 여기에는 한 가지 조건이 붙는다. 100km 이상 달린다고 많이 먹으면 살이 더 찌지 않을뿐이지 더 빠지지는 않는다. 자전거를 타면서 살을 빼고 싶다면 고칼로리 음식 대신 시원한 물을 충분히 마시고 라이딩 중간에 바로 에너지원으로 사용될 수 있는 바나나나 초코바 정도만 먹어야 한다. 나의 경우, 라이딩 중간에 편의점에 들려서 아이스크림 1개와 삶은 달걀(단백질 보충용), 크래커 정도만 먹고 무거운 식사는 하지 않는다. 배부르게 먹으면 몸이 무거워서 라이딩에 방해가 되고, 먹느라 시간이 지체가 되서 가급적 식사는 하지 않는다.

 세 번째 이유, 100km 이상을 달릴 때마다 내가 위로 1cm 더 성장하는 것 같아 만족스럽다. 하루에 100km 이상을 달린다?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힘든 신체 활동이나 과제를 해내고 나면 반드시 보상이 있다. '나는 여기까지야. 더는 할 수 없어!'라고 스스로 그어놓은 한계선을 한 발짝 넘을 때마다 '회복 탄력성'도 올라간다. 회복 탄력성은 바닥을 치고 위로 올라갈 수 있는 힘을 의미한다. 회복 탄력성이 큰 사람은 밑바닥까지 떨어져도 다시 튀어오를 수 있다. 라이딩 거리가 늘어날 수록 나의 회복 탄력성 또한 늘어난다.


 임진각 찍고 공릉천 

창릉천 합수부에서 출발
파주 출판단지 근린공원
송촌교. 오른쪽으로 가면 공릉천, 왼쪽으로 가면 임진각
임진각 평화누리 공원

 5월11일 수요일. 오늘의 목적지는 임진각 평화누리 공원이다. 행주대교 북단에서 평화누리자전거길을 이용해 파주출판도시, 송촌교,헤이리, 문산 임월교를 지나면 임진각 평화누리 공원이 나온다. 집에서 60km가 조금 넘는 거리다. 돌아오는 길까지 생각하면 총 거리는 120~130km가 된다. 같은 길을 두 번 가는 게 싫어서 돌아올 때는 공릉천 자전거 길로 오기로 했다. 임진각을 찍고 집으로 돌아올 때 송촌교를 건너지 않고 그대로 직진하면 작년 11월에 2번이나 방문한 공릉천 하류가 나온다. 공릉천 하류는 자덕(자전거 마니아를 줄여서 자덕이라고 부른다.)들의 포토존이다. 그만큼 멋지다. 그렇지 않아도 공릉천의 봄이 보고 싶어서 언제 갈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 라이딩으로 임진각 평화누리 공원과 공릉천까지 볼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공릉천으로 돌아오면 주행거리도 10km 줄일 수 있다. 한 개의 돌로 세 마리의 새(임진각, 공릉천, 주행거리 단축)를 잡다니, 기분이 좋다.

 파주 평화누리 자전거길 3코스는 창릉천 합수부(창릉천과 한강이 만나는 지점)에서 시작된다. 도로 위에 그려진 파란선과 가로등에 걸린 '평화누리 자전거길'이라는 표지판과 화살표만 잘 보고 따라가면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생각보다 공도구간이 많지만 자동차 통행량이 많지 않아서 나같은 초보도 안심하고 달릴 수 있다. 다만 자전거길이 끝나는 내포3리에서 문산 임월교 교차로까지, 2km 정도의 공도 구간은 공사중이라서 주의를 기울여서 달려야 한다. 차들의 통행량이 많지 않지만 덤프차가 자주 다녀서 무서웠다. 공사가 하루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임진각까지 이어지는 파주 평화누리 자전거길은 대부분 평지다. 그러나 문산 임월교에서 임진강역까지 총6km 되는 거리는 낙타등처럼 짧은 업힐이 많다. 어떤 사람은 짧은 업힐 때문에 라이딩이 지루하지 않았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자주 나오는 업힐에 기어와 속도를 맞추는 게 어려워서 힘들었다고 했다. 나는 후자쪽이었다. 평지에서는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권한이 나에게 있었다. 목적지를 향해 질주하고 싶다면 코어 근육에 힘을 주고 페달을 힘차게 밟으면 된다. 반대로 주변 풍경을 즐기면서 천천히 가고 싶다면 몸에서 힘을 빼고 가볍게 페달을 밟으면 된다. 그러나 낙타등 구간에서는 내 마음대로 하기가 어렵다. 업힐, 다운힐에 따라서 재빠르게 기어를 내렸다 올렸다 해야 한다. 길 상태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면 다칠 수 있다. 임진각 평화누리 공원을 찍고 돌아오는 길에 다운힐에서 미처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신나게 내려오다가 갑자기 나타난 급커브에서 그만 '쾅'하고 넘어지고 말았다. 사고의 충격으로 오른쪽 장갑 손바닥 부분과 바람막이 점퍼의 오른쪽 소매가 찢어졌다. 오른쪽 팔과 다리는 흙에 쓸려서 찰과상을 입었다. 자전거 기어 뒷변속기와 행어가 충격에 구부러져서 기어 변속이 부드럽게 되지 않았다.  

 나는 위기를 만나면 정신이 또렷해진다. 나는 용수철처럼 재빠르게 일어나 쓰러진 자전거를 다시 세웠다. 자전거 상태를 살피고, 바로 사고현장에서 벗어나 자전거 쉼터로 갔다. 자전거 쉼터에서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사고 소식을 알리고 자전거 기어 변속이 잘 되지 않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물어봤다(화상통화로). 남편이 알려주는 대로 임시 조치를 취했다. 그리고 의자에 앉아 잠시 쉬면서 집까지 남은 거리를 계산해 봤다. 30km가 좀 넘었다. 사고가 나지 않았다면 2시간 안에 집에 도착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고로 자전거와 나, 둘 다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무리하게 달리다가 또 사고가 날 수 있을 것 같아서 천천히 가기로 했다. 가다가 편의점에 들려 생수와 간단한 간식으로 수분과 에너지를 보충했다. 한 번의 라이딩으로 임진각, 공릉천, 총 주행거리와 시간 단축이라는 세 마리의 새를 잡는가 했는데 사고로 '주행시간과 거리의 단축'은 놓치고 말았다. 그래도 감사했다. 남은 거리가 30km 밖에 되지 않아서 감사했고, 부러진 데가 없어서 감사했고, 자전거가 앞으로 잘 굴려가서 감사했다. 쉼터에서 나 혼자 자전거 상태를 살피고 있을 때 먼저 다가와 '무슨 일 있으세요?' 하며 내 자전거 상태를 봐준 청년에게도 감사했다. 그러나 진짜 감사는 따로 있다.


 파주 평화누리 자전거길 3,4코스와 공릉천의 재발견

 이번 라이딩으로 경기 서북부 라이딩에 대한 나의 편견이 깨져서 정말 감사했다. 자전거를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자전거로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처음에는 가까운 거리의 한강 자전거 도로를 다니면서 나의 호기심을 채웠다. 그러나 얼마 못가 한강 너머의 세계가 궁금해졌다. 자덕(자전거 덕후의 줄임말)들의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갈 만한 곳'을 찾아 도전했다. 그렇게 해서 내가 자주 다니는 코스가 생겼다. 경기 동부권 자전거 코스다. 경기 동부로 가면 널찍한 강(북한강,남한강,탄천,왕숙천)과 짙푸른 산이 잘 어울러진 풍경을 감상하면서 자전거를 탈 수 있다. 봄에 가도 좋고, 여름에 가도 좋고, 가을에 가면 더 좋은 코스다(겨울은 안 가봐서 잘 모르겠다.)

 경기 동북부로만 다니다가 남편이 추천해서 '서해갑문'에 가게 되었다. 경인 아라뱃길을 따라 가면 국토종주의 출발점이자 종착점(부산에서 출발하면 종착점, 서울에서 출발하면 출발점)인 서해갑문이 나온다. 서해갑문까지 다녀와서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아라뱃길 라이딩은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아요." 더울 때 가서 힘들었을까? 아니면 평지의 연속이라 지루해서 그랬을까? 처음에는 그냥 그랬던 길도 다시 가면 다를 수 있다. 그런데 나는 고작 한 번 다녀오고 '경인 아라뱃길 라이딩은 별로다'라는 닻을 내려버렸다. 그리고 경인 아라뱃길을 포함한 경기 서부권 라이딩 코스는 쳐다 보지 않았다. '역시 동부가 최고지' 하면서 동부권 라이딩 코스만 부지런히 찾았다.

 팔당이 지겨워질 때쯤 유튜브에서 '공릉천 순환코스 라이딩'을 발견하고, 다시 한 번 경기 서부쪽으로 방향을 틀어 공릉천에 2번 갔지만 딱 거기까지 였다. 공릉천 외 다른 라이딩 코스는 찾아 보지 않았다. '한 번 편견의 닻을 내리면 마음은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이게 편견의 힘(?)인가. 편견 때문에 이사도 경기 동북부로 가려고 했다. 그러나 어쩌다보니 마음에 전혀 없었던 경기 서북부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내가 사랑하는 라이딩 코스와 멀어져서 아쉽고 서운했다. 그러나 이참에 새로운 라이딩 코스를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임진각 평화누리 공원'을 목표로 정하고 파주 평화누리 자전거길 3,4코스를 따라 임진각까지 갔다가 공릉천 자전거 길로 돌아왔다. 내가 사랑했던 팔당 코스는 '청량'했다. 하늘도, 강도 티 없이 맑았다. '동고서저'라는 지형적 특징 때문에 겨울에는 춥지만 여름에는 시원했다. 내가 열이 많아서 '맑고 서늘한' 동부권 라이딩 코스를 선호했을까. 그러나 이번 라이딩으로 나는 '파주 평화누리 자전거길 3,4코스', 그리고 '공릉천 자전거 순환 코스'와 사랑에 빠졌다. 옛 애인(팔당)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깊이 빠졌다.   

임진각 가는 길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철책과 초소. 그 밑에 핀 풀과 하늘이 너무 아름답다.

 파주 평화누리 3,4코스와 공릉천은 나에게 '평화로움'으로 다가왔다. 파주 평화누리 자전거길을 따라 북으로 갈수록 '민간인 통제선' 이라는 팻말과 함께 철책이 자주 눈에 띈다. 그러나 흉물스런 철책과 초소는 조금도 위협적이지 않다. 철책 아래 핀 노란 들꽃과 초록 풀들 때문에 철책마저 아름답게 보인다. 시원하게 뚫린 자유로 위를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들 때문에 시끄러울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자유로 위를 부드럽게 덮고 있는 푸른 하늘과 자유로 양쪽을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드넓은 들판이 소음을 막아 주어서 생각보다 시끄럽지 않다. '이야, 너무 좋다!'는 마음의 소리가 더 크게 들릴 정도다.

 분단과 갈등으로 우리가 사는 세상은 평화롭지 않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전쟁이 진행중이고, 한반도는 70년 넘게 남북으로 갈려 총칼을 들이대고 있다. 대한민국은 총과 칼만 들지 않았을 뿐이지 매일이 전쟁이다. 내 안에서도 매일 진탕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나는, 우리 모두는 평화를 원한다. 그런데 '임진각'과 '공릉천'으로 향하는 자전거 길에서 나는 '조용한 평화'를 만났다. 쭉쭉 뻗은 자유로와 모내기를 기다리는 논 사이에 놓인 자전거길을 달리다보면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북한과 가까워 가장 위험하다 할 수 있는 파주의 평화누리 자전거길에서 '평화'를 느끼다니 아이러니하고 재밌다. '평화'의 극치는 당연 '공릉천 하류'이다. 임진각과 공릉천으로 갈리는 송촌교 위에서 바라보는 공릉천 하류는 언제봐도 멋있다. 공릉천 하류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해지고 평안해진다.

왼쪽은 공릉천 하류, 오른쪽은 공릉천에서 쉬고 있는 철새들
오후 3시의 공릉천

 나는 '화'가 많다. 처음부터 화가 많은 사람은 아니었다. 내가 극복할 수 없는 환경과 나보다 강한 사람들에 의해 나의 의지와 계획이 꺽이고 상처를 입으면서 내 안에 화가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했다. '화'는 평소에 잠잠하다. 그러다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폭발한다. 젊을 때는 화가 나도 꾹 참을 수 있었는데 마흔이 넘어가고 몸의 에너지가 소진되어 갈수록 화를 참는 게 힘들다. 그런데 '공릉천'에 가면 화가 녹아버린다. 마법같다. 내가 어찌 '공릉천'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편견을 걷어내고 마주한 세상, 너무 좋은데

 경기 서북부로 이사온지 한 달이 넘었다. 우리 집 둘째는 아직도 이 곳을 '깡촌'이라고 부른다. 서울의 중심에서 떨어져 있을 뿐 사람 사는 데 필요한 것은 다 있는데도 이 녀석은 고집스럽게 '깡촌'이라고 부른다. 하긴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역 주변을 벗어나면 서울에서 보기 힘든 논과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아서 제멋대로 자란 풀들이 가득하니 말이다. 그래도 나는 서울에서 떨어진 '이 곳'이 좋다. 내가 사랑하는 '공릉천'이 있어서 좋고, '평화누리 자전거길'이 있어서 좋다.

 '경기 서북부는 별로야'라는 편견을 걷어 젖히니 또 다른 세상이 보인다. 내가 그렇게 바라던 고요하고 평화로운 세상이 보인다. '완전 내 스타일이야!' 언제는 '별로야'라고 하더니. 한 달도 안 돼서 '내 스타일이야'라고 말하는 내가 참 변덕스럽고 우습다. 이래서 '편견'이 무섭다. '편견'에 갇히면 보석같이 빛나는 세상을 볼 수 없다. 가장 가까운 곳에 내가 찾던 '파랑새'가 있는데 그 놈의 '편견' 때문에 보지 못한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자전거 덕분에 세상 사는 지혜를 또 배운다. 자전거 위에서 배우는 지혜는 책에서 배우는 지혜와 다르다. 책에서 배우는 지혜는 내 것이 아니다. 내가 그 지식을 몸소 실천하기 전까지는 남의 것이다. 죽어 있는 지식이다. 그러나 땀을 흘리고 넘어지고 깨지면서 배운 지식은 나의 것이다. 나의 몸에 새겨져서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고, 머리 나쁜 나도 잊어버릴 수 없는 지식이다. 내가 자전거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 어디에서도 배울 수 없는 지식을 자전거 위에서 배우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아라뱃길은 별로야' 라는 편견을 깨기 위해 '아라뱃길 자전거길'을 다시 달려야 할 것 같다. 일 년 만에 다시 달리는 '아라뱃길'은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 빨리 가서 내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다. 여전히 별로라고 해도 상관없다. '그 풍경이 그 풍경이겠지, 일 년 사이에 뭐가 크게 달라졌을라고' 그러나 내가 달라졌다.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지루하다'는 그 길에서 그 길만의 매력을 발견할지, 누가 알겠는가. 평범한 속에서도 비범함을 볼 수 있는 눈이 있다면 '지루함' 속에서 '놀라움'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편견을 걷어내자.

 

 

 

작가의 이전글 자전거 입문 1년, 달라진 것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