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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끌마루 May 28. 2022

아라자전거길에서 인생을 배우다

 '일주일에 한 번, 장거리 라이딩 챌린지'의 두 번째 목적지는 '다산 생태공원'이었다. '다산 생태공원'은 팔당을 넘어 능내역(폐역) 전에 오른쪽으로 빠지면 나온다. 다산 정약용이 18년간의 유배생활을 끝내고 남양주로 돌아온 후 한강을 바라보며 산책을 즐겼던 곳이 지금의 다산 생태공원이라고 한다. 시원한 강물과 울창한 나무와 꽃들이 잘 어우러진 아름다운 공간이라는 소개글에 끌려서 자전거를 타고 남편과 함께 가보려고 했었다. 그런데 다산 생태공원으로 빠지는 길을 몰라서 헤매다가 그대로 북한강 철교를 건너는 바람에 못 가고 말았다.

 물론 그 이후로 갈 수 있는 기회는 많았다. 하지만 다산 생태공원보다 가보고 싶은 곳이 많아서 다음으로 미루었다. 그게 벌써 일 년이 되었다. 그 사이에 내가 경기 서북부로 이사를 와서 '다산 생태공원'까지의 거리가 왕복 70km에서 130km로 멀어졌다. 6개월 넘게 팔당호를 보지 못해서 팔당에 가는 김에 다산 생태공원도 둘러보면 좋을 것 같았다. 다산까지 100km가 넘어서 '일주일에 한 번, 장거리 라이딩 챌린지'에도 잘 맞는 것 같아서 '이번에는 꼭 가리라' 마음을 먹었다.

 나의 마음은 이미 자전거를 타고 '다산 생태공원'으로 가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지 못한 복병이 나타났다. '경인 아라뱃길-아라서해갑문(정서진)' 이 내 앞에 나타나 나의 마음을 저울질했다. '내가 경인 아라뱃길을 언제 갔었지?' 궁금해서 자전거 일지를 찾아봤다.


2021.6.8. 화. 아라서해갑문 인증센터

새벽 3시 20분에 눈이 떠졌다. 일어나서 4시까지 기도하고 식사했다.
비가 오다가 멈춰서 다행이다. 예상보다 일찍 집에서 나왔다(4:50). 옥수까지 가는데 20분 걸렸다.
옥수에서 5:20에 출발해서 6:30에 방화대교에 도착했다.
6:30에 방화대교에서 출발해서 8:10 아라서해갑문 인증센터에 도착했다. 중간에 길을 헤매지 않았다면 더 일찍 도착했을 것이다.
9시에 방화대교로 다시 출발했다.
집에 도착했을 때 시간이 12:40.
경인 아라뱃길은 시작점과 끝나는 점의 길이 험해서 다시 가고 싶지 않다.
소소하지만 재밌는 이벤트나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다시 갈 것 같지 않다.
한 번으로 족하다.

 겨우 한 번 다녀오고 '다시 가고 싶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다니 내가 정말 성급한 사람이구나, 알게 된다. 나태주 시인의 시가 생각난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 어디 사람만 그럴까. 자세히, 오래 볼수록 예쁘고 사랑스러운 곳이 있다. 나에게는 공릉천 자전거길이 그렇고, 북한강 자전거길이 그렇다. '아라뱃길-아라서해갑문(정서진)'이 그런 곳이 될 수도 있는데 내가 너무 성급하게 '넌 아니야'라고 말해 버렸다.


 다산 생태공원, 경인 아라뱃길, 이 둘의 힘겨루기에서 나는 아라뱃길의 손을 들어주었다. 작년에는 빨리 다녀오려고 하다가 풍경을 자세히 보지 못했다. 이번에는 아라뱃길과 아라서해갑문의 풍경을 충분히 보고 오리라.

 작년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경인 아라뱃길을 찾아가는 길이 복잡했었던 것 같다. 카카오 맵을 보고 가는데도 길을 못 찾아서 잠시 어리둥절했었다. 이번에는 잘 찾아갈 수 있을까? 두 번째 가는 길이니 처음처럼 헤매지 않겠지. 남편의 말로는 내가 처음 가는 길도 잘 찾아간다고 하니까, 나의 감을 믿어보자.

 일 년 만에 다시 찾은 경인 아라뱃길, 처음이 아닌데 처음 온 것처럼 낯설어서 당황스러웠다. 다행히 나 말고 아라뱃길을 찾는 라이더들이 많아서 그분들 뒤를 졸졸 따라갔다. 덕분에 이번에도 미로 같은 물류 센터를 잘 빠져나올 수 있었다. 고속도로처럼 시원하게 뻗은 길은 1년 전과 다름없었다. 오히려 더 좋아졌다. 오래된 노면들이 새 아스팔트 길로 바뀌어 있었다.

물류센터를 빠져 나오면 나오는 아라자전거길
인공적인 물길을 따라 곧게 뻗은 아라자전거길

 한 유튜버가 '서해갑문(정서진)으로 갈 때는 인천 앞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힘들어요'라고 해서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달렸다. 역풍은 맞았다. 그러나 그럭저럭 견딜만한 바람이었다. 업힐도 없는 아라뱃길에서 역풍마저 불지 않았다면 라이딩이 싱거웠을지 모른다. '누가 이기나 한 번 해보자 이거지. 그래 한 번 내기해보자. 내가 밀릴 줄 알고. 천만에. 바람아 비켜라. 내가 간다' 혼자 중얼거리면서 더 세게 페달을 밟으면 바람과 겨루어 이기는 재미가 있다.

 때마침 그날 날씨가 더워서 땀이 많이 났는데 역풍이 불어서 열이 금방 식었다. 이럴 때는 역풍도 쓸모가 있다. 이 역풍은 돌아올 때 뒤에서 밀어주는 바람이 된다.  갈 때는 역풍, 올 때는 순풍. 이런 바람은 지루할 수 있는 라이딩을 적당히 즐겁게 해주는 친구 같은 바람이다.

 진짜 무서운 바람은 갈 때도 역풍인데 돌아올 때도 역풍이다. 여기에 바람 세기까지 더해지면 고개를 들기 어렵다. 자전거가 바람에 밀려 흔들리면 '이러다가 쓰러질 수도 있겠다' 싶어서 덜컥 겁이 난다. 아라뱃길을 지키는(?) 바람은 다행히 '순풍을 가장한 역풍'이어서 갈 때는 달려서, 올 때는 날아서 올 수 있었다.

국토종주의 시작점(서울에서 출발하면)
정동진의 반대에 있다고 해서 정서진
정서진에서 바라본 갯벌과 영종대교

  무사 안전 라이딩은 나의 실력만으로 되지 않는다. 자전거 길에서 만나는 바람과 노면의 상태, 그리고 가끔 다른 라이더들의 도움이 더해져야 한다. 이 중에서 가장 큰 공은 당연 '자전거 길'이 아닐까. 자전거 도로 상태가 불량하면 사고 위험이 올라간다. 자전거 타이어에 구멍이 생길 가능성도 높고, 울퉁 불통한 노면에 자전거 바퀴가 부딪힐 때마도 엉덩이가 '통통' 튀어 올라서 많이 아프다.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만큼 자전거 도로가 잘 깔린 나라가 드물다고 한다. 인정하기 싫지만 이게 다 MB 때문이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 4대 강 사업과 함께 그가 야심 차게 내세운 정책이 '국토종주 자전거길 조성'이었다. 덕분에(?) 아라뱃길 자전거 도로도 생겼다고 볼 수 있다.

 아라뱃길 자전거길은 공릉천 자전거길과 다르게 인공적, 인위적 느낌이 많이 난다.  공릉천은 자연 하천을 그대로 두고 그 옆에 자전거길을 조성했기 때문에 높낮이가 있고 곡선이다. 하지만 아라뱃길은 땅에 수로를 파서 거기에 서해의 바닷물을  채우고 수로 끝에 문(아라서해갑문)을 만들어서 물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가둬 두었기 때문에 사시사철 높낮이가 일정하고 길은 자를 대고 자른 듯 곧다.

이명박 정부의 4대 강 사업의 일부로서 사업의 적합성뿐만 아니라 경제성, 환경적 영향 등등 때문에 논란을 빚었다. 한편으로는 한반도 대운하의 시범사업 성격도 있다. 완공 이후 사용량이 계획의 10%도 안되어 사실상 운하로써의 기능은 상실하였고, 운하 옆에 편도 18.2㎞ 길이로 조성되어 있는 자전거길(아라 바람길)로써 호평을 받고 있다. 그래서 일부 사람들은 이 운하를 가리켜 '2조 원 대 자전거도로', 또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자전거도로'라고 부르기도 한다.
_나무 위키

 아라뱃길을 만드는 데 '2조 원'이 들어갔다. 내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자전거도로'를 공짜로 달렸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나의 남편이 내는 세금이 여기에 들어갔으니 완전 공짜라고 할 수도 없지만 돈만 내고 이용은 하지 않는 분들을 생각하면 괜히 미안해진다. 한강 자전거 도로처럼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길이라면 덜 미안했을 것 같다. 자전거 덕후와 가까이 살고 있는 주민들만 이용하는 길을 유지하기 위해 전 국민의 피땀 어린 세금이 지금도 들어가고 있다고 한다. '길이 너무 좋아'하며 마냥 즐거워했던 게 부끄럽고 민망하다.

 집에서 멀지 않고, 길이 좋고, 바다를 볼 수 있다는 이점 때문에 종종 아라뱃길을 찾을 것 같다. 아라뱃길에 들어간 혈세를 생각하면서 감사한 마음으로 달리게 될 것 같다. 오늘도 나는 자전거 도로에서 배운다. 세상은 나 혼자 살 수 없다는 평범한 사실을. 싫든, 좋든 우리는 '함께', '같이', '더불어' 살수 밖에 없는 공동 운명체라는 사실을.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자전거를 타면서 나는 '철'없는 어른에서 '철'든 어른으로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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