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권유로 '한국어 교원 자격증 3급' 공부를 하고 있다. 한국어 교원 자격증을 따려면 먼저 국가가 인정한 기관에서 한국어 교원 양성 과정(이론+실습=120시간)을 반드시 수료해야 한다. 양성 과정을 수료해야 한국어 교육능력 검정시험을 치를 수 있다. 시험 일 전에 한국어 교원 양성 과정을 이수하지 못하면 시험을 치를 수 없다.
한국어 교육능력 검정 시험은 2차까지 있다. 1차는 필기, 2차는 면접이다. 시험에 합격하면 끝? 아니다. 마지막 관문이 남아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심사가 기다리고 있다. 이 심사를 거치면 '한국어 교원 자격증 3급'이 주어진다(자세한 사항은 https://kteacher.korean.go.kr/info/grt/concept 참조).
이것은 3급에 해당하는 절차이고, 2급은 다르다. 한국어 전공과목을 이수하면 별도의 시험 없이 '교원 자격증 2급'이 나온다. 학위를 이수해야 하기 때문에 3급에 비해 시간이 오래 걸리고 비용도 꽤 든다. 어떤 자격증이 더 좋을까?
'한국어교원자격증 2급을 가진 선생님에 대한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부족하다.' 이 문구만 보면 '이왕 공부하는 거 수요가 많은 2급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러나 이 문구가 어디서 나왔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이 문구의 출처는 '00 학원'이다.
3급이나 2급이나 둘 다 국가공인자격증이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외국인을 직접 가르쳐 본 경험이 없으면 3급이나 2급이나 거기서 거기다. 내가 채용 담당자라면 '2급이든 3급이든 자격증이 있으니 됐고요. 얼마나 잘 가르칠 수 있는지 당신의 실력을 보여 주세요.'라고 요구할 것 같다. 그러니 학원에서 던지는 낚시성 글에 현혹되지 말고, 내 형편과 수준에 맞는 공부부터 하면 된다. 참고로 여유를 갖고 천천히 배울 수 있는 2급보다 짧은 시간 안에 이론과 실습까지 마쳐야 하는 3급이 더 어려울 수 있다.
나는 시간이 없기 때문에 3급을 택했다. 양성 과정을 보니 험난한 과정(?)이 예상되었다. 게다가 나는 대학을 졸업한 지 20년이 되어 간다. 시험을 위한 공부는 너무 오랜만이라 걱정이 앞선다. 그런데도 내가 '한국어 교원 자격증 3급' 공부를 시작한 이유. 남편의 말처럼 한국어 강사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어서? 비대면으로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어서? 노년에 파트타임으로 하기에 괜찮은 일이라서? 세 가지 다 그럴듯하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아니다.
내가 한국어 교원 양성 과정에 발을 들여놓은 이유는 공부가 너무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마흔이 넘어 나는 공부가 하고 싶어졌다. 젊을 때는 뭐하고 이제 와서 공부를 한다는 거야? 그러게 말이다. 하라고 할 때는 열심히 안 하고, 하라고 떠미는 사람도 없는 지금 공부가 너무 하고 싶다고 하는 내가 나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해가 되지 않는데 억지로 이해하려고 애쓰고 싶지 않다. 이제는 나의 마음이 원하는 일을 지지하고 응원해 주고 싶다. 그래, 괜찮아. 이제는 네 마음이 원하는 대로 해봐. 그렇게 해도 될 만큼 내가 성숙해졌다고 믿는다. 나는 나를 믿는다. 내가 하고 싶은 공부라면 분명히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가 지금의 나를 더 멋진 사람으로 변화시켜 줄 것이다.
'그래, 한 번 해보자'라고 결심이 선 날 한국어 교원 양성 과정을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는 학원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바로 등록을 했다. 교재가 도착하고 온라인 영상을 볼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다. 교재는 달랑 2권이지만, 과목은 4개다. 설레는 마음으로 강의를 들었다. 강의를 들을 때는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은데 막상 문제를 풀어보면 앞에 배운 내용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내가 바보 같았다. 이렇게 빨리 절망과 좌절감에 부닥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들어간 돈이 있어서 '못 하겠다'라고 할 수도 없고 난감했다.
좌절의 순간, 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가 생각났다. 지인들을 따라 놀러 온 월드컵 공원. 지인들은 근처에서 자전거를 빌려 한강으로 나가 라이딩을 즐겼다. 자전거를 못 타는 나는 자저거와 함께 공원에 남았다. 나는 사람들이 돌아올 때까지 자전거와 사투(?)를 벌였다. '이 나이 먹도록 자전거 하나 안 배우고 뭐 했냐'라고 자책하면서 절름발이처럼 한 발은 땅을 디디고, 한 발은 페달을 밟으며 앞으로 앞으로 나갔다.
자전거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치열하게 배울까. 지금 생각해보면 웃음이 나온다. 그까짓 자전거 못 타면 어떻다고. 그러나 그때 나는 절박했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 소중한 두 생명을 얻었고, 두 아이에게 나의 전부를 쏟아부었다. 아이들과 함께 하기로 한 나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지만, 육아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는 나의 모습에 기분이 우울해졌다(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가치 있는 일이 육아 이건만 그때는 왜 몰랐을까.) 뭐라도 좋으니 나도 다른 일을 해보고 싶었다. '네가 할 줄 아는 게 뭐가 있니. 한심하다. 한심해'라고 조소를 퍼붓는 나에게 '나도 할 수 있는 있는 게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날 나는 두 발로 자전거 페달을 밟고 앞으로 나가는 데 성공했다. 1시간 만에 이룬 성공이었다. 그로부터 7,8년이 지나서 내 생애 처음으로 내 자전거를 샀다. 그리고 그 자전거를 타고 한강 자전거 길을 활보했다. 그리고 일 년도 안 돼서 동쪽으로는 춘천과 양평, 서쪽으로는 김포, 파주 평화누리길, 임진각까지 진출했다.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이루어진다.' 우연히 책에서 발견한 글귀가 지금은 내 신조가 되었다. 자전거 덕분이다. 영영 못 탈 줄 알았던 자전거도 탔는데 '한국어 교원 자격증' 하나 못 따겠는가. '나는 할 수 있다.', '나에게는 어려운 공부를 해낼 힘이 있다.', '한 번 봐서 안 되면, 두 번, 세 번, 네 번, 외워질 때까지 보면 된다.', '파이팅!'
출발은 '어쩌다가'였지만 지금은 '반드시 해내고 싶은 것'이 되어 버린 한국어 교원 자격증 3급 공부. 한국어 교육 공부는 처음이라 초반에 좌절을 맛봤지만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책을 펼쳤다. 그렇게 두 번, 세 번을 보고 나니 책 속의 글자가 머리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게 반복의 힘이구나, 느낀다.
공부를 더 즐겁게 할 수 있는 나만의 팁(TIP)도 찾았다. '나는 이미 시험에 합격했어. 나는 지금 비대면으로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어'라고 상상하면 힘든 공부도 즐겁게 해 낼 수 있다. 시험 합격 이후의 로드맵까지 머릿속에 그려두면 동기 부여가 된다.
누가 알았을까. 내가 마흔 넘어서 다시 공부를 하게 될 줄이야. 이래서 인생은 재밌다. 마흔 넘어 시작한 공부는 10대, 20대의 공부와 다르다. 10대에는 왜 공부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남들이 다 하니까 했다. 20대에는 먹고살려면 공부밖에 없다고 하니까, 살기 위해서 했다. 30대에는 타인을 위해 나를 바치는 시기였다. 내가 하고 싶었던 공부는 따로 있었지만 타인을 위해 나의 공부는 잠시 내려놓기로 했다. 그리고 타인에게 도움이 될 만한 공부를 했다.
고단한 시간을 용감하게 이겨내고 맞이한 나의 40대, 이제야 비로소 나는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한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공부, 즐겁고 재밌다. 공부에 들어가는 돈도, 시간도 아깝지 않다. '너의 공부를 응원해'라는 문자와 함께 무료 음료 쿠폰을 보내주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건만 잘해서 묵직한 결과를 내고 싶다. 이래서 늦깎이 배움이 무섭다. 늦은 나이게 자발적으로 시작한 공부, 아무도 말릴 수 없다. 말렸다가는 화(?)를 입을 수 있다.
한국어 교육능력 검정시험이 2달 하고 2주 남았다. 1차 필기시험이 끝나면 바로 2차 면접시험을 준비해야 한다. 실습에서 만난 한국어 강사님의 말에 의하면 2차 면접에서 떨어지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열심히 하라'는 메시지. 내가 원해서 하는 공부니까 무서운(?) 말도 긍정적으로 들린다.
1차 필기시험에 합격하면 운전면허에 도전해 볼 생각이다. 바퀴 달린 것은 다 싫어해서 운전도 안 배웠다. 그러나 이제는 배워야 할 것 같다. 나이 많으신 부모님의 발이 되어 드리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배우고 익혀야 할 게 많아서 즐겁고 행복한 인생이다.
내 나이가 되면 자식들 공부시키느라 바쁘다. 글 좀 쓰려고 동네 카페에 가면 한쪽 구석에서 엄마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수다를 떨고 있다. 수다의 내용은 주로 '자녀 공부'다. 나도 고2, 중3을 둔 엄마다. 나이 들어 공부를 해보니 공부는 시켜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공부는 자기가 하고 싶어서 해야 진짜 공부가 된다.
나는 아이들에게 '너 커서 뭐가 될래? 공부해!'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공부하라는 잔소리와 학원에 보내는 대신에 어렵고 힘든 공부를 해낼 수 있는 힘을 길러주었다. 그것도 딱 초등학교 때까지만. 아이들이 중학교에 들어간 뒤로는 옆에서 가만히 관찰만 하고 있다. 아이들이 '엄마, 저 00문 제집 필요해요. 사 주세요'라고 요청하면 그때 함께 서점을 가거나 온라인으로 사 줄 뿐이지 내가 먼저 나서서 아이들이 넘어야 할 장애물을 제거해 주지 않는다.
둘 다 공부를 아주 잘하는 것도, 아주 못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누가 시켜서 억지로 하고 있지는 않다. 둘 다 자기만의 공부 방식과 속도에 맞춰서 공부하고 있다. 덕분에 나는 '나의 공부'를 할 수 있는 시간과 여유를 얻었다. 아이들에게만 '공부하라'라고 하지 말고 엄마, 아빠도 옆에서 같이 공부하면 어떨까. 누가 시켜서 하는 공부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진짜 공부 말이다.
공부하는 자만이 공부하는 사람의 어려움과 행복을 알 수 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엄마는 엄마대로 공부하면 엄마 입에서 나오는 말이 달라질 것이다. '공부하느라 힘들지. 엄마가 해보니까 알겠다. 그래도 열심히 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야. 우리 같이 힘내서 공부하자!'라는 격려의 말이 그냥 나올 것이다.
아이들 기말고사가 한 달도 남지 않았다. 첫째는 기말고사 준비하랴 동아리 활동하랴 소수 전공 공부하랴 바쁘다. 운동을 좋아하는 둘째도 기말고사 한 달 전에는 책상에 앉아서 문제집을 풀려고 애쓴다. 그 옆에서 나도 두 달 남은 한국어 교육능력 검정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외울 내용은 많고, 시간은 없어서 마음이 쪼인다. 그래도 좋다. 내가 다시 학생 때로 돌아간 것 같아서 가슴이 뛴다. 1차 필기시험에 합격해서 아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아들들아, 엄마 합격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