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8.20. 토요일 아침이다. 다른 가족들이 깨지 않게 혼자 조용히 식사를 마치고 6시 50분에 집에서 나왔다. 집에서 목적지까지는 지하철로 50분이다. 가슴이 떨린다. 대학 수학능력시험 이후 처음 느껴보는 떨림이다. 오늘은 '한국어 교육능력 검정 1차 시험'이 있는 날이다.
올해 초 남편의 권유로 '한국어교원자격증 3급' 공부를 시작했다. 외워야 할 내용이 많아서 힘들었지만 끝까지 해내고 싶었다. '한국어교원자격증 3급'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을지라도 나는 자격증을 따고 싶었다. 한두 번 봐서 안되면 세 번, 네 번, 될 때까지 보면 된다. <중용> 20장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주위 사람이 한 번 해서 잘하면 나는 백 번을 할 것이며
주위 사람이 열 번 해서 잘하면 나는 천 번이라도 할 것입니다.
과연 이 방법을 제대로 한다면 비록 사람이 처음에 어리석다고 하더라도 나중에 반드시 똑똑하게 될 것이고,
비록 사람이 유약하다고 하더라도 나중에 반드시 강건해질 것입니다.
대본을 완벽하게 암기하기로 유명한 윤여정 씨의 암기 비결은 '반복'이라고 한다. 성실함과 꾸준함. 이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 그런데 나의 장점 중 하나가 '성실함과 꾸준함'이다. 어릴 때부터 나는 그랬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은 따지지 않고 끝까지 해냈다. 그렇게 해야 내 마음이 편했다. 그래서인가. '한국어교원자격증 3급' 공부가 포기가 안 된다. 자석에 끌리듯이 그냥 계속하게 된다.
자격증을 준비하는 중에도 '나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고, 글을 쓰는 사람이다.'는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 일주일에 한 번은 자전거를 타고, 브런치에 글을 발행하려고 했다. 그러나 성실한 나도 시험을 두 달가량 남겨 둔 상황에서는 자전거와 글쓰기를 시험 이후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남편은 올해 안 되면 내년에 또 보면 된다고 했지만, 나는 올해 '한국어 교육능력 검정 1,2차 시험 합격'이라는 열매를 반드시 맺고 싶었다. 한국어교원자격증 3급만 가지고서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그래도 내가 자격증을 따려는 이유는 뭘까?
첫째, 나 자신에게 지금 시작해도 늦지 않다고, 노력하면 너도 해낼 수 있다고, 그러니까 용기를 내라고 말해 주고 싶었다.
둘째, 이번 성공을 발판 삼아 또 다른 일에 도전할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대입과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두 아들에게 '힘내'라는 말보다 '엄마의 도전과 성공'이 더 힘이 되지 않을까.
나는 잠시 자전거와 글쓰기에게 이별을 고하고, 한국어 교육능력 검정시험에 매진했다. 2021년 기출문제풀이를 시작으로 2017년 기출문제까지 풀어 나가면서 내용을 정리했다. 기출문제를 풀 때마다 새로운 내용이 튀어나왔다. 한국어교원양성과정 이론 수업에서 듣지도 보지도 못한 새로운 개념이 튀어나와서 당황했다. 남은 시간은 별로 없는데 공부할 게 자꾸 나오니 울고 싶었다. 이러다가 1차 시험에서 떨어질 것 같아 겁이 났다. 이런 마음으로는 공부를 계속할 수가 없었다. 마음을 안정시키는 게 우선이었다. 나는 잠시 공부를 멈추고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나: 왜 그렇게 떨어?
나: 남은 시간은 없고, 공부할 건 너무 많고. 이러다가 떨어질까 봐, 두렵고 걱정이야. 시간이 있을 때 열심히 하지 않은 게 너무 후회돼.
나: 그래 너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돼. 그런데 이제 와서 후회한다고 뭐가 달라져?
나: 아니. 시간만 더 낭비할 뿐이지.
나: 잘 알고 있네. 그렇게 걱정하고 후회할 시간에 하나라도 더 보는 게 낫지 않겠어?
나: 그래, 네 말이 맞아.
나: 그리고 이번에 떨어지면 어때. 내년에 또 있잖아.
나: 그러게 말이야. 올해 떨어지면 내년에 또 보면 되지.
생각처럼 일이 풀리지 않을 때 무리하게 일을 진행하기보다 잠시 멈춰서 나와 대화를 해 보자. 그러면 내가 왜 이 일을 하기로 했는지, 목적을 다시 생각할 수 있다. 목적이 분명하면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고 앞으로 나갈 수 있다. 목적이 살아 있으면 방법은 어떻게든 찾아내게 되어 있다.
그런데 가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공부와 목적 사이에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때 전혀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내용인데 시험에 나온다고 하니까 외워야 할 때, 공부할 맛이 나지 않는다. 공부할 맛을 되찾기 위해서 '공부의 의미'를 찾아 나와 대화를 하기 시작하면 답이 없다. 나와 대화하는 시간조차 아깝게 여겨질 때는 대화 대신 최면을 걸어야 한다.
"나는 문제를 푸는 기계다.", "나는 문제를 푸는 기계다.", "나는 문제를 푸는...", "나는 문제를...." 주문을 외우는 것처럼 속으로 같은 말을 되뇌면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난다. 더 이상 의미 따위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나는 그냥 문제를 풀고 또 풀뿐이다. 왜냐하면 나는 문제를 푸는 기계이니까. 기계는 생각하지 않는다. 프로그램대로 움직일 뿐이지. 이 과정을 기계적으로 반복하다 보면 공부가 점점 재미있어진다.
시험까지 이틀 남았다. 부족한 부분을 더 공부해야 하건만 그냥 빨리 시험을 봐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제 그만 시험에서 놓여나고 싶었다. 범위가 너무 넓어서 어디서 뭐가 나올지는 문제를 만든 사람만이 알 수 있다. 내가 공부한 부분에서 문제가 나오기를 바라본다.
1교시. 시험과목은 한국어학, 일반언어학 및 응용언어학. 시험시간은 100분.
2교시. 시험과목은 한국문화,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론. 시험시간은 150분.
이 중에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론'이 문제 수가 많다. 그리고 마지막 문제가 주관식이다.
113. '하루 일과'를 주제로 '-(으)ㄴ 후에'를 지도하려고 한다. 다음 내용을 참조하여 '-(으)ㄴ 후에'의 제시와 연습 단계의 교수안을 작성하시오.
*숙달도: 초급
*단원 주세: 하루 일과
*목표 문법: -(으)ㄴ 후에 (예, 아침을 먹은 후에 운동을 해요.)
*수업 시간: 20분
주관식에 걸려 있는 점수가 무려 12점이다. 객관식 한 문항에 1점인 것을 생각하면 정말 큰 점수다. 그런데 4과목 중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론'이 가장 어렵지 않았다(나의 생각에). 가채점 결과도 2교시 4 영역의 점수가 가장 높았다. 1교시에 본 2과목도 60점을 넘겼다(각 영역에서 40점 이상, 4과목 합산해서 180점 이상 받아야 합격). 2교시 한국문화는 아슬아슬하게 40점을 넘겼다. 주관식에서 '0'점을 맞지 않으면 합격인데. 연습한 대로 교안을 작성했으니 1점 이상은 주지 않을까, 예상해 본다.
9/28 합격자 발표일까지 나는 자유다. 1차에 합격하면 2차 면접시험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시험이 완전히 끝났다고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마음은 홀가분하다. 마흔 넘어 시작한 자전거와 글쓰기에 이어 한국어 교육능력 검정시험까지. 이 모든 것을 단 1년 만에 해낸 내가 자랑스럽다. 나에게 마음껏 칭찬해 주고 싶다.
잘했어. 정말 대단해. 축하해.
1차 필기시험이 끝나고 나니, 한 여름 무더위도 끝났다. 자전거 타기 좋은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포기할 수 없는 세 가지, 자전거와 글쓰기와 한국어교원자격증 3급'이라는 제목의 글이 미완성 상태로 '브런치 작가의 서랍'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보고 싶다, 친구야! 낯설고 두려웠던 자전거와 글쓰기가 오래된 친구처럼, 편안한 집처럼 나의 일부가 되어 있다. 나는 여기에 한 명(?)을 더 초대할 생각이다.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새로운 나를.
새 친구를 맞이하는 일은 언제나 설렌다. 새 친구가 나의 삶을 어떻게 바꿔 놓을까? 나는 예측하지 않겠다. 어차피 내가 생각한 대로 되지 않을 테니까. 그냥 즐길 생각이다. 하루하루 달라지는 나의 모습을 열린 마음으로 바라볼 생각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무엇이라도 해보는 게 나라는 사람에게 잘 맞기 때문이다. '변화, 도전, 성장' 나의 가슴을 뛰게 하는 단어들이다. '변화, 도전, 성장'을 위해 다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