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 코스트 day 2
7월 20일 수요일
새벽 5시가 되기도 전에 눈을 떴다. 여행을 오면 약간 부지런해지는 경향이 있었다.
짐을 미리 싸놓고 머빈 로이 카페로 걸어갔다. 아침 일찍 해변을 따라 뛰는 사람들이 간간이 보였다.
카페에 도착하자 주인이 반갑게 맞았다. 우리는 Sourdough toast를 주문해서 땅콩잼을 발라 먹었다. 카푸치노의 초콜릿 향이 바다 내음과 어우러졌다. 스피커에서 Passenger의 Chasing Cars가 흘러나왔다. Let’s wasting time. 노랫말처럼 차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며 시간을 낭비하고 싶었다. 아침부터 말이지.
비가 온다더니 햇빛이 났다. 머빈 로이가 누구일까. 주인이 꼭 그 사람 같았다. 얼굴을 뒤덮은 덥수룩한 노란 수염. 앞에 뚱뚱한 남성이 앉아 창문을 내다보고 있었다. 카 세일즈맨 옷차림이었다. 출근하기 전에 커피를 마시는 것 같았다.
이보게 머빈. 수염을 좀 정리하게나. 뚱뚱한 양반. 자네는 오늘 차를 좀 팔 것 같나. 우리는 사우스 포트로 간다네.
혼자 상상하다가 주인과 눈길이 스쳤다. 주인도 내게 답을 해주는 것 같았다.
잘 가게. 친구. 어디로든 간다는 건 좋은 거지.
뚱뚱한 남성도 뒤통수로 말했다. 맛있는 거 먹고 다니게나.
나는 누아를 돌아보며 말했다.
들었어?
뭘?
마침 갈매기가 날아들었다.
끼룩끼룩. 내가 말했다.
무슨 소리야?
갈매기가 하는 말.
뭐라는데?
날씨 좋다.
누아는 내 말을 무시하고 계속 책을 읽었다.
잠시 후 카페에서 나온 우리는 모텔로 가서 체크아웃을 했다. 정이 든 자전거도 반납했다.
짐을 끌고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고익스플로러 카드를 구매한 후 700번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가 해변도로를 달렸다.
브로드 비치에 내려서 트램으로 갈아탔다. 창밖으로 해안을 따라 들어선 건물과 상점들이 눈길을 끌었다.
트램에서 내린 후 사우스포트 메리톤 숙소로 걸어갔다. 체크인을 하고 들어선 방은 만족스러웠다. 내부도 깔끔했고 시내와 해변이 한꺼번에 보이는 전망이 일품이었다. 우리는 식욕이 솟아났다. 아래층에 있는 타이 식당에 가서 크랩 볶음밥을 나눠먹었다.
버스를 타고 필립 파크에 갔다. 남북으로 길게 형성된 숲길 공원이었다. 숲과 바다를 동시에 만끽할 수 있는 장소였다. 북쪽 끝인 더 스핏 골드코스트를 목표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끝없는 숲길이 우리의 발길을 이끌었다. 누아는 나중에 낼 책에 올리겠다며 계속 촬영을 했다.
그러다가 배터리 다 닳겠네.
나의 충고를 그녀는 듣는 둥 마는 둥했다. 결국 얼마 안 가서 그녀의 휴대폰은 꺼져버렸다. 게다가 그녀는 고익스플로러 카드까지 잃어버렸다. 바닷가를 뒤졌지만 이미 바람에 날아갔는지 찾을 수 없었다.
더 스핏에 이르자 길고 긴 방파제가 나타났다. 사람들이 강한 바람에 맞서 방파제를 따라 걷느라 고투하고 있었다. 우리도 그 일행에 동참했다. 옷이 날렸고 얼굴에 바닷물이 튀었다. 바람에 살갗이 아플 정도였다.
끝으로 갈수록 물보라가 심하게 튀어 올랐다. 얼굴이 온통 짠 물 범벅이 됐다. 누아도 나처럼 흠뻑 젖었지만 즐거워하는 모습이었다. 바람에 날아갈 것 같아 무서운지 내 손을 꼭 잡았다. 우리는 바다에 최대한 접근한 후 사나운 파도와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방파제를 빠져나와 수돗물로 소금기를 씻어냈다. 숙소까지는 꽤 멀었지만 걷기로 했다. 누아의 고익스플로러 카드가 없어 버스를 탈 수도 없었고 마냥 걷고 싶은 이유도 있었다.
걷다가 대규모 테마파크인 씨월드 리조트를 지나쳤다. 담장 너머로 놀이기구의 윗부분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게 보였다.
놀이동산은 안 가도 되겠지? 내가 물었다.
우리가 그럴 나이는 지났잖아?
그래도 나중에 후회할걸?
너 혼자 가든지.
앞서 걷는 누아를 쫓아가며 섭섭하다는 생각을 했다.
혼자. 혼자. 나는 중얼거렸다.
어쩌면 우리는 둘이 아니라 혼자와 혼자가 각자의 길을 가고 있는지도 몰랐다.
메인 비치에 있는 선데일 브리지를 건널 즈음 어둠이 찾아왔다. 버스로 왔을 때는 몰랐지만 걷기에는 너무 긴 거리였다. 비까지 부슬부슬 내렸다.
숙소 건물에 다다르자 우리는 녹초가 됐다. 아래층에 있는 마트 메트로에서 먹거리를 샀다.
방에 들어와 둘 다 널브러졌다. 겨우 샤워를 하고 발코니에 앉았다.
힘은 들었지만 살은 빠졌겠지. 누아가 혼잣말을 했다.
우리가 걸었던 필립 파크가 창 너머로 보였다. 더 스핏은 너무 멀어 보이지 않았다. 와인을 따서 마셨다. 취기가 금방 올랐다.
무슨 이유인지 누아와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더 마실 술도 남아있지 않아서 나는 침대로 가서 누웠다. 계속 뭐라고 떠드는 누아의 목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