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 코스트 day 1
7월 19일 화요일
디디를 타고 시드니 공항의 국내선 터미널로 갔다. 가는 내내 운전사가 별 말이 없었다. 말이 많은 것보다는 낫지, 나는 생각했다.
체크인 카운터에서 짐을 부쳤다. 시드니 공항에서 국내선을 타게 될 줄이야. 어서 딴 도시도 구경하고 싶었다. 보안검색대를 통과하고 나니 보딩패스가 사라졌다. 난 본래 뭘 잃어버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너무 들떠있는지도 몰랐다. 뒤늦게 반성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다시 보안검색대로 가서 사정을 얘기하자 직원이 말했다.
게이트로 가면 재발급받을 수 있어요.
정말이에요?
긴가민가했지만 출발 게이트로 다시 갔다. 항공사 직원이 순순히 보딩패스를 프린트해 줬다. 마침내 우리는 안심하고 공항을 걷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뭘 잃어버렸네. 나는 중얼거렸다.
난 자주 잃어버려. 누아가 말했다.
난 그렇지 않잖아. 내가 너무 흥분했나 봐.
이유가 뭔데?
너랑 있으니까. 나는 실없는 농담을 했다.
그럴수록 침착해야지. 그녀가 농담을 받았다.
노력할게.
뭘 잃어버렸을 때 중요한 건 그걸 찾아가는 방식이야.
원숭이 도사님 같은 소리를 하네.
다년간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말씀이십니다.
주님께 감사.
오랜만에 우리는 예전에 하던 방식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갑자기 옛날이 그리워졌다.
보딩 타임까지 시간이 남아 상점들을 둘러봤다. 내가 누아의 티셔츠를 사주겠다고 했다. 그녀가 거절하지 않았다. 티셔츠에 본다이 비치 그래픽이 그려져 있었다.
저기도 가볼 걸 그랬나? 내가 말했다.
관광지를 다 들러볼 수는 없지.
더 부지런했다면.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잖아.
역시 우리는 뭔가 통해.
그렇긴 하지.
누아가 동의했다. 나는 기뻤다.
지나가다가 스테이크 파이 파는 곳을 발견했다.
먹어볼까. 누아가 말했다.
그래.
처음 맛보는 음식이었다. 역시 스테이크와 파이의 조합은 어울리지 않았다.
우리는 렉스 항공을 타고 골드코스트 공항에 도착했다. 예약해 둔 라 코스타 모텔로 갔다. 걸어갈 수 있는 거리였다. 캐리어를 끌고 동네를 걸었다.
모텔은 작고 아담했다. 나무 바닥이라서 카펫 알러지 증상이 있는 누아가 좋아했다. 주인아줌마는 더없이 친절하게 우리를 대해줬다. 자전거를 추천하길래 우리는 계획에 없던 자전거 투어를 했다.
끝없이 펼쳐진 해안을 달렸다. 키라 비치와 쿨랑가타 비치를 거쳤다. 자전거길이 아닌 곳에서는 손으로 자전거를 끌었다. Point Danger라는 지점이 목적지였다. 이름 때문인지 지도로 봤을 때 왠지 끌렸다. 오랜만에 타는 자전거라 엉덩이가 아팠다. 누아는 예상보다 자전거를 잘 탔다. 헬멧을 쓴 모습이 유난히 귀여웠다. 이윽고 땅 끝이 보였고 포인트 데인저 표지판이 나타났다.
뉴사우스웨일즈와 접한 퀸즈랜드의 접경.
제임스 쿡 선장 기념비와 등대가 세워져 있었다. 영국의 탐험가로 뉴사우스웨일즈 땅을 발견했고 태평양을 누비고 다니며 지도를 만들었다고 했다. 호주는 어딜 가나 영국 식민지 역사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영국은 대서양에 있는데 왜 태평양까지 관심을 두었을까. 우리는 사진을 찍고 한동안 땅 끝에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이름과 달리 그렇게 위험해 보이는 곳은 아니었다.
다시 자전거에 올라타고 오던 길에 눈여겨봤던 곳으로 향했다. Siblings at Kirra. 바다에 바로 접한 레스토랑이었다. 자전거를 거치대에 올리고 자물쇠를 잠갔다. 비밀번호는 1961. 모텔주인이 태어난 연도일까.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 주민들로 보이는 손님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나는 왠지 소외감이 들었지만 태연한 척했다. 우리는 맥주와 마가리타를 주문했다. 자전거로 체력이 소모된 탓인지 꿀맛이었다. 바하 피시 타코와 왕새우를 먹었다. 꿀맛의 연속.
우리 여행을 위하여. 누아가 건배를 외쳤다.
위하여.
왕새우를 위하여.
위하여.
쿡 선장을 위하여.
위하여.
손님들이 힐끗거려도 술기운인지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우리는 술을 더 마셨고 이름 모를 튀김 요리도 먹었다. 밖이 어두워져서 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모호해질 때쯤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신없이 먹고 마셨더니 계산서에 100불이 넘게 찍혔다. 기꺼이 그 금액을 지불하고 밖으로 나왔다. 저녁공기가 상쾌했다.
나 할 얘기가 있어. 누아가 말했다.
뭔데. 나는 가슴이 좀 뛰었다.
감기가 어느새 사라졌어.
그 싱거운 말에 나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자전거에 올랐다. 그녀가 뒤따라오며 간간이 노래를 불렀다. 자전거에 전조등이 없어서 달빛으로 대신했다. 달빛이 없는 곳에서는 자전거를 끌고 걸었다.
숙소에 무사히 도착했다. 주변이 너무 조용해서 살금살금 방으로 들어갔다. 말을 하면 옆방에 들릴 것 같았다.
우리는 말없이 침대에 누웠다. 쿡 선장도 같은 달을 쳐다봤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