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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초이 Dec 28. 2023

안전한 도시

골드 코스트 day 3

7월 21일 목요일


정오가 다 돼서 눈을 떴다. 어제 무리해서 걸은 데다 와인까지 마신 탓이다. 누아는 일어나지 못했다. 

나는 혼자 운동을 하러 갔다. 실내 사이클을 조금 타다가 지겨워서 수영을 했다. 아무도 없어서 마구 몸을 휘저었다. 레인을 몇 번 왕복하고 나니 토할 것 같아서 숙소로 돌아갔다.

그녀가 아직 자고 있었다. 그녀를 손으로 흔들었다. 그녀가 마지못해 뭐라고 말했다.

뭐라고? 내가 물었다.

라면 끓이라고. 그녀가 중얼거렸다.

자면서도 라면을 떠올린다는 사실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사실 라면은 누아 담당이었다. 내가 끓이면 맛이 없다면서 늘 그녀가 손수 끓였던 것이다. 누아는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나는 일단 샤워를 하러 화장실에 들어갔다. 샤워기로 몸에 물을 뿌리며 생각했다. 내가 어제 뭘 잘못했나.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피곤해서 일찍 잠든 기억 밖에 없었다. 

샤워를 마치고 나가자 그녀가 주방에서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뭐 해?

라면 끓여.

나는 티브이를 보며 라면이 완성되기를 기다렸다. 그녀가 라면을 발코니로 가져갔다. 우리는 라면과 전자레인지로 데운 라자냐도 함께 먹었다. 맛이 괜찮았다. 누아가 별말 없이 먹기만 했다.

다 먹고 나서 우리는 다시 침대에 누웠다. 다시 잠이 들었다.

눈을 떴는데 그녀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깜짝 놀랐다.

귀신 같애.

그 말에 누아가 낄낄거렸다.

밖은 이미 어둑해졌다. 여행에 하루쯤은 이런 날도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맥주 마시고 싶어. 누아가 말했다.

귀찮았지만 옷을 걸쳐 입고 밖으로 나갔다. 아래층 메트로 마트에 가서 캔맥주 번들과 칩을 샀다.

돌아와서 누아에게 맥주를 건네주자 좋아라 하고 마셨다.

아 시원하다.

나도 맥주를 따서 한 모금 마시고 티브이를 틀었다. 캅스 같은 경찰 프로그램이 방송 중이었다. 시민들을 대하는 호주 경찰들은 꽤 친근해 보였다.

호주는 안전해서 좋은 거 같아. 내가 말했다.

맞아. 누아가 말했다.

밤에 돌아다녀도 걱정이 안 되잖아.

응. 그래서 어젯밤에 나 혼자 돌아다녔어.

무슨 소리야?

펍에 갔었어.

뭐? 뭐라고? 어디? 왜? 혼자?

요 옆에 펍. 너는 먼저 잤잖아.

깨우지?

그러기 싫었어.

내가 어제 뭘 잘못했어?

나한테 뺄 살이 없다고 했지.

내가?

응.

근데?

난 뺄 살이 있거든.

그래?

근데 너가 우겼어. 너는 뭐든 돌려서 말해. 사실을 말하지 않아.

난 기억이 안 나.

그건 불리할 때 너가 항상 하는 얘기지.

그래서 펍에 혼자 간 거야?

응.

잘했어.

거봐.

뭘?

지금도 넌 화가 났지만 안 난 체 하잖아.

너가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네?

난 눈에 보이는 걸 말하는 거야. 다 티가 난다고.

그럼 지금 내가 뭘 할지도 알겠네?

알지. 밖에 나가서 담배나 피겠지.

틀렸어. 화장실 갈 거야.

나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얼굴을 씻고 거울을 봤다. 내가 지금 내 얼굴로 살아가는 것 같지 않았다. 누아 말이 맞을 수도 있었다. 나는 왜 사실을 있는 대로 말하지 않는가. 사실이라는 건 또 무엇인가. 한참 거울을 보다가 밖으로 나갔다.

누아는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그녀와 반대편을 보고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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