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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초이 Jan 02. 2024

소설 쓰고 있네

브리즈번 day 1

7월 23일 토요일


오늘은 좀 일어날 맛이 났다. 

8시에 피트니스 룸에 가서 웨이트를 하고 수영장에 갔다. 레인을 몇 번이나 왕복해도 거뜬했다. 숙소로 돌아와 짐을 꾸렸다. 

집을 나서는데 누아가 외쳤다.

무지개다!

창밖을 보니 거대한 무지개가 하늘을 장식하고 있었다. 마치 도시가 무지갯빛 머리띠를 두른 듯 보였다. 그것 뿐이었다. 나의 무덤덤한 반응에 누아가 실망스러운 표정을 보였다.

우리는 브리즈번으로 가기 위해 기차를 탔다. 골드 코스트에서 브리즈번은 두 시간 남짓한 짧은 거리였다. 

잘 가던 기차가 중간에 멈춰섰다. 철도에 이상이 생겼다는 안내가 나왔다. 다행히 기차회사 측에서 승객들에게 갈아탈 버스를 제공했다.

덕분에 버스를 타고 브리즈번 교외를 구경할 수 있었다. 시내로 들어올수록 사람과 차들이 많아졌다.

버스에서 내려서 조금 걸으니 허셸 스트리트 메리톤Meriton Suites Herschel Street이 나타났다. 

체크인을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한눈에 강이 내려다보였다. 우리는 리버뷰라며 즐거워하다가 짐을 풀고 외출했다.

일단 브리즈번 스퀘어 방향으로 걸었다.

배가 고파 눈에 띄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일명 Fat Noodle. 내부가 주로 빨간색으로 꾸며진 식당은 같은 건물의 카지노 손님들이 오는지 가격이 높은 편이었다. 기본적인 팟타이와 페퍼비프를 주문했다. 창문이 있는 자리였는데 밖에서 여러 사람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누가 싸우는 줄 알았다. 밖을 내다보니 경찰이 있었고 그 뒤로 깃발을 든 사람들 행렬이 보였다.

세계 평화. 자유. 마스크를 벗을 권리. 시위대는 그런 슬로건을 내세우며 목청을 높였다. 누아는 그들을 촬영하기 바빴다. 시위대 중 한 명이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누아가 한 손을 흔들며 답했다. 나는 슬그머니 몸을 피했다.

시위 내용이 광범위하네. 누아가 푯말과 깃발을 보며 말했다.

나는 다시 창밖을 내다봤다. 웃고 대화하고 노래를 부르며 손뼉을 치는 시위대는 오히려 우리보다 즐거워 보였다. 식당에서 배를 채운 우리는 브리즈번 강의 빅토리아 브리지를 건넜다.

사우스 뱅크South Bank에 도서관, 뮤지엄, 갤러리가 모여 있었다. 

퀸즈랜드 주립도서관State Library of Queensland에 들어갔다.

이런 도서관은 처음이야. 누아가 외쳤다.

그럴 만했다. 규모뿐만 아니라 부속 건물들이 섬세하고 품위 있었다. 몇 개의 건물들이 모여 하나의 도서관을 이루고 있었는데 구경하기가 벅찼다.

우리는 도서관 창가에 자리를 잡고 브리즈번 강물을 한참 내려다봤다.

뭐 해? 누아가 물었다.

시 써.

멍하니 앉아서?

머릿속으로.

그래도 손으로 써야 뭐라도 남지 않아?

기억하면 되지.

너 기억력 안 좋잖아.

뇌세포에 새겨져 있어.

그럼 한번 읊어봐.

나는 목청을 가다듬고 시를 읊었다.

강에 책을 담갔다가

건진 책에 쓰인 글씨

강물이 번져 알아볼 수가 없구나

끝이야? 누아가 말했다.

응.

왜 그렇게 짧아?

난 짧은 시만 써.

그래도 좀 길면 좋겠다.

그럼 소설을 써야지.

난 여행기를 일기 형식으로 쓸 생각이야. 매일매일의 기록.

거기 나도 등장하는 건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그게 뭐야?

너긴 하지만 좀 변형을 할 거야. 

그건 일기가 아니잖아.

그런가?

너야 말로 소설을 쓰고 있네.

하하하. 그 말 웃긴다. 누아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도서관을 나왔다.

강가로 이어진 길을 걸었다. 머리 위로 대관람차가 돌았다. 리틀 스탠리 스트리트Little Stanley Street에 사람들이 바글거렸다. 운 좋게도 토요일에만 열린다는 마켓과 마주친 것이다. 차량 통행이 금지돼 걷기가 자유로웠다. 음식과 잡화를 파는 밴더 트럭들 사이를 거닐었다. 특이한 먹거리를 고르다가 핑크빛 주스를 사서 빨대 하나로 나눠마셨다.

숙소로 돌아갈 때는 차가 안 다니는 쿠릴파 다리를 건넜다. 해가 진 보랏빛 강이 매혹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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