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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초이 Dec 21. 2023

오스카

시드니 day 7

7월 18일 월요일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운동을 건너뛰었다. 대신 누아와 운동 삼아 패딩턴Paddington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있는 북카페와 도서관이 목적지였다. 

가방에 내 노트북과 누아의 아이패드가 들어있어서 어깨가 묵직했다. 상점들이 많은 길이라고 해서 기대했지만 폐업한 가게들이 꽤 보였다. 그래도 나지막한 건물에 들어선 상점들은 다운타운과 또 다른 느낌을 주었다.

오스카 앤 프랜즈Oscar and Friends 책방에서 그래픽 노블을 샀다. Diary of Wimpy Kid. The Getaway 편. 표지에 그려진 꼬마 주인공이 마음에 들었다.

시인이 시집을 사야지 왜 만화책을 사? 그녀가 핀잔을 줬다.

그럼 만화가는 만화책만 사나?

그건 아니지.

시는 종합 예술이야. 글. 그림. 음악. 영화. 이 모든 게 응축된 거라고.

오케이. 오케이.

그녀는 러브 스토리즈, 라는 제목의 소설집을 구입했다. 책방 주인이 계산을 하면서 우리의 여정에 궁금증을 나타냈다.

우리 내일 북쪽으로 가요. 누아가 말했다.

북쪽은 더 따뜻할 거예요. 주인이 말했다.

그랬으면 좋겠어요.

즐거운 여행 되세요.

우리는 책방에서 나오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저 아저씨가 오스카일까? 갑자기 궁금해져서 내가 말했다.

오스카는 좀 더 유럽적일 거 같은데. 누아가 대답했다.

유럽 어디?

독일.

영국은?

독일이라니까.

프랑스는?

야. 독일이라고!

브루나이는?

너 그 만화책 주인공 같애.

나는 그 말을 칭찬으로 받아들이고 계속 길을 걸었다. 누아가 버클루 북카페Berkelouw Café 1812를 발견했다. 그녀는 이제 책과 도서관이라면 호주 어디든 들러볼 기세였다. 우리는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북카페는 일층에 서가가 있고 이층 한 구석에 카페가 있는 구조였다. 나는 이곳에서도 책을 구입했다. The Best American Poetry.

그래. 그런 걸 사란 말이야.

누아의 말에 나는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베끼려는 거 아니지? 누아가 말했다.

너가 해석만 해준다면야.

넌 안 베껴도 잘 쓸 수 있을 거야.

너 왜 그래? 여행할 날이 늘어나서 너그러워진 거야?

그런가.

시를 못 쓴다고 너가 얼마나 나를 타박했는데.

미안해.

누아가 너무 진지하게 대답해서 할 말이 없어졌다. 우리는 피곤했지만 앰퍼샌드Ampersand Cafe & Bookstore라는 북카페에도 들렸다. 구글 별점이 높은 곳이었다. 도대체 구글 없이 여행이 가능할까.

우리는 아래층에 있는 고풍스러운 서가를 구경했다. 커피와 크로와상을 사서 북카페 마당에 자리를 잡았다.

비둘기가 자꾸 음식을 뺏어먹으려고 했다.

우리는 다시 걸었다. 패딩턴 도서관에 갔다. 조그만 로컬 도서관이었다. 원래는 각자 노트북과 아이패드를 펼쳐놓고 작업을 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빈자리가 없었다. 로비 소파에 앉아 있다가 간신히 빈자리를 차지했다. 우리는 작업에 열중했다. 나는 아무 말이나 노트북에 타이핑을 했다. 시는 결국 그런 것이었다. 나중에 정제하는 게 중요했다.

누아는 기후문제에 관한 책을 어디선가 뽑아 들었다. 그녀의 주관심사는 세상 종말이었다. 그녀에게는 모든 문제의 종착점이자 시작점이기도 했다. 나는 그녀가 누구와도 깊은 인간관계를 원하지 않는 이유도 그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세상이 망할 텐데. 누아는 그런 식으로 말하면서 어떤 것에도 애착을 갖지 못했다. 나는 그녀가 너무 자신을 애착한 나머지 그런 문제에 봉착하는 것도 같았다.

누아가 책을 보다가 말했다. 

얼마 전에 여기 산불 난 거 알지?

몰라.

엄청 큰 불이 났어. 소방관이 코알라한테 물을 주는 사진도 있었잖아.

자나 깨나 불조심. 내가 말했다.

조심한다고 되는 게 아니야. 그녀가 목소리를 높였다. 다 기후변화 때문이라고. 

그럼 어쩌라고?

각자 환경보호에 앞장서야지.

그래. 알았어.

그녀는 내 성의 없는 대답에 눈을 흘겼다.

우리는 도서관에서 나와 센테니얼 공원Centennial Park으로 향했다. 멋진 건물로 이루어진 교회, Uniting Church를 마주쳤다. Uniting과 United의 차이에 대해 그녀에게 물으려다가 말았다. 그녀도 모를 것 같았다. 교회 벽에 붙은 사인을 누아가 영어로 또박또박 읽었다.  

알았어. 알았다고. 내가 말했다.

환경문제가 하루 종일 나를 쫓아다니는 느낌이었다. 

도시를 걷다가 마주치는 공원은 또 다른 호주의 매력이었다. 넓게 펼쳐진 잔디. 치솟은 나무들. 공룡의 후예 같은 새들. 뛰노는 아이들.  누아의 표정이 덩달아 밝아졌다. 다리가 아팠지만 우리는 공원에 난 길을 따라 계속 걸었다. 개를 훈련시키는 남자를 발견했다. 부메랑을 입으로 낚아채는 개의 실력이 수준급이었다. 피곤하지만 않다면 공원 전체를 다 돌고 싶었지만 무리였다.

돌아오는 길에 패딩턴 주택가를 볼 수 있었다. 아늑하고 정갈해서 이민이라도 와서 살고 싶게 만들었다. 

숙소에 들어왔을 때는 이미 밖이 어두워진 후였다. 시드니의 마지막 밤이었다. 나는 침대에 누워 눈만 말똥거렸다. 한국에 가는 대신 호주에 더 머무른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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