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쟁취가 아니었음을
이불 밖 월요일은 위험하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Ctrl +C Ctrl +V 공장에서 막 찍어 나온 듯한 얼굴들이 들어선다.핏기 없는 안색, 영혼 빠진 눈빛. 다들 주말내내 좀비에게 쫓기다 끌려온 숙주같다.
나도 얼마 전까진 그 무리 중 하나였다.
귀하신 따님을 모시고 등굣길에 오른다. 사춘기 예민 버튼을 건드리지 않으려 가마꾼은 조심조심 문을 연다. 오늘은 금식이 아니라 '금언' 아침이다. 간당간당하게 늦은 출발에, 아홉 번 멈춘 엘리베이터만큼이나 따님의 입술도 아홉 번 부풀어 올랐다.
그때, 가마 시동과 함께 들려온 건 저세상 텐션의 라디오.
"활기찬 월요일 아침~ FM대행진 조정식식! 속 시원한 월요일을 만들어주는 코너죠, 법을 팍! 법을 팍팍!"
눈치 없는 라디오씨만 신나 있는 침묵의 라이딩.
등굣길 듣는 조정식의 FM대행진은 요일마다 특별코너가 진행된다. 그 중 따님은 수요일 역사 퀴즈, 목요일 조식 뷔페 코너를 즐기지만 오늘은 월요일. 직장내 성범죄 법률 상담이 주제였다.
흥분의 최고점을 향하는 라디오씨로 팽팽해지는 공기에 갑자기 피식-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린다.
따님이 코를 훌쩍이며 웃음을 터뜨린다. 눈물 섞인 기침까지 이어지자 나까지 따라 웃음이 새어 나왔다.
"엄마. 이 변호사 아저씨 너무 웃기지 않아? 개그맨이 꿈인가 봐."
"우리 따님이 웃으니 나도 너무 좋다. 이 라디오에 커피라도 쏘고 싶네."
답답했던 월요일 아침 숙변이 생약 양약성분의 라디오 덕분에 유쾌 상쾌 통쾌하게 배출되었다.
고정 청취자로 얻은 나만의 헬스케어였다.
사랑은 쟁취가 아니다.
사랑은 청취로 시작한다.
아주 옛날, 여의아일랜드라는 섬.
남편과 나는 동료로 만났다. 그때의 '동료'는 남자도 여자도 아닌 제3의 성.
남사친 여사친처럼 어정쩡한 사이가 아니라, 한 팀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운명공동체였다.
밤을 새우고 세수를 안 해도, 좁은 편집실 소파 양끝에 새우 동침을 해도 어색하지 않았다.
화장실 앞에 서 있을 때만이, 사우나에서 남탕과 여탕으로 갈라질 때만이 "아, 넌 남자였지, 난 여자였지." 하고 다시 구분될 뿐이었다.
우리는 하루 종일, 일주일 내내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방송 아이템에서부터 부장님의 잔소리, 야식 메뉴까지 말이 넘쳐났다. 도마 위에 누워 부장이 토막이 되어 안주가 되고, 선배가, 후배가, 심지어 떠난 부장까지 합세해 모둠 안주가 되기도 했다.
콘센트에 대충 넣으면 콧구멍에 척 들어맞는 충전기처럼, 우리는 코드가 잘 맞았다.
서로의 말에 집중했고, 끝까지 들어주었다.
한 명이 숨 고르기를 하면, 자연스레 다른 한 명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박수와 웃음이 응원이 되었고, 대화는 릴레이처럼 이어졌다.
어떤 날은 내가 DJ였고, 어떤 날은 그가 DJ였다.
나는 그가 내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는 게 좋았다. 그는 진심으로 귀 기울여주는 사람이었다. 가속도가 붙어 질주하는 이야기를 어떤 토도 달지 않고 러닝메이트가 되어 함께 달려준다. 개그욕심에 폭주해도 떨어진 배꼽을 주워 끼워주며 웃어주었다.
그는 ‘그냥 듣는’ 게 아니라, 내가 말할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주는 사람’이었다.
나도 그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좋았다. 꾸밈없이 솔직한 말투가 매력이었다. 너무 직설적이라 당황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그래서 더 점수를 주었다.
그가 말을 하면, 나는 영화 속 소녀처럼 턱을 괴고 눈을 반짝이며 들었다. 귀는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고, 눈은 얼굴을 바라본다. 눈, 코, 입을 순례하듯 바라보며 그의 얼굴을, 그의 말을 관람했다.
사랑은 동시상영이었다.
청취자로 시작해, 시청자로, 사랑은 열혈팬이 되는 것이었다.
무뎌진 사랑은 청취를 잊는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린다.
여의아일랜드의 남녀는 동료라는 간판을 버리고, 부부가 되었다.
우리 집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현관문을 들어서는 가족에게 늘 같은 인사를 한다.
"오늘은 어땠어? 별일은 없었어?"
늦은 퇴근, 직원 문제로 편두통을 호소하던 그때 남편이 물었다.
"오늘은 별일 없었어?"
"오늘도 버라이어티 한편 찍고 왔어."
남편은 맥주 두 캔을 꺼내고 오징어를 굽는다.
온몸을 비트는 오징어의 준비운동을 보며, 나는 휘리릭 옷을 갈아입고 급히 손을 씻는다.
의자에 엉덩이가 닿기도 전에 마음이 먼저 달린다. 맥주잔에 할 얘기가 차고 넘친다.
아침에 지각한 직원,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 안 한 태도, 혼내려다 퇴사할까 봐 참았던 일... 나는 시간대순으로 에피소드를 늘어놓았다. 남편은 한숨을 내쉬고, 맥주를 연거푸 삼켰다. 아직 오전 브리핑일 뿐인데, 벽에 있는 시곗바늘이 10시로 양팔을 벌리며 하품을 한다.
처음엔 서로의 청취자로 시작된 관계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내 이야기부터"라며 말을 막고, 남편의 말을 끊고, 대화의 고속도로를 역주행하기 시작했다.
내 안에 쏟아낼 말이 너무 많아, 그의 이야기를 담을 여유가 없었다.
왼쪽 귀로 들어온 말이 오른쪽 귀로 빠져 나갔다. 나는 청취자의 자리를 버렸다.
단독 마이크를 쥔 듯 내 이야기를 쏟아냈지만, 마음은 채워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공허해졌다.
언제부터였을까.
귀여운 척 턱을 괴고 그의 이야기를 들었던 청취자는 어디로 간 걸까.
한 사람의 인생을 듣는 일은
지루하지 않다.
최근 심리상담가인 소울메이트의 블로그에 새 글이 올라왔다.
늘 같은 자리에 앉아 일하지만, 이 일은 지루하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듣는 이 시간이 얼마나 귀한 시간인지.
지난주 명동 데이트에서 나는 확인사살을 하듯 물었다.
"하루 종일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듣는 게 지루하지 않아? 힘들지 않아? 블로그 글은 뻥이지?"
소울메이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듣는 순간마다 새롭고 소중해."
그 말이 오래 맴돌았다.
청취는 단순히 상대의 말을 받아 적는 게 아니라, 그 순간을 함께 살아내는 일이었다.
"오늘은 어땠어? 별일은 없었...?"
퇴근하고 들어온 남편 얼굴에는 말 못 할 걱정이 가득했다.
이제는 내가 청취자가 될 차례였다. 사랑의 콜센터를 오픈하기로 한다.
저녁 반찬을 냉장고에 밀어 넣고, 간단한 안주거리를 올린다.
말없이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기다리자, 한참 뒤 입이 열렸다.
짜증 나게 한 그 사람 얘기를 토해내는 동안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언도, 반박도 없이 그저 귀를 기울였다.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남편의 얼굴이 달리 보였다.
이상하게도 저렇게 생긴 얼굴이 유난히 선해 보였다.
지루하지가 않았다. 오히려 가슴이 찰랑찰랑 차오르는 걸 느꼈다.
듣기만 해도 위로가 된다는 걸 알았다.
누군가의 사랑은 첫눈에 반해서라고도 하고,
누군가는 보는 순간 타오르는 전기에 감전이 되어서라고 한다.
예쁜 얼굴, 멋진 스타일은 호감도를 높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사랑일까.
고윤정을 닮은 이목구비여서 사랑이 시작되었는가,
톰갈색의 정장을 입은 그가 멋있어서 사랑이 시작되었는가.
아마도 사랑이라는 열차는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반응하는 순간, 칙칙폭폭 기적이 울리며 출발했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말하고 싶어 한다.
이해받고 싶어 하고, 알아주기를 바란다.
그래서 때때로 세상은 너무 시끄럽다.
하루쯤은 청취자의 자리에서, 조용히 귀 기울여 보면 어떨까.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인다는 것.
SNS의 넘쳐나는 말에는 귀를 기울이면서
정작 곁에 있는 사람에겐 그 정성의 몇 분의 일도 나누지 못하는 우리.
가장 조용하고 가장 가까운 목소리를 먼저 들어줄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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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결 편해진 얼굴로 출근하는 남편을 배웅하고 따님과 등굣길에 오른다.
가마 뒷좌석에 앉아있던 온도씨가 핸드폰을 열고 #8910으로 문자를 보낸다.
'늘 재미있게 듣고 있습니다 -청취자 드림-'
잠시 뒤, 알림음이 울린다.
'청취자님의 하루를 응원합니다. -FM 대행진 드림-'
함께 온 노란색 음료 기프티콘은 따님에게 드림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