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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경 Oct 28. 2022

힘 좀 빼고, 머리 들지 말고...

지난한 여름이 물러갔다.

늘 내게 여름은 버티기의 계절이다.

사계절 중에 한 계절만 잘 지내면 되니 어찌 보면 남는 장사다.

여름이 버거운 건, 더위와 섬지방의 끈적한 습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때부터였을까?

중학교 입학을 위해서 돌렸던 일명 '뺑뺑이'(제비뽑기 형식의 추첨기계)는 나 혼자 신생학교에 툭 떨어뜨려 놓았다.

어쩔 수 없이 벌어진 친구들과의 물리적 거리는 차츰 마음의 거리마저 늘려 놓았다.

그리고 그 무렵, 부모님 대신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시골마을에서도  많이 떨어진 곳에 있는 농막 겸 살림집이었다.

온통 감귤나무와 방풍림으로 심어놓은 뾰족한 삼나무와 측백나무에 둘러싸여 마치 요새와 같았다.

저녁이면   누렇게 마른  숙대 나무 잎과 솔잎으로 아궁이에 불을 지펴 밥을 하면 새어 나오던 하얀 수증기가 우리 집의 인기척을 알리던 곳.

어린 나에게는 하늘보다 먼저 어두워지는 나무의 그림자가 한없이 크게 느껴져 무서웠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귤농사 외에도 벌을 모아 양봉을 하셨다.

양봉이라는 일이 마치 유목민처럼 꽃무리를  따라 벌통을 옮겨 다니며 생활을 하는 작업이다.

그러다 보니 산이나 들에 간이 천막을 치고 그곳에서 밤을 지내시는 날들도 종종 있었다.

그런 날이면 나 홀로 그 요새를 지켜내야 했다.

바람이 심한 날이면 유리창을 마구 흔들어대고, 마른나무문들이 바람을 만나 삐꺽거리는 소리가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려도 가시지 않았다.

억지로 누운 잠자리에 반투명창에 비친 크고 뾰족한 삼나무의 흔들거림은 마치 톱날이 밤하늘을 베듯 마구 좌우로 흔들어댔다.

 달빛은 고요하고 바람끝에 날아든 귤꽃의 향기는 달큰하건만...

나의 세상만 시끄럽고 날이 서 있다.

그 이후로 여름이 시작되기 직전, 제주의 밤이 귤꽃의 향에 취하기 시작하면 나는 최면에 걸린 듯, 여물지 못한 그 때의 어린 나로 매번 돌아간다. 나의 세상을 마구 흔들어대던 그 바람 속에 또 나를 세운다.

부모의 부재와 친구들과의 별리(別離), 홀로 보낸 많은 밤들... 어린 나는 나를 어떻게 돌보았을까?

출렁대던  봄끝과 여름을 올해도 잘 지나왔다.




주말이면  나는 늘 혼자였다.

집은 외딴곳에 있어 마을 친구들도 사귀지 못했고 다니는 학교는 시외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곳에 있으니 학교 친구들과 만나기에는 버스비가 들어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  집에 자전거가 있었다.

아무도 타지 않는, 쓸모를 다하지 못하고 있는 그것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세발자전거도 타보지 못한 내가 호기롭게 두 발 자전거를 혼자 타 보겠노라고 요리조리 만져도 보고 비툴 대며 안장에 앉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한 바퀴도 굴러보지 못하고 매번 자전거는 마치 조련이 안된 야생마처럼  나를 땅바닥에 마구 내동댕이쳐댔다.

그만하면 포기할 만도 한데 나는 며칠을 자전거에 매달렸다.

어느 날인가 대문 밖 내리막 경사가 눈에 들어왔다.

신박한 방법을 생각이라도 해낸 듯, 자전거를 끌고 그 내리막에 나를 실은 자전거를 올렸다.

땅에서 발을 띄자, 자전거는 구르기 시작했다.

일단 출발은 성공!

성공의 기쁨도 잠시, 비포장 시골길 바닥에 버섯머리처럼  솟아난 에 걸려 또 냉동댕이 쳐졌다.

용감한 건지  무모한 건지 모를 도전이 만신창이로 끝이 났다.

이마에  자줏빛 멍과 혹만 생겨났다.

결국, 군 휴가 나온 작은아버지의 도움으로 자전거를 배웠다.

넓디넓은 미끈한 운동장에서 말이다.

여름이 지난 이 계절, 차를 두고 나는 종종  자전거를 타고 마실을 다닌다.

좀 먼 거리에 있는 대형마트도 가고, 동네슈퍼도 가고, 산책 삼아 해안도로도 달린다.

역시 몸으로 배운 건, 어디 안 간다.


몸으로 배워야 하는 건 골프도 마찬가지다.

몸으로 배운 걸 말로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골프 레슨 방송이 그리 많은 것일지도 모른다. 저마다의 표현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자신의 스타일에 맞는 방법을 취사선택한다. 필드에선 자신이 하는 스윙을  볼 수 없으므로 순간적으로 이루어지는 동작에서 잘못된 것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볼을 친 당사자는 연신

 "왜 볼이 안 맞는 거지?" 라고  갸우뚱거리기만 한다.

점점 마음은 조급해지고 애꿎은 잔디만 파댄다.

이때 함께한 동반자나 캐디가  조언해주는 말이 있다.

 초보자만이 아니라 일시적인 입스가 온 골퍼들에게도 하는 말이다.


 "힘 좀 빼고 머리 들지 말고 볼을 끝까지 보세요."

눈에 확 띄지 않는 미세한 부분의 이상일 수도 있지만, 뭔가 샷에 문제가 생겼다면 가장 기본적인 것을 먼저 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부분에 집중을 하고 샷을 하면 100퍼센트의 만족은 아니지만 그래도 좀 전과는 다른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골프는 너무 멀리 보거나 빨리 결과를 보려고 머리를 드는 순간, 내 몸을 지탱하던 축은 무너진다.

틀어져버린 궤도에서 이상적인 결과를 기대할 순 없다.

너무 잘 치려고 생각하면 온몸에 힘이 들어가고 그 과한 힘이 근육을 굳게 하여 샷을 망가뜨린다.


자전거 마실을 다니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오르막을 만난다.

내려서 자전거를 끌고 갈 것인지, 아니면 힘닿는 데까지 타고 올라갈 것인지 갈등을 한다.

일단 타고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우선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하고 고개를 들고 올라갈 길을 바라본다.

그리고는 몸을 가볍게 부양시키는 것처럼 힘을 빼고 고개를 숙여 페달을 돌리는 발에만 집중한다.

앞에 장애물이 있다는 것을 감지하지 않는 이상, 평지에 다다를 때까지 고개를 들지 않는다.

고개를 들어 앞을 보면 끝이 너무 멀게만 느껴져 쉽게 지쳐버려 중간에 포기할 수도 있다.


꿈이나 목표를 향해 가는 우리의 삶도 그렇지 않을까?

누구나 꿈을 꾼다.

이룰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는 불확실하고 세상 풍파에 가장 먼저 닳아지는 것이 꿈이라 한들, 저마다의 가슴속에 소망의 집을 짓고 살아간다.

아득한 꿈도 내것이고,지금 현실의 삶도 내것이다.

멀리에 있는 목표를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곳에 안착하려면 지금 현재 내가 집중해야 할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힘을 빼고,머리 들지 말고...뚝심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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