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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경 Oct 28. 2022

셜록 홈즈의 후예

캐디와 사람

달에 한 번은 주말을 지나고 월요일 아침 일찍,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간다.

지난 세월의 무게를 온 몸으로 감당했다는 것을 의사에게 확인이라도 받듯 어머니는 주기적으로 병원 마실을 가신다.

안과,내과,정형외과 3군데를 가야하니, 이른 시간부터 어머니는 서두르신다.

매번은 아니지만, 가급적 어머니와 병원은 동행하려 한다.

어머니는 외출에 대한 야릇한 설레임도 있는 듯 하다.

시내에 나가면서 거리 구경, 사람구경도 하고, 병원 진료를 마치고 어머니가 좋아하는 추어탕도 함께 먹어 줄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일찍 문을 여는 안과부터 방문한다.

언제나 그렇듯, 이른 시간은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이 병원을 점령하신다.

평생 몸에 각인되어 버린 부지런함때문인지, 새벽잠이 없어진 신체리듬때문인지  이른 시간의 병원 풍경은 거의 비슷하다.

 그 곳의  의사선생님은 내가 어머니와 자주 동행하므로  낯설지 않다.

하루종일 켜놓는 에어콘때문인지 여름인데도  항상 긴팔 와이셔츠를 입는 분이셨다.

와이셔츠의 소매를 반쯤 걷어올린 채, 진료를 보고 계셨다.

평소 사람을 유심히 보는 내가 아니지만, 그런 내 눈에도 그 날은 그에게 뭔가 변화가 생겼음이 느껴졌다.

진료기구를 다루거나 어머니의 머리를 진료기계에 맞닿게 하려고 뻗은 손과 팔이 경계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손가락, 손등과 달리 손목부터 전완부의 팔은 검게 그을려 있었다.

약지 손가락에 반지표식처럼 둥그런 링 모양의 자국도 보인다.

'어제가 주말이라 어디 다녀오신 모양이군. 손과 팔의 경계가 있는 것으로 봐선 장갑을 꼈다는 것이고 유독 왼 손보다 오른 손이 더 까뭇한 건 왼쪽손에 장갑을 더 오래 끼고 있었다는 것,,그럼 골프 치러 다녀오셨나?'

목덜미와 양귓볼도 까뭇까뭇하다.

피부상태로 보아선 자외선차단제를 잘 바르지 않는다는 것이고 보기보다 털털한 성격이라는 것.

진료하실때는 꼼꼼하고 세심하신데, 그에 반해 일상생활에선 다른 면모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알 수는 없다. 확인할수도 없는 것이니..혼자만의 추리일 뿐이다.



근무전 카트세팅을 하고, 그 날 내가 맡은 팀의 예약시간을 확인하고 명단을 확인한다.

내가 그날 맞이해야 할 고객이 2명일수도, 3명일수도,  4명일수도 있다.

각 골프장의 운영방식에 따라 1팀에 2인에서 5인까지 함께 경기를 할 수 있다.

캐디 한 명이 담당하는 경기자수는 최대 4인이기 때문에 5인경기를 하게 되면 캐디가 2명이 배치되고 그와 함께 전동카트도 2대가 함께 운행이 된다.

캐디들에겐 당연히 담당해야할 인원수가 적으면 좋다.

하지만 2인보다는 3인 경기를 더 선호한다.

"캐디에겐 명품Bag보다 더 좋은 게 3Bag(쓰리빽)"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여기서 3Bag은 경기자들의 골프Bag을 가리켜 3인경기를 뜻한다.

경기자들의 입장에선 4인경기가 더 재미있다고 한다.

고객들끼리의 게임방식을 결정하는데에서도 4명이 더 다양하기 때문이다.

고객이 프론트에서 체크인을 하면 경기팀으로 고객명단이 전송된다.

고객명단이 적힌 배치표는 캐디가 직접 출력하고 고객이름과 골프Bag에 붙어 있는 이름표를 확인하고 전동카트에 상차를 한다.

이름으로도 대강 나이대를 짐작할 수 있다.

다음으로  골프Bag의 외형을 살핀다.

골프Bag의 문양, 디자인을 보고도 주인의 성향을 파악해본다.

요즈음 유행하는 밀리터리 문양의 패브릭소재의 거치대가 있는 스탠드Bag일 경우 젊은 세대일 가능성이 높다.

값비싼 브랜드의  골프Bag을 보면 내 입장에선 부담스럽다.

심지어 골프채에 씌워진 요란한 장식의 값비싼 헤드커버가 씌워진 것들은 더욱 그러하다.

단순히 이런 소품들이 귀엽거나 예뻐서 많은 돈을 지불하고 구입한 경우도 있겠지만, 과시욕이 있는 사람일 수 있다. 반면 이런 유형일수록  캐디가 핸들링(?)하기 편한 타입일수도 있다.

이에 반해 골프Bag이나 헤드커버가 색이 바랬거나 낡은 것을 보면 '골프에 진심'인 사람일 수 있다.

색이 바랜 것은 그만큼 햇빛에 많이 노출되었다는 것, 이는  필드경험이 많다는 것을 뜻하고, 필드경험이 많으면  숏게임이나 퍼팅을 잘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Bag의 무게도 중요한 알림정보이다.

들어 보았을 때 그냥 전체적으로 무거운 건, 일단 아이언 클럽이 스틸소재로 되어 있거나 ,어프로치용 웨지클럽이 많다는 것이다.

같은 무게라도 헤드보다 밑부분이 유독 무거운 건, 볼이 많이 들어있다는 것으로 비기너(초보자)이거나 볼을 많이 잃어버리는 샷이 부정확한 사람일 경우일 수 있다.  외에도 가방안에 유사시를  대비한 물건이나 비옷, 바람막이등이 많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일수록 샷을 할 때 하나하나 신중하게 살피고 경기를 하므로 진행이 다소 느려질 우려도 있다.

마지막 점검 포인트는 클럽페이스(공을 칠 때 공이 골프채에 맞는 부분)를 살펴 본다.

아이언일 경우 7번만 사용감이 있고 ,다른 번호의 아이언들이 깨끗하다면 십중팔구 초보자이다.

골프에 입문할때 일명 똑딱이(작은 스윙으로 볼을 치는 것)를 할때 쓰는 클럽이 대개 7번아이언으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아이언들의 페이스에 골고루 사용감이 있다면  3,4번의 롱아이언들의 페이스에 맞은 자국들을 살펴 본다.

가운데 부분(스윗스팟)주위에 흔적이 있다면 아이언컨택을 잘 하는 사람이고, 이런 경우 소지하고 있는 우드가 많지 않다.

왠만한 거리는 롱아이언으로 커버할 수 있으므로, 오히려 우드보다는 어프로치용 클럽이 더 다양할 수 있다.

유틸리티나 하이브리드용 클럽이 많다면 이는 롱아이언샷에 자신이 없다는 것을 뜻할 수 있다.

가방에서 소지품을 꺼내거나 담을 때 꼭파우치에 담아 정리를 하거나 각을 맞추어 접어서 담아놓는 사람들일 경우, 캐디인 내가 클럽을 정리하여 골프Bag에 넣을 때 번호대로 질서정연하게 담아 놓아야 한다.

이는 꼭 그런 성향의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캐디가 클럽을 정리할때의 기본이다.

흙이나 모래가 많이 묻어서 물과 솔을 이용해 클럽을 닦았다면 타월로 꼭 물기를 잘 닦아주어야 한다.

아이언이나 웨지용 클럽들은 단어자체 그대로 철소재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물기가 남아 있으면 산화될 수 있다. 애초에 물이나 솔로 닦지 말라고 고객이 요청할 때도 있다.

비가 내리거나 오전에 이슬이 많이 있는 날은 클럽의 손잡이에 묻어있는 물기도 잘 닦아주어야 한다.


모두가 알다시피 골프는 혼자 하는 운동이 아니다.

아주 특수한 상황이 아닌 이상, 최소 2인 이상이 팀을 이루어 필드로 나간다.

한라운드가 보통 4시간에서 4시간 반 정도 소요되니. 팀의 구성원들은 함께 그 시간동안 각자의 플레이를 하면서 그들과 함께 해야 한다.

짧지 않은 시간과 여러 변수가 생기는 상황에서 그들의 상황대처나 대화,샷의 결정방식을 통해 그들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다. 나 또한 골프를 치면서 나를 조금 더 알게 되었다.

경기를 하고 난 후 동반자들과 전혀 아무런 감정의 불편을 느끼지 못했다면 분명 그들과는 허물없이 아주 잘 지내는 관계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골프는 캐디에게나 경기자에게나 체력적으로도 , 정신적으로도 만만한 운동은 아니다.


예전에 TV예능에 '순간포착'이라는 코너가 있었다.

뭔가 물체를 빠르게 던지거나 지나갈때 그 물체의 형상을 직감으로 파악하여 그 물건의 정체를 알아맞추는 것이다.

나는 한번도 맞춘 적이 없다.

그건 일을 하면서도 자주 맞딱뜨린다.

경기자가 친 볼이 나무를 맞거나 돌을 맞고 어디론가 튀어오르거나 사라질때 나는 그 행방을 잘 포착하지 못한다. 아무리 유심히 보고 있어도 내 눈이 잘 따라가지 못한다.

이런 능력만으로 캐디를 해야 한다면 나는 아마 조기퇴직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사람의 마음을 잘 다루어야 하는 영역이 더 크다.

그래서 그 사람의 성향을 잘 파악하고,그에 적절하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책무가 있다.

그러므로 별거 아닐지 모르는 일련의 작은 팁들이 그들을 파악하고 추리해보는 요소로 작용한다.

이는 순간적 관찰이기 보다 관찰과 거기에 생각을 덧대어 나만의 데이타를 구축해 보는 일.

가끔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는 경우가 없지는 않지만, 사람 살아가는 것, 생각하는 것...거의 비슷하지 않던가!


어릴적 사촌 동생네 집에 가면 셜록홈즈시리즈 책이 있었다.

방학숙제용 동화책은 안 읽으면서 정작 주인인 동생들은 들춰보지도 않았던 그 책들을 내가 모두 읽었다.


이래서 어릴적 독서가 중요한 걸까?















오히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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