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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루 Apr 04. 2024

태양각 닭튀김

우리 동네에 한국사람이 운영하는 중국집이 있다. 여러 상점이 몰려있는 상업지구 한 귀퉁이에 작게 자리 잡고 있다. 상호가 태양각이다. 꼭 한국의 노포스러운 이름이다. 간판 아래 작게 Korean Chinese Restaurant(코리안 차이니즈 레스토랑)이라는 식당의 정체성을 알리는 문구가 적혀있다. 식당을 찾는 손님은 대부분 한국사람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담한 크기의 홀에 별다른 인테리어 없이 식탁과 의자가 놓여 있다. 중앙 벽 윗면에 티브이가 걸려있는데 항시 한국 예능 프로그램이 틀어져 있다. 종업원은 한국인 아주머니 한 분이다. 식당 크기도 작고 손님이 꽉꽉 들어차는 경우는 그다지 보지 못했다. 한국에 널려 있는 흔한 동네 중국집같고 아무 때나 혼자서도 부담 없이 들를 수 있는 분위기다. 다만 여기는 한국이 아니고 캐나다이기 때문에 이런 식당을 흔하다고 할 수는 없다. 고국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몇 안 되는 식당이다.

주방을 맡은 이가 고용된 주방장인지 사장인지 확실하지 않다. 서빙하는 아주머니 또한 직원인지 식당의 안주인인지 알지 못한다. 사장님이 직접 음식을 만드시나요? 부부가 운영하시는 건가요?

궁금하지만 수줍음이 많은 나는 묻지 못한다. 수고하세요 내지는 잘 먹었습니다 정도의 인사만 건넨다.





이 집은 무엇보다 탕수육과 깐풍기같은 튀김 종류를 잘한다. 자장면과 짬뽕의 맛은 평균으로 나쁘지 않은 수준이다. 쌩뚱맞지만 나는 자장면이나 탕수육보다 닭튀김을 자주 시켜 먹는다. 다른 손님이 주문하는 걸 본 적은 없다. 사실 중국집에서 닭튀김을 주문하는 사람이 나 말고 또 있을까 싶다. 특별한 요리는 아니고 이름 그대로 조각낸 닭정육을 기름에 튀긴 것이다. 여기에 고추기름과 초간장을 부으면 깐풍기가 된다.

"그냥 깐풍기 만들 때 쓰는 닭고기예요. 양념 하냐 안 하냐 차이예요. 괜찮겠어요?"

처음 닭튀김을 주문했을 때 주문을 받던 아주머니가 알고나 먹으라는 듯 말했다. 그냥 깐풍기 먹는 게 나을 텐데 같은 뉘앙스도 섞여있다. 함께 식당에 간 언니와 형부는 그 말을 듣더니 고민하는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봤다. 나는 틈을 주지 않고 주문을 확정지었다.

"주세요. 닭튀김!"

기름에 튀긴 닭이 맛이 없긴 힘들다. 여기 주방장의 튀기는 솜씨는 훌륭하기 때문에 어떤 튀김이든 무조건 맛있을 수밖에 없다.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 갓 튀겨 나온 닭튀김은 정말 맛있었다. 치킨 전문점에서 먹는 후라이드 치킨 저리 가라다. 튀김옷은 얇고 바삭바삭했다. 속살은 촉촉했고 염지도 적당해 간이 딱 맞았다. 순살이라 뼈를 바를 필요도 없고 딱 한입크기여서 먹기도 편했다.

"치킨집에서 치킨 시켜 먹을 필요가 없겠는 걸."

언니와 형부도 맛있다며 만족해했다. 이후 후라이드 치킨이 먹고 싶으면 태양각엘 간다.





근방에 한국식 치킨을 파는 곳은 여러 군데 있다. 한국식 술집에서도 치킨을 팔고 치킨만 전문으로 파는 치킨집도 있다. 먼 타국일지라도 한국인을 상대로 하는 식당이라면 국에서 유행하는 음식을 무조건 흉내는 낸다. 요즘 유행대로 온갖 양념가루와 자극적인 소스로 맛을 낸 치킨을 내놓는다. 내 입맛에는 그저 그렇다. 나이가 들수록(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담백한 음식에 입맛이 더 끌린다. 치킨도 아무 양념 없는 후라이드가 좋다. 치킨 전문점이라 하더라도 자극적인 소스로 덮어버리면 그만이니 기본에 충실한, 그러니까 근본적으로 닭을 잘 튀기는 곳은 없다. 중국집 태양각만이 유일하다. 사실 이 정도로 닭을 잘 튀기는 집은 한국에서도 찾기 어렵다.

캐나다에서, 그것도 집에서 차로 오분이면 닿는 거리에 런 식당이 있다니 엄청난 행운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부디 주방장이 바뀌지 않고 오래오래 닭을 튀겨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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