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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루 Mar 30. 2024

씨씨가 만들어 준 모래 커피

오후 바깥놀이 시간이 되어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터로 나왔다. 나른하고 지루한 오후다. 피곤해, 라는 말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누구 들으라고 한 소리는 아니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발치 아래 머리를 모으고 놀이에 열중하고 있는 무리 중 하나가 고개를 든다. 볼이 빨갛고 동그란 안경을 쓴 씨씨다.  

"미스 미아, 피곤한가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묻는다. 아이의 반응이 문득 반갑다. 어쩌면 나는 누군가에게 넋두리를 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응, 좀 피곤해."

"커피를 마셔봐요."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온다. 네 살짜리 아이가 들이미는 대안치고 꽤나 현실성 있다.

"커피를 마시면 좀 나아질까?"

아이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 엄마도 피곤할 때 커피를 마셔요."

똑 부러진 대답이다.

"맞아, 네 말대로 커피 한잔을 마시면 괜찮아질지도 몰라. 씨씨, 너 참 똑똑하구나."

아이는 벌떡 일어나 모래 놀이터로 뛰어간다. 잠시 후 돌아와 내게 뭔가를 내민다.

"여기 커피 가져왔어요."

아이가 들고 온 장난감 컵 안에 모래가 절반정도 차 있다. 마음이 뭉클해진다.

"오! 나를 위해 커피를 만들어 왔구나. 고마워!"

플라스틱 컵을 입 가까이 대고 마시는 시늉을 한다. 그런 나를 보며 아이는 신나 죽는다. 발을 동동 구르며 까르르 웃는다.

"좀 더 가져올게요!"

손에서 컵을 낚아채 다시 모래사장 쪽으로 뛰어간다. 커피 대접 놀이는 그 뒤로 몇 분 간 이어진다. 나는 단번에 놀이상대로 전락하고 말았다. 미스 미아가 피곤한 것 따위 어찌 됐든 상관없는 분위기다. 상황의 흐름과 역할의 변화가 너무도 자연스럽다. 허탈한 웃음이 나온다.

그래, 네가 즐겁다면 그걸로 됐다. 작은 불행 따위 아무려면 어때?

씨씨처럼 솔직하고 단순하게 군다면 사는 건 훨씬 담백해지겠지?그저 삶이 흘러가는 대로 살자 해놓고도 나는 자꾸만 그 결심을 잊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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