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금요일은 무비데이(Movie Day)다. 점심을 먹고 낮잠에 들기 전 삼십 분 정도 아이들은 교실에 비치된 티브이로 영화를 본다. 작년까지만 해도 구닥다리 DVD 플레이어로 영화를 봤다. 연초에 학부모 한 명이 스마트 티브이를 교실에 기증했다. 새 티브이를 구입하면서 기존에 쓰던 것을 기증한 것이다. 스마트 티브이 덕분에 이제는 어린이 집에서도 넷플릭스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은 몇 장의 DVD를 돌려가며 봤던 걸 보고 또 봤다. 넷플릭스가 연결되니 신세계다. 종류도 많거니와 최신작이 쏟아진다. 아이들은 집에서 자주 봐서 인지 익숙한 눈치다.
평일 내내 비 오거나 흐린 날만 이어지다 주말을 하루 앞두고 하늘이 맑게 개었다. 점심시간 즈음하여 원장과 부원장 모두 퇴근해 버렸다. 상사가 일찍 퇴근하면 누구 눈치 볼 일 없으니 심적으로 편해진다. 오후 4시가 넘어 바깥놀이를 마치고 교실로 돌아왔다. 스무 명 넘던 아이들 중 대부분은 집으로 돌아가고 열명 남짓 남았다.
아까 낮에 보던 영화를 다시 틀어주고 잠시 주방으로 건너간다. 싱크대 찬장에서 팝콘 몇 봉지를 꺼내 전자레인지 안에 넣는다. 봉지가 부풀어 오르고 옥수수알갱이가 팡팡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 고소한 냄새가 사방에 퍼진다.
튀겨진 팝콘 봉지를 열어 컵에 나눠 담는다. 냄새를 맡은 아이들은 "팝콘이다!" 환호성을 지른다. 영화는 매주 금요일마다 보지만 팝콘은 매번 튀기지 않는다. 아이들이 너무 많을 때 팝콘을 튀기면 한도 끝도 없다. 그날그날 상황 봐가며 팝콘을 제공할지 말지를 결정한다. 열명 이하의 인원이 남았을 때가 적당하다. 팝콘을 먹는 날이면 집에 늦게 가는 아이들로서는 행운이다.
팝콘이 담긴 컵을 하나씩 받아 쥔 아이들은 제대로 자세를 잡고 영화를 본다. 슬그머니 아이들 사이에 껴본다. 아동용 영화라도 어떤 것은 꽤 재밌다. 언젠가 보스 베이비라는 제목의 영화를 아이들과 함께 봤는데 설정이 황당하고 웃겨서 애들보다 더 낄낄대며 봤다.
아이들이 빠작빠작 소리를 내며 팝콘을 씹는다. 화면을 보면서 어쩌고 저쩌고 떠든다. 묻지도 않았는데 특정 장면이나 캐릭터에 대해 설명해 준답시고 그런다.
응응, 그렇구나 열심히 대꾸해 준다. 오늘 보는 만화 영화는 아이들은 열광하지만 내 눈에는 영 재미없다. 화면에서 눈을 돌려 아이들 얼굴을 구경한다. 그 편이 훨씬 재밌다. 집중하고 있는 조그만 얼굴들이 하나같이 깜찍하다. 팝콘 한주먹을 입 안 가득 밀어 넣는 순간, 작은 입이 동굴처럼 열린다. 나도 모르게 따라서 입을 쩍 하고 벌릴 뻔했다.
통창너머로 따스한 햇볕이 쏟아져 들어온다. 팝콘의 뽀얀 살결처럼 몽실몽실한 순간이다.
동료 교사들도 하나 둘 퇴근하고 교실에 남은 교사는 나 하나뿐이다. 영화를 보는 중간중간 학부모가 와서 아이를 데리고 돌아간다. 마지막 아이가 떠나고 시계를 보니 이제 막 다섯 시가 됐을 뿐이다. 평소라면 이 시간까지도 몇몇 아이들이 남아있기 마련인데 오늘은 모두 일찍 떠났다. 퇴근까지 삼십 분가량 남았지만 주저 없이 가방을 챙긴다. 만약 원장이든 부원장이든 함께 있다면 무조건 근무 시간을 채우고 정시에 퇴근해야 한다. 오늘은 그럴 필요가 없다. 내게도 럭키한 날이다. 청소를 하러 온 청소부에게 인사를 건네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문을 나선다.
평화로운 금요일 오후다. 모처럼 불금을 즐기고 싶다. 집에 가서 뭘 할지 궁리해 본다. 나도 무비데이를 가져볼까? 아무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오락 영화 한 편이면 나쁘지 않겠다. 팝콘으로는 부족하고 치킨이나 피자를 곁들이면 금상첨화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