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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루 Apr 06. 2024

고등어가 익는 동안

고등어 구이가 먹고 싶었다. 생선 구이를 좋아하지만 집에서는 잘해 먹지 않는다. 집안에 배이는 생선 냄새가 싫어서다. 웬만하면 그냥 넘어가겠는데 이번에는 며칠 째 생각이 다. 노릇하게 구워진, 기름이 자글자글한 고등어 한 점을 밥에 올려 먹으면 얼마나 맛있을까? 까짓것 구워 먹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사방팔방 기름이 튀고 비린내가 진동할 걸 떠올리면 선뜻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것이었다.

"고등어구이 먹고 싶다."

마음속 갈망이 너무 컸던 나머지 말이 육성으로 튀어나왔다. 혼자였다면 혼잣말로 끝났겠지만 언니가 옆에 있다 들었다.

"먹으면 되지."

누가 그걸 몰라? 냄새나고 기름 튄다고 구시렁대자 언니가 대안을 제시한다.

"발코니에서 바비큐 그릴에다 구우면 되잖아."

그렇다. 우리 집에는 캠핑용 바비큐 그릴이 있었다. 나는 완전히 까먹고 있었다.

"꺼내는 거 귀찮아. 그릴 닦는 것도 귀찮고."

어떡하면 고등어를 먹지 말아 볼까 고심하는 사람같이 군다. 속마음과 정반대로 구는지 모를 일이다. 언니는 형부 보고 꺼내달라 하면 되고 그릴은 자신이 닦으마 한다. 더 이상 물고 늘어질 트집거리가 없다.

신이 나서 고등어를 사러 한인 마트에 달려갔다. 말끔히 뼈가 손질된 냉동 고등어자반을 팔고 있었다. 생물도 있었지만 생선을 손질해 주지 않거나 손질 값을 따로 받기 때문에 패스한다. 날생선을 다듬는 일만큼은 절대로 하고 싶지 않다. 고등어를 사들고 돌아오니 발코니에는 바비큐 그릴이 이미 펼쳐져 있다.





언니와 형부가 캠핑 가서 삼겹살 구워 먹겠다고 몇 년 전 사다 놓은 가스 그릴이다. 둥근 무쇠 불판 위로 파란색 알루미늄 뚜껑이 달려 여닫을 수 있게 되어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딱 적당한 크기다. 우리 집 작은 발코니에 펼쳐놔도 장소를 많이 차지하지 않는다.

화력 좋은 가스불에 달궈진 그릴 위로 고등어 필렛을 올린다. 금세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구워진다. 뚜껑을 닫아 속까지 익도록 놔둔다. 고등어 익는 냄새가 사방에 퍼진다. 아래윗집은 물론이고 옆집에서도 생선 굽는 냄새를 맡을 것이다. 발코니에 그릴을 두고 바비큐든 스테이크든 굽는 게 이 나라에서는 당연한 문화이기 때문에 그다지 신경 쓸 필요는 없다.

그릴 앞으로 의자를 끌고 와 앉는다. 열린 문 사이로 언니가 키우는 고양이 두 마리가 슬그머니 빠져나온다. 허공에 코를 킁킁대며 진동하는 생선 비린내를 맡고 그릴 주위를 조심스레 살핀다. 탐색이 끝나자 한 마리는 뻔뻔스럽게 내 무릎 위에 올라와 앉는다. 평상시 아무리 애걸해도 절대 내 무릎에 올라오지 않는 놈이다. 다른 한 마리도 무릎 위에 앉겠다고 야옹 댄다. 내 허벅지는 두툼한 편이지만 두 마리를 한꺼번에 올려놓을 정도는 아니. 접이식 의자 하나를 펼쳐 옆에 놓아주었다. 고양이는 기다렸다는 듯 냉큼 의자 위로 올라온다. 긴 꼬리로 똬리를 틀듯 자그마한  발을 감싸고 허리를 꼿꼿이 세워 앉는다. 자세만큼 새침한 표정을 하고 있다. 





우리는 생선이 기를 기다렸다. 발코니 앞 울창한 숲을 함께 바라봤다. 이름을 알 수 없는 키가 큰 나무들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다. 우리 집은 이층이라 나무 3분의 2 높이쯤 닿아있다. 고개를 살짝 들어 올리면 나무의 꼭대기가 보인다. 삼층에 사는 사람들은 숲을 내려다볼 수 있을 것이다. 그쪽이 경치를 즐기기 더 좋을 듯싶다. 물론 이층에서 바라보는 숲도 나쁘지 않다. 까만 청설모가 거침없이 나무를 타고 올라온다. 깊은 새벽이면 하얀 올빼미가 동그란 눈을 희번덕이며 앉아 있는 모습을 볼 때도 있다.





바람이 분다. 높고 뾰족한 나무 꼭대기가 좌우로 흔들린다. 나뭇가지가 흔들릴 때 숨어 있던 새들이 푸드덕하고 달아난다. 나뭇잎 몇 장이 팔랑대며 아래로 떨어진다. 고등어에서 기름이 지글대는 소리가 작게 들린다. 세상은 잠시 정지한다. 한없이 평화로운 순간마다 이런 기분이 든다. 시간이 멈춘 것만 같고 현실이 꼭 비현실 같다. 그리고 좀 불안해진다.

그릴 위에 고등어가 구워지고 있어.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불안한 나를 달래는 또 다른 나다.

그렇지. 고등어만 제대로 구워진다면 아무렴 상관없지.

나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고양이 두 마리는 잠든 것도 아니면서 자리에 꼼짝하지 않고 앉아있다. 얌전히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휴일 오후 고등어를 구웠다는 이야기. 지글대는 소리를 들으며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꼭대기를 바라봤다는 이야기. 고등어가 는 동안 고양이가 함께여서 덜 외로웠다는 이야기. 고작 그런 이야기 말고는 쓸게 없을 만큼 내 생활은 단조롭다.

그릴에 구운 고등어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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