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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루 Apr 09. 2024

달리기, 심장, 그리고 대범함의 상관관계

일 년 정도 꾸준히 달렸던 적이 있다. 그때를 떠올리면 스스로도 좀 신기하다. 나 같은 운동 혐오자가 매일 달리던 시절이 있었다니. 하지만 사실이다. 그리 오래 전도 아니다. 코로나 팬데믹 중간 한국에 일년 반 정도 머물 때였다.  달리기라도 하지 않으면 집 밖에 나갈 일이 전혀 없었다. 팬데믹이라는 특정한 시기가 없었다면 내 인생에 달리기란 없었을 테다.

좌우지간 그때 나는 거의 매일 한강 공원에 뛰러 나갔다. 나중에는 동작에서 여의도까지 쉬지 않고 달릴 수 있게 되었다. 러닝 크루에도 가입했다. 여의도 공원, 한강, 서울숲, 남산을 넘나들며 그룹 러닝을 했다.

캐나다로 돌아오고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달리기와는 금방 멀어졌다. 피곤하다는 핑계로, 겨울이면 비가 온다는 핑계로 자연스레 안 하게 되었다. 2년이 흘렀다. 그동안 단 한 번도 뛰지 않았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단칼에 달리지 않게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가끔 전처럼 다시 달릴 수 있을까를 가늠해 보면 막막했다. 매일 달리던 과거의 나는 마치 신기루 같고 다시는 그때로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얼마 전 다시 달리기를 시작했다. 이유가 좀 뜬금없다. 역류성 식도염 때문이다. 생활습관을 뜯어고쳤는데도 불구하고 한번 망가진 위와 식도는 좀체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눕지 않고 서 있을 때에도 위산이 넘어왔다. 얼마 전 기침감기에 심하게 걸렸을 때가 절정이었다. 조금만 기침을 해도 위산이 역류해 무척 고통스러웠다. 이러다간 식도가 죄 타버리고 결국 식도암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유튜브에 역류성 식도염 완치법을 검색하다가 어느 한의사 선생님이 올린 영상을 봤다. 심장이 약하면 위 기능이 떨어진다는 내용이었다. 심장이 펌프질을 잘해서 혈액을 위장까지 충분히 보내야 하는데 그 힘이 약하면 소화기능이 떨어지고 위장 장애가 생긴다는 것이다. 위의 기능을 살리려면 심폐기능을 높여야 한다고 했다. 듣고 보니 꽤 일리가 있었다.






심장이 약한가 되짚어 봤다. 확실히 그런 것 같다. 나는 말그대로 소심(小心)한 인간이다. 작은 일에도 깜짝깜짝 놀라고 온갖 자극에도 예민하게 반응한다. 운동이 싫은 것도 신체 자극이 다른 사람보다 훨씬 고통스럽게 느껴져서다. 심장이 빠르게 뛰면 왠지 불안하다. 그러고 보면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이라면 전반적으로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운동은 물론이고 변화나 도전도 싫어한다. 하다못해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기조차 피해왔다. 심장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무의식적인 행동이었을지도 모른다. 원인이 심장이었다니. 뒤통수를 한대 얻어맞은 것 같다.

하지만 이 가설이 사실이라면 나로서는 유레카를 외쳐야 한다. 무수한 생의 문제를 딱 하나로 해결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그러니까 심장만 튼튼해지면 된다 이 말 아닌가?






심폐기능 높이기에는 달리기만 한 게 없다. 마침 영상을 본 날이 주말이었다. 비도 오지 않았다. 달리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오랜만에 러닝화를 찾아 신고 밖에 나갔다. 예전에 줄기차게 활용하던 러닝 앱을 켰다. 초급 프로그램을 따라 걷다 뛰다를 반복했다. 달리는 구간이 길지 않았지만 오랜만에 심장이 제대로 뛰는 느낌이 들었다. 심장 박동이 빨라질 때마다 혈액이 온몸 구석구석 잘 퍼져나간다고 상상하니 뛰는 게 그다지 괴롭지 않았다. 허벅지의 근육통은 하루 쉬니 말끔히 나았다. 두 번째 뛰러 나간 날에도 컨디션이 좋았다. 세 번째 뛰는 날은 꽤 속도를 낼 수 있었다. 신체는 정신보다 기억력이 좋았다. 이런 기세라면 과거에 뛰던 페이스를 금방 따라잡을 것 같다.






역류성 식도염이 나아지길 바라본다. 지금보다 더 대범하고 용감해 지길. 변화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길. 상처받고 버림받아도 훌훌 털고 일어나 다시 아낌없이 사랑할 수 있게 되길 바라본다. 정말 심장이 튼튼해지는 것 하나로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될지 확인해 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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