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 프누... 메..."
Pneumatic Roller라고 쓰인 단어를 읽으려던 참이다. 처음 보는 단어다. 책에 실린 사진을 보니 화물차의 일종인데 사실 한국말로도 뭐라 부르는지 모르겠다. 옆에서 누군가 외친다.
"누메릭! 누메릭 롤러!"
P가 묵음이었다니. 서둘러 발음을 고정한다.
"누메릭 롤러."
고개를 돌려 구세주 같은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는다. 에디였다. 어찌나 고맙던지! 아이와 눈이 마주치자 나는 싱긋 웃었다. 영리한 아이는 그런 나를 보고 살짝 어리둥절하다가 단번에 상황을 눈치챈다.
에디는 길고 어려운 이름을 가진 대상이 책에 나올 때마다 내가 입을 떼기 수초 전 재빨리 정확한 발음으로 단어를 먼저 말한다. 아이들은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이라면 묻지 않아도 다 내뱉는 경향이 있고 에디의 행동도 겉으로 봤을 땐 순전히 그런 것으로만 보인다. 하지만 나는 안다. 아이는 나를 도와주고 있다.
영어를 잘 못하는 내게 아이들은 누구보다 좋은 영어 선생이다. 아이는 어른처럼 빙빙 둘러 말하거나 격식을 차려 말하지 않는다. 직관적인 문장과 표현을 구사한다. 알아듣기 쉽고 기억하기도 쉽게 말한다.
잔디 깎는 기계를 Lawn mower(런 모얼)이라 한다고 알려준 건 네 살짜리 케일럼이었다. 장미나 블랙베리 넝쿨에 돋아있는 식물의 가시를 말할 때 Thorn(쏜)이라는 단어보다 Prickle(프릭클)이라는 단어를 훨씬 일상적으로 쓴다는 것도 아이들 간의 대화를 엿들어 배웠다.
단어를 어떻게 발음하는지 헷갈릴 때도 아이에게 묻는다. 캐나다의 기념일 중 하나인 세인트 패트릭 데이의 심벌인 초록 요정을 Leprecaun이라 하는데 정확한 발음을 몰랐다. 그때는 로리에게 물어봤다.
"이 요정 이름이 뭐라고?"
"레프리커언."
아이는 또랑또랑하게 단어를 발음한다. 한번 더 말해보라 하니 군소리 없이 반복해 말해 준다. 끝 어미를 '커언'하고 길게 빼야 한다는 걸 배운다.
우리 반 아이들은 제일 나이가 많아 봤자 고작 다섯 살이다. 선생님이 왜 그것도 못 읽어요? 같은 되바라진 소리를 하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다. 교사로서의 권위나 체면이 깎일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다 어린아이란 본디 순수하고 단순하여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이라면 대수롭지 않게 잘 알려준다. 상대를 깔보거나 의중을 떠보지 않는다. 물어보니 답한다 식의 솔직 담백한 반응이다. 남에게 도움이 되는 상황을 진심으로 기뻐하기까지 한다. '도와줘서 고마워' 혹은 '덕분에 일이 빨리 끝났어' 같은 칭찬 몇 마디면 입이 귀까지 찢어지고 뿌듯해한다. 나는 영어를 배우고 아이는 자존감을 높이니 서로 윈윈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