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후지만 세차장은 그다지 붐비지 않았다. 사람들은 차 안의 소지품과 매트 따위를 바깥에 꺼내 놓고 차를 청소하고 있었다. 괴수로봇의 팔처럼 생긴 청소기를 휘두르며 차 안으로 기어들어가 구석구석 먼지를 빨아들이거나 차체의 물기를 수건으로 닦아내느라 바삐 움직였다. 나는 청소기가 비치되어 있는 주차칸에 차를 대놓고 언니와 형부를 기다렸다. 그들의 세차를 먼저 끝내고 내 차 청소를 도와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비어있던 옆 칸으로 흰색 픽업트럭 한 대가 들어왔다. 다부진 체격의 중년 백인 남자가 운전석에서 내리더니 뒷좌석 문 한쪽을 열어젖혔다. 무언가 풀쩍 점프해 내린다. 덩치가 큰 갈색 스탠더드 푸들이었다. 주차 구역 앞쪽은 화단이라 하기에는 크고 잔디밭이라고 하기에는 좁은, 잔디를 심은 공간이 쭉 이어져 있었다. 단차만 있을 뿐 한발 내디디면 바로 차도였다. 남자는 푸들을 그대로 잔디밭에 풀어놓고는 세차를 시작했다. 자유를 얻은 푸들은 신이 나서 풀쩍 풀쩍 점프를 했다. 딱히 울타리도 없고 차가 오가는 대로와 맞닿아 있는터라 혹시나 개가 잔디밭 바깥으로 나갈까 조마조마하게 바라봤다. 다행히 푸들은 몇 초 뒤 금세 침착해졌다. 멀리 가지 않고 남자의 트럭이 주차된 근방 잔디밭에서만 돌아다녔다. 덕분에 나는 아름다운 스탠더드 푸들을 근거리에서 구경할 수 있었다. 허리가 날렵하고 주둥이가 쪼삣하다. 쭉 뻗은 다리는 어찌나 긴지 두 발로 서면 키가 나만할 것 같다. 갈색의 짧은 털은 양털처럼 곱슬거렸다. 시선을 느꼈는지 개가 고개를 쳐들어 내쪽을 바라봤다. 눈이 정면으로 마주치자 개는 약간 경계하는 눈빛으로, 그러나 호기심을 감출 수 없는 표정으로 탐색하듯 나를 봤다. 이때다 싶어 이리 오라고 손짓을 했다. 개는 고민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허락을 구하려는 건지 눈치를 보는 건지 주인이 있는 쪽을 슬쩍 쳐다봤다. 남자는 차 안에 고개를 처박고 있느라 이쪽에는 신경을 쓸 여력이 없다.
나는 말소리는 내지 않고 조용히, 그러나 더 적극적인 손짓으로 개를 꼬셨다. 개는 주춤주춤 하다가 이내 돌진해 왔다. 긴 다리로 겅중겅중 점프하듯이 뛰어 와서는 두 발로 벌떡 서서 앞발을 내 가슴팍 위에 올렸다. 묵직한 무게와 밀치는 힘에 휘청했지만 다행히 뒤로 넘어지지는 않았다. 재빨리 한발 물러나 얼굴에 거의 닿을 뻔 한 개의 긴 혀를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굿보이! 굿보이!"
수컷인지 암컷인지는 모르나 일단 굿보이를 외치며 개를 진정시켰다. 개는 이내 궁둥짝을 바닥에 붙이고는 얌전히 앉았다.
나는 개의 곱슬곱슬한 털을 어루만졌다. 태평양같이 넓은 등짝을 쓸어보고 궁둥이도 팡팡 두드렸다. 얼굴에 붙은 마른 풀잎을 떼어주고 뾰족한 주둥이 위에 손을 얹어보았다. 눈에서 코로 이어지는 긴 콧잔등의 체온은 서늘했지만 길게 빼문 붉은 혀에서는 더운 김이 올라왔다. 개는 손길을 받으며 연신 꼬리를 흔들었다.
가끔 트럭 쪽을 쳐다보며 남자의 동태를 살폈다. 마치 하면 안 되는 행동을 부모 몰래 하는 어린아이 같은 표정으로 주인 쪽을 보다가 나를 보다가 했다. 그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어쩐지 짠하고 기특하다. 나로서는 굳이 남자의 눈치를 볼 이유는 없으나 개가 자꾸 그러니 따라서 함께 눈치를 봤다.
괜찮아. 나는 나쁜 사람 아니야. 물론 아무 때나 아무한테 막 다가가면 안 돼. 혼자 돌아다녀서도 안돼. 항상 아빠 옆에 붙어 있어야 해. 알았지?
나는 속삭여 말했다. 내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개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원래 자기가 있던 잔디밭으로 돌아갔다.
타이밍도 절묘하게 한참 차 안에 고개를 박고 있던 남자가 개가 어쩌고 있나 살폈다. 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잔디밭으로 돌아와 나무 둥치 냄새를 맡았다. 나도 아무 소리 안 하고 딴청을 부렸다. 남자는 개가 잘 있는 걸 확인하더니 다시 세차에 집중했다. 나는 재빨리 고개를 돌려 다시 개를 훔쳐봤다. 개도 가끔 내쪽을 쳐다봐 줬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꼬리를 살랑살랑 흔든다. 나와 개가 인사를 나눈 사실은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약속이나 한 듯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던 척, 서로 모르는 척을 하며 비밀스럽게 눈빛을 교환했다.
언니와 형부가 왔기 때문에 나도 그만 세차를 하러 가야 했다. 한참을 차 속에 머리를 박고 청소기로 시트와 바닥을 빨아들였다. 오랫동안 세차를 하지 않은 탓에 먼지가 많았다. 한 번으로는 부족하여 동전을 한번 더 넣고 청소기를 두번 가동했다. 한참을 청소기와 씨름한 뒤에야 차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 사이 옆칸의 남자는 세차를 끝내고 막 떠나는 참이었다. 개는 이미 뒷좌석에 올라타 있었다. 세차장을 빠져나가는 흰색 트럭의 뒷모습을 바라보는데 뒤로 나있는 작은 창이 열린 틈으로 개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혀를 빼물고 헥헥대며 내 쪽을 빤히 쳐다본다.
오냐, 잘 가거라.
멀어져 가는 개를 향해 나는 황급히 손을 흔들어 주었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작별 인사도 못하고 헤어질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