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집의 점심시간, 교사는 바쁘다. 도시락 뚜껑 열어달라, 스푼을 달라, 물병에 물을 채워달라 갖은 민원이 들어온다. 아이들 시중을 드느라 정신이 없다.
한차례 난리 부르스를 치고 나면 다들 먹느라 정신이 없고 잠깐동안은 한가해진다. 오늘은 어느 테이블에 앉을까 쓱 둘러본다. 한 테이블에 앉을 수 있는 최대 정원은 여섯 명이다. 다른 곳과 달리 다섯 명만 앉은 테이블이 눈에 띈다. 비어있는 의자에 가 앉는다.
합류한 테이블에는 케일럼이 앉아있다. 밤색 머리칼을 가진 깡마른 소년은 두 달 뒤면 여섯번째 생일을 맞이한다. 9월이면 학교에 갈 것이다. 캐나다에는 유치원이 따로 없다. 어린이 집을 졸업하면 바로 학교를 간다. 캐나다 초등학교(Elementry school)의 입학은 만 6세부터이다. 이 그룹을 킨더(Kinder)라고 부른다. 킨더 다음에 그레이드 원(Grade 1, 일학년), 그레이드 투(Grade 2, 이학년) 이런 식으로 진급한다.
그러니까 케일럼은 올해 어린이집을 졸업할 예정으로 원생들 중 가장 연장자에 속했다. 아이는 언어 구사력이 또래보다 월등히 높았다. 나이에 맞지 않게 조숙하게 말하면서도 엉뚱하고 신박한 구석이 있어서 듣고 있노라면 재밌고 우스웠다.
아니나 다를까 테이블에 앉자마자 케일럼은 기다렸다는 듯이 "미스 미아"하고 입을 뗀다.
오늘의 안건은 '짐'에 관한 것이었다. '짐'이 누군지 전혀 알지 못하지만 급하게 캐물을 필요는 없다. 얘기를 듣다 보면 자연히 알게 될 터였다.
"짐이 말하길, 그의 부인은 토요일에 팔이 부러졌대요."
"오, 어쩌다가?"
"소파에서 일어나다가 넘어졌대요. 발 밑에 루씨가 있었는데 보지 못해 걸려 넘어진 거죠."
"저런! 루씨는 누군데?"
"그가 키우는 개예요."
"그렇군. 그런데 짐은 누구니?"
"짐은 우리 집 베이스먼트를 고치러 와요. 그는 앞니 하나가 없어요. 허리에 벨트를 찼는데 거기에는 망치도 달려있고 드라이버도 달려 있고 줄자도 달려 있어요."
"그렇구나."
"짐이 지하에 부엌과 화장실을 만들 거래요. 그러면 렌트를 줄 수 있어요."
"오호라, 지하에 세를 내놓으려는구나."
"아빠가 말하길, 수리하는데 돈이 많이 들지만 렌트를 주면 장기적으로 봤을 땐(In the long run) 이득이래요."
'장기적으로 봤을 때'란 표현이 다섯 살짜리 아이 입에서 나오면 웃지 않을 수 없다. 아빠가 사용한 표현을 그대로 옮긴 것일 테다. 문장 앞머리마다 짐이 말하길 (Jim said,) 아빠가 말하길 (Dad said,)을 꼭 붙인다. 누가 한 말인지 절대 헷갈리는 법이 없다.
함께 앉은 네 명의 또래 친구들 또한 케일럼의 얘기를 경청한다.
"그나저나 부인의 팔이 걱정이군. 부러졌다니 무척 아팠을 거야."
내가 한마디 덧붙이자 이번엔 모두 숙연한 표정이 된다. 진지하게 듣고 있는 고만고만한 작은 얼굴들을 보니 웃음이 비어져 나온다.
오늘 케일럼을 통해 미스 미아와 네 명의 꼬마가 전해 들은 소식은 다음과 같다.
케일럼의 집 지하는 수리 중이다.
부엌과 화장실을 만들어 세를 내놓을 예정이다.
수리공의 이름은 짐이다.
그는 앞니가 하나 없다.
루씨라는 개를 키우고 있고 부인은 지난 토요일 팔이 부러졌다.
짐과 그의 부인은, 케일럼의 부모는,
우리가 이 같은 방대한 정보를 알고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모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