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구멍에 미세한 이물감이 들었다. 그간의 경험으로 미뤄 봤을 때 이 증세는 곧 아플 것을 알리는 전조였다. 미세한 증상일지라도 당장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삼일 앓고 끝날 것이냐 일주일 넘게 앓을 것이냐는 초동 대응을 어떻게 하는지에 달려 있었다. 곧바로 삼천 밀리그램의 고용량 비타민씨와 면역에 좋다는 프로폴리스 캡슐을 입안에 털어 넣는다. 잠자리에 들기 전 헛구역질이 나올 정도로 목구멍 깊숙이 소금물로 가글을 한다. 펄펄 끓는 물을 큰 머그잔에 채우고 유칼립투스 오일 몇 방울을 떨어뜨린 뒤 증기를 코로 들이마신다. 평소 잠자리에 드는 시간보다 훨씬 이르지만 침대에 눕는다. 최소 일곱 시간 이상의 숙면에 내일 컨디션의 사활이 달려있다 해도 무방하다.
다음날 눈을 떴을 때 목의 이물감은 확연히 나아져있었다. 어제 쏟아부은 노력들을 떠올리며 승리감에 휩싸인다.
승리의 전세는 오래가지 못했다. 수요일과 목요일, 이틀간 직장은 혼돈 그 자체였다. 동료교사 하나가 휴가를 가는 바람에 이제 막 일을 시작한 새내기 교사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나름 열심히 하려는 의지는 보였으나 아직 업무에 서툰 것은 어쩔 수 없다. 몇몇은 결석하기 마련인데 이상하게 이번 주는 그런 아이조차 단 한 명이 없다. 일단 아이들이 스무 명이 넘으면 교실의 공기는 달라진다. 어느 때보다 소란스럽고 흥분도가 치솟는다. 사건과 사고가 배로 늘어난다. 이틀에 걸쳐 아이들은 평소에 비해 너무 많은 요구를 해댔다. 여기저기서 미스 미아! 를 남발하는 바람에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이다. 거기에 더해 새로 온 교사의 "이건 어떡해야 하나요?", "이건 어디다 둘까요?" 같은 질문 공세에 일일이 답변을 해야 했고 그녀가 헤맬 때마다 달려가 도움의 손길을 뻗어야 했다.
이 사태는 다음날인 목요일까지 연장되고 있었다. 단순한 목의 이물감으로 끝나지 않을 큰 재앙이 직전에 다가왔음을 직감한다. 간신히 버텨주던 면역시스템은 과로와 스트레스의 합동공세에 그대로 함락당한 게 틀림없다. 금요일은 앞선 이틀보다는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하루를 보냈지만 몸과 마음은 이미 너덜너덜해진 뒤다. 집에 돌아와 며칠간 붙들고 있던 긴장의 끈을 내려놓는다. 기다렸다는 듯이 열이 오르고 기침이 터져 나온다. 머리는 지끈거린다. 마음 편히 아플 수 있는 시간은 주말 이틀뿐이다. 침대에 누워 앞으로의 상황을 가늠해 본다. 처음 증상이 시작된 건 월요일이었으니 병증은 사실 일주일째 지속되는 중이었다. 그렇다면 이번 주말에 정점을 찍을 것이다. 돌아오는 월요일이 걱정되기 시작한다. 지금이라도 병가를 낼까 고민이 된다. 휴가 중인 다른 교사는 다음 주 중반까지 돌아오지 않을 예정이다. 새내기 교사의 허술한 일처리 방식이 떠오른다. 입원이 필요하다는 의사소견서가 없는 이상 병가신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체념하며 돌아눕는다. 완벽한 회복은 아닐지라도 정점만 넘긴다면 골골대는 상태로나마 일은 나갈 수 있겠지. 여기까지 생각이 닿자 화가 치밀어 오른다.
캐나다는 노동환경이 좋다는 평가를 받지만 어린이 집 교사의 사정은 그렇지 않다. 아프다고 마음대로 휴가를 낼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안 그래도 인력난에 허덕이는 판국이니 누군가 갑자기 자리를 비웠을 때 자리를 메꿔줄 대체 인력이 있을 리 만무하다. 병가는 엄연히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이므로 아무렴 상관없다는 태도로 병가를 던진다 한들 누구도 뭐라 할 수는 없다. 다만 나란 인간은 관습을 타파할 만큼 용맹하지도, 주변의 시선이나 평판 따위 신경 쓰지 않을 만큼 대범하지도 않다. 병가를 요청할 때마다 마주하는 상사의 곤란한 표정, 골치 아프다는 반응을 아무렇지 않게 넘겨버릴 수도 없다. 괜스레 죄책감을 느끼고 이래저래 마음만 시끄러울 뿐이다. 병이 낫기는커녕 스트레스받아서 증세만 악화될 게 뻔하다.
나란 인간은 그저 노동을 제공하는 도구로서만 기능하는 것 같다. 하는 것 같다가 아니라 사실이 그렇다. 사회에 쓸모가 있으려면 노동을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아파서도 안 되는 것이다. 이럴 때면 무엇을 위해 사는가에 대한 근원적 회의감이 든다.
생각의 방향이 부정적으로 치닫는다. 그럼 안되지, 좋게 좋게 생각해야지 싶다가도 극심한 피로감이 든다. 긍정적으로 사고하려는 노력이 어느 때는 폭력으로 느껴진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생각하고 싶은 대로 놔두고 싶다.
생각하고 싶은 대로 놔두자면 정말 솔직해져야 한다. 앞에 쓴 문장들은 가증스러울 정도로 정제된 것이다. 날것의 속마음을 그대로 옮긴다면 다음과 같다.
아파 뒤지겠는데 이런 순간까지 긍정회로 돌리면서 정신승리하고 싶냐? 돈 벌어먹기 더럽게 힘드네. 다 때려치우고 싶다. 씨팔.
아픈 게 낫고 제정신이 돌아온다면 윗 문단은 삭제당할 것이다. 그간의 경험에 미루어 봤을 때 미래의 나란 인간이 할 행동은 예측가능하다. 그럴 거면 지금 삭제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내가 팽팽히 대립한다. 이 또한 끝없는 자기 검열의 연장이 아니던가. 반발심이 든다. 무엇을 위한 반항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문단은 삭제하지 않고 이대로 내버려 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