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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루 Aug 20. 2022

캐나다 커뮤니티 칼리지 유아교육과에 입학하다(2)

열한 번째 이야기

학교 수업은 지금 돌아보면 아주 어려운 내용이 아니었다. 과목 자체가 대단한 학습 능력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었고 평균 60점만 넘으면 수료가 되어 자격증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높은 성적을 받기 위해 아등바등할 필요도 없었다. 만약 한국어로 이 과정을 공부했다면 골치 아플 이유가 전혀 없었겠지만 문제는 이 수업을 영어로 따라가야 하는 것이었다. 내 발목을 잡는 것은 언제나 영어였다. 과제는 생각보다 많아서 리포트 작성과 실제 현장에서 사용할 수업자료를 만드는 숙제가 끝도 없이 이어졌다. 수업은 대부분 발표 위주였기 때문에 학생들은 매일 칠판 앞으로 나가 준비해 온 발표자료를 읽거나 PPT로 설명하거나 다양한 실제 상황들을 시연해야 했다. 나는 이 업무를 모두 영어로 따라가는 일이 무척이나 힘에 겨웠다. 시험공부를 할 때는 교과서의 내용을 일일이 해석하기 버거웠으므로 한국의 동생에게 부탁해 같은 책의 한국어 번역본을 보내달라 부탁을 했다. 그렇게 한국에서 받은 책과 원어로 된 책을 함께 펼쳐놓고 비교해 가며 겨우겨우 책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고 시험공부를 할 수 있었다.







가장 고역이었던 과목은 Child Observation(아동 관찰)이었다. 이 수업은 실제 데이케어나 프리스쿨을 방문해 지정된 연령대 아이의 행동과 발달 상황을 관찰하여 일지를 작성하는 것이 주요 과제였다. 문제는 각 학생이 방문할 장소를 학교가 정해주지 않았고 자력으로 찾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강사 S는 수업 중 한 시간 정도의 여유를 주고 그 시간 동안 각자 구글맵을 열고 원하는 지역의 데이케어와 프리스쿨을 검색해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아동 관찰을 위해 그곳을 방문해도 되는지 허락을 받아내라고 했다. 평상시에도 영어에 대한 두려움이 컸지만 전화를 통해 들려오는 영어는 더 알아들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이 일은 정말 피하고만 싶었다. 그런데다 거절의 답변이라도 들으면 그것이 꼭 방문 목적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부족한 영어 실력 탓인 것 같아 더 의기소침해지곤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렇게 생각할 일이 아닌 것이 ECE 수료 과정에서 이 수업은 필수였기 때문에 센터의 입장에서 이런 문의를 받기란 비교적 흔한 일이었고 현직 교사들도 학생 시절 똑같은 과목을 수료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학생이 자신의 반 아이를 관찰하러 오는 일에 대한 거부감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나는 거절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영어로 말하고 알아들어야 한다는 중압감 때문에 이 과목에 대해 필요 이상의 스트레스를 받았다.







학과는 주간과 야간으로 나뉘어 운영되고 있었다. 오전에는 Early childhood education, 줄여서 ECE를 위한 것이었고 저녁에는 그보다 한 단계 레벨이 높은 자격증을 따기 위한 Infant/Toddler Education, 줄여서 I/T코스의 수업이 진행되었다. ECE가 3세에서 5세까지의 아이들을 돌볼 수 있다면, I/T는 생후 6개월에서 2세까지의 유아 또한 돌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그러니까 I/T의 경우는 맡을 수 있는 아동의 연령대가 훨씬 넓었다. I/T 수업을 듣는 학생은 이미 ECE 자격증을 취득한 상태이기 때문에 데이케어나 프리스쿨에서 일하고 있는 현직 교사들이 많았다. 그렇게 낮에 일을 하는 학생들을 위해 이 코스는 야간에 편성되어 있었다. 자격증을 따기까지 공부해야 하는 기간이 길어지고 학비가 추가로 들었으며 기저귀를 가는 등 손이 더 많이 가는 유아를 돌봐야 한다는 이유 때문에 I/T 자격증을 따려는 사람은 ECE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지 않았다. ECE 자체도 취업이 어렵지 않았지만 I/T 자격증의 경우는 약간의 과장을 보태면 이 필드에서는 천하무적이었다.  I/T교사는 좀체 구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영어를 좀 못해도, 일이 좀 서툴러도 센터들은 앞다퉈 고용하려 했고 ECE보다 훨씬 높은 시급을 받았다. 이런 장점 때문에 I/T로 자격증을 업그레이드하려는 현직 ECE교사들이 있었던 것이다. 주간반은 아침 9시에 시작하여 오후 2시에 수업이 끝났고 야간반 수업의 경우는 오후 5시에서 10시까지였다. 수업이 끝난 뒤 과제를 하느라 학교에 늦게까지 머물 때가 가끔 있었는데 그때마다 헐레벌떡 들어오는 야간반 학생들과 마주치곤 했다. 낮 동안 일을 하고 저녁에 수업을 받으러 오는 그들 얼굴은 언제나 피로에 찌들어 있었다. 당시의 나는 그들에게서 미래의 내 모습을 겹쳐 보며 불안에 떨곤 했다. 일 년짜리 ECE 코스가 끝나면 나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낮에는 ECE로 일하고 야간에  I/T코스를 들을 계획이었다. 당시 학교 수업만 따라가기에도 급급했던 터라 어떻게 일과 학업을 병행할 수 있는지, 과연 내가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곤 했다. 하지만 그것은 일단 미래의 내가 감당해야 하는 문제였고 현재의 나는 당장 내일까지 제출해야 하는 리포트를 끝내는 게 급선무였다.






이때 했던 수많은 걱정과 근심은 확실히 불필요한 것이었다. 물론 그 뒤로도  영어 실력이 드라마틱하게 발전하는 마법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수업과 발표, 과제와 시험은 동일한 패턴으로 반복되었고 어느 정도 요령을 터득한 탓에 ECE 코스 수료 후 이어진  I/T코스와 장애아를 돌보기 위한 스페셜 니즈(Special needs) 코스에서는 비교적 수월하게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러니까 걱정했던 일 중 대부분은 실제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일들이 막상 벌어지더라도 내 능력 안에서 충분히 해결이 가능했고 그도 아니면 흐르는 시간이 저절로 해결해 주기도 했다.

어느덧 일 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나는 첫 번째 코스를 성공적으로 수료하고 ECE 자격증도 취득할 수 있었다. 낙엽이 거리를 덮었던 쓸쓸한 가을과 종일 비 내리는 길고 긴 겨울과 꽃망울이 터지는 찰나의 봄을 지나 어느새 여름은 성큼 다가와 있었다. 여름방학이 시작되면서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선물 같은 시간이 주어졌다. 9월이 되면 I/T 과정을 수료하기 위해 다시 학교로 돌아가야 했다. 그리고 이제 슬슬 구직을 생각해야 했다. 원래의 계획대로 야간에 학교를 다니고 주간에는 교사로 일을 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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