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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루 Aug 26. 2022

교장실에는 푸치라는 개가 있었다.

열두 번째 이야기

교장인 코밀라는 키가 크고 골격이 다부진 이탈리아계 여자였다. 그녀는 학생들이 구사하는 서툰 영어도 찰떡같이 잘 알아듣는 데다 말을 할 때도 또박또박 발음하고 어떤 복잡한 사항에 대해서도 쉬운 단어나 단순한 문장으로 풀어서 설명하는 것에 이골이 나 있었다. 영어를 알아듣기란 언제나 고역이었지만 덕분에 코밀라가 하는 말은 비교적 이해하기 쉬웠다. 그녀의 사무실은 좁은 복도가 끝나는 지점에 코너를 끼고 위치해 있었는데 전면이 유리였기 때문에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구조였다. 그곳은 문턱이 닳도록 많은 사람이 드나들었다. 행정 직원과 강사들이 자신의 업무를 보기 위해 들르기도 했지만 학생들 또한 수업과 관련하여 어떤 도움이 필요하거나 동급생 누군가와 다투거나 새로 바뀐 강사의 강의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하는 다양한 이슈를 가지고 그곳을 찾았다. 특히 재학생의 과반을 차지하는 중국 학생들은 학교에 무언가 관철시킬 사안이 있으면 단체로 결집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들이 여러 명씩 떼를 지어 몰려갈 때면 교장실은 마치 적군에게 함락당한 성처럼 보였고 교장 코밀라는 성난 시위대에게 둘러싸여 있는 성주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그러니까 코밀라의 주된 업무는 학생들의 그 지난한 불만 사항을 참을성 있게 경청한 뒤 문제를 해결하고 갈등을 중재하는 일이었다. 나는 교장이라는 자리에 대해 대단히 고된 직종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골치 아픈 일을 회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책임지는 코밀라의 모습이 진짜 어른이라면 마땅히 가져야 할 성품의 표본 같아 보여 마음 한구석 그녀에 대한 존경심이 솟아나기도 했다.

교장실의 문은 이렇듯 누구에게라도 항시 열려 있었지만 방문객은 끊이지 않았고 바쁘게 돌아갔기 때문에 아무 때나 무턱대고 들어갈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러니까 그곳을 방문하려면 합당한 구실이 있어야 했고 그런 게 없다면 사무실 안에 아무도 없는 찰나를 노려야 했다. 코밀라가 자리를 비우면 방문객도 없었고 그러면 그곳은 마침내 텅 빈 채로 한가해졌다. 나는 매번 코밀라를 찾아갈 핑곗거리를 만들 수 없었으므로 그녀가 사무실을 비우는 순간을 호시탐탐 노렸다.


그곳에는 푸치라는 개가 있었다.







푸치는 코밀라가 키우는 열다섯 살 먹은 작고 늙은 잡종개였다. 개는 본래의 색깔이 어땠는지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희뿌옇게 세어버린 털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도 과거에는 풍성했을 긴 털은 이제는 듬성듬성할 뿐이었고 윤기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이 부스스한 채로 사방으로 뻗어 있었다. 나는 그 털을 볼 때마다 민들레 홀씨가 떠올랐는데 푸치의 늙은 몸뚱이는 너무도 가볍고 연약했기 때문에 바람이 불면 부슬부슬한 그 털과 함께 하늘로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았다. 코밀라는 자신의 개가 너무 나이가 많아 언제 세상을 뜰지 모르기 때문에 혼자 집에 둘 수 없다는 이유로 푸치를 데리고 학교로 출퇴근을 했다. 개는 교장실 안 코밀라의 책상 옆에 놓인 방석 위에 종일 엎드려 있었다. 이 개는 노쇠하여 만사가 귀찮은 탓에 대체적으로 무심하고 덤덤하게 굴었지만 본래의 성격은 다정했을 것이 분명했다. 먼저 애정을 갈구하는 행동은 하지 않았지만 누군가 먼저 다가가 관심을 보이면 그것을 무시하거나 피하는 법은 없었고 자신의 처지에서 최선을 다한 호응을 보여주곤 했다. 그것은 조건 반사적인 반응에 가까운 것으로 평생에 걸쳐 몸에 밴 일종의 매너 같았다. 엎드려 있는 개에게 다가가 그 야윈 등허리에 가만히 손을 얹으면 개는 미동도 없이 방석 위에 엎드려 있다가도 천천히 고개를 들어 감고 있던 눈을 게슴츠레 뜬 채 올려다보곤 했다. 그런 개의 얼굴은 마치 이제 막 깊은 잠에서 깬 듯 나른했고 고요한 명상을 끝낸 이처럼 평안해 보였다. 개는 잠시 동안 코를 벌름거리다가 기지개를 켜듯 몸을 길게 뻗어서 앞발을 내 발등에 올려두고 꼬리를 살랑댔다. 그리고는 느릿느릿 자리에서 일어난 뒤 힘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하찮은 앞발질로 누울 자리를 다듬고 그 움푹 파인 공간에 자신의 몸을 동그랗게 말아 뉘었다. 자신의 얼굴을 반대쪽으로 가게하고 상대방에게는 등을 지는 식으로 그렇게 자리 잡으면 다시 눈을 감았지만 기척이 있는 쪽으로 귀를 쫑긋하게 세운 것으로 보아 잠을 자려는 것은 아니고 내가 자리를 뜨는지를 살피기 위한 것 같아 보였다. 업무가 끝났으니 이제 그만 가보라는 식의 그 태도는 꽤 단호하고 확고했으므로 나는 개와 더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을 접고 순순히 물러나야만 했다. 더불어 늙은 개의 그 군더더기 없이 명확한 의사표현 방식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학과를 책임지는 단 한 명의 강사 S가 휴가를 내거나 아파서 결근을 하면 대체할 인력이 없었기 때문에 코밀라가 수업을 진행할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럴 때면 푸치도 그녀를 따라 교실에 들어왔다. 개는 교장실에서와는 달리 교실 안에서는 누워만 있지 않고 곧잘 돌아다니고는 했다.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늙은 개는 책상과 의자 사이를 걸어 다니며 여기저기 냄새를 맡거나 학생들의 신발 코를 툭툭 건드리기도 하고 바닥에 오줌을 찍 싸기도 했다.


자박자박.

 걸을 때면 바닥과 개의 발톱이 닿는 작은 마찰음이 들렸다.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면 어김없이 내 발목 어딘가에도 푸치의 작은 코가 닿았다. 그러면 나는 책상 아래로 잽싸게 손을 뻗어 개의 몸을 쓰다듬었는데 반가운 내 마음과 달리 늙은 개는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그 손길을 빠져나가 다른 곳으로 걸음을 옮기곤 했다. 나는 코밀라가 수업을 하는 날을 은근히 기다리고는 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그녀의 늙은 개를 몰래 구경하고 있노라면 길고 긴 수업 시간이 훨씬 덜 지루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푸치에게 개인적인 환심을 사기 위해 간식을 따로 챙겨가기도 했다. 늙은 개는 이빨이 얼마 남지 않아 잘 씹지도 못하는 처지였음에도 입맛은 여전히 좋은지 내가 주는 간식을 꿀떡꿀떡 잘 받아먹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간식을 다 받아먹고 나면 볼일 다 보았다는 식으로 가차 없이 뒤돌아 자기 갈길을 갔다. 나는 학교에서 따로 간식을 챙겨주는 유일한 학생이었지만 늙은 개는 그런 것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고 남보다 나를 더 따르거나 별 다르게 반기는 법도 없었다. 보통의 개들이 간식 앞에서 보이는 다소 비굴하게 갈구하는 태도와는 달리 보상 따위에 연연하지 않는 초연함과 여유가 느껴졌고 그 모습은 마치 욕심이나 집착을 내려놓은 현자와 닮은 구석이 있었다.





두 달간의 긴 여름방학이 끝나고 다시 학교로 돌아갔을 때 나는 어떤 서류에 사인을 하라는 부름을 받고 코밀라의 사무실을 찾았다. 나는 서류에 사인을 하면서도 눈으로는 푸치를 찾았는데 책상 옆 방석은 이미 치워져 있었고 개는 보이지 않았다.


"푸치는 지난달에 세상을 떠났어."

코밀라가 말했다.


"뭐라고?"

나는 잠시 내 귀를 의심하며 되물었다.


"죽기 몇 주 전부터 먹기를 거부하기 시작했는데 수의사가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하더군. 다행히 오랫동안 고통스러워하진 않았고 내 품에 안겨 편안한 상태로 눈을 감았단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멀뚱히 서 있었다. 나는 코밀라가 자신의 개가 아무도 없는 빈집에서 혼자 죽는 것을 염려해 학교에 데리고 다닌다는 사실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한 번도 심각하게, 현실 속에서 벌어질 일이라고 염두에 둔 적이 없었다. 푸치는 동급생이나 선생과도 같은 존재여서 학교에 가면 언제나 만날 수 있다고만 생각했던 것이다.


"네가 푸치를 많이 사랑했다는 것을 알고 있단다. 나는 언제나 그것에 대해 고맙게 생각했어. 푸치도 하늘나라에서 너에게 받은 사랑을 기억할 거야."


눈물이 질금질금 나오려는 것을 최대한 참아보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한 채 눈물 줄기는 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코밀라는 자리에서 일어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사실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하는 쪽은 나였고 그것을 들어야 하는 쪽은 코밀라였다. 나는 그 와중에 코밀라에게 되려 위안을 받고 있는 이 상황이 좀 민망하게 느껴졌고 그녀에게 애도의 말을 건네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머릿속은 회로를 멈춘 기계처럼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한 채 눈물을 뚝뚝 흘리며 서 있었고 코밀라 또한 말없이 내 어깨를 토닥일 뿐이었다. 그 바람에 유리창 너머로 지나가는 학생과 직원들은 도대체 무슨 일인가 하는 의아한 표정으로 우리 둘을 쳐다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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