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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루 Aug 20. 2022

캐나다 커뮤니티 칼리지 유아교육과에 입학하다(1)

열 번째 이야기

학교는 캐나다 서부를 대표하는 대도시 중심부에 있었다. 내가 사는 곳은 그로부터 30km 떨어진 외곽 도시였다. 당시의 나는 차가 없었기 때문에 학교에 가려면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했다. 집 근처에서 버스를 타고 가다 중간에 열차로 갈아타야 하는 경로였다. 스카이 트레인이라 부르는 그 열차는 아담한 크기의 객차를 대여섯 량 연결하여 기관사 없이 무인으로 운행하는 것으로 이름대로 지하가 아닌 지상으로 다니는 것이었다. 열차를 타고 열일곱 개의 정류장을 지나면 학교가 있는 도심에 닿을 수 있었다. 내가 사는 도시에서 그곳까지 대중교통으로 매일 통학한다는 소리를 들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힘들어서 어떻게 다니느냐는 걱정 섞인 말을 하는 것이었다. 처음에 나는 주변의 그런 반응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한국에서는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해 수도권을 가로지르며 출퇴근과 통학을 하는 경우가 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스카이 트레인은 사고나 고장이 어찌나 잦은 지 도착이 지연되거나 운행 도중 멈추는 경우가 한 달에 한두 번씩은 꼭 생겼다. 그렇게 중간에 멈춘 기차 안에 영문도 모른 채 한동안 갇혀 있기도 했는데 객차 안이 사람으로 가득 찬 러시아워에 그런 일이 벌어지기라도 하면 나는 정말이지 당장 열차의 창문을 깨고 그대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했다. 버스와 스카이 트레인 모두 배차 간격이 길었고 환승은 언제나 곱절의 시간이 걸렸다. 아침 수업 시간에 맞춰 가려면 출근시간과 맞물렸기 때문에 만원 열차를 탈 수밖에 없었고 좁은 열차 안 인파 사이에서 버려진 종이 마냥 구겨진 채 버티다 마침내 목적지에 닿으면 아직 제대로 된 일과를 시작도 하기 전이었지만 진이 다 빠져버리곤 했다.







내가 입학한 학교는 사립 커뮤니티 칼리지였다. 커뮤니티 칼리지(Community collage)란 취업하기 좋은 특정 기술을 가르치거나 자격증을 취득하는 학과 위주로 구성된 2년제 단기 대학을 뜻한다.

학교는 상점이 늘어서 있는 복잡한 길가에 작은 간판을 달고 있었다. 바로 옆 피자 가게의 문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이는 학교 출입문 앞에 섰을 때 나는 잠시 당황스러웠다. 그것은 내가 상상하던 학교의 모습이 전혀 아니었다. 이곳이 제대로 된 학교가 맞을까 라는 의구심이 밀려들었다. 나는 그렇게 잠시 앞에서 멈칫거렸지만 어쨌거나 이제 와 집으로 돌아갈 수도, 입학을 취소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별다른 대안이 없었던 나는 그렇게 의심을 뒤로한 채 초라하고 작은 문을 열고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 하지만 막상 안에 들어서자 예상과는 달리 시야가 확 트일 정도로 넓고 밝은 공간이 펼쳐졌다. 안내 데스크에는 두명의 학교 직원이 신입생들을 안내하고 있었다. 안내 데스크 뒤편으로 이어지는 짧은 복도를 따라 두어 개의 사무실을 지나면 둥근 형태의 넓은 로비가 눈에 들어왔다. 로비는 휴게공간으로 꾸며져 있었는데 크고 작은 테이블과 의자들이 놓여 있었고 한쪽 구석에 위치한 작은 싱크대가 딸린 부엌에는 누구든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정수기와 전자레인지, 전기포트 등이 구비되어 있었다. 여러 개의 교실이 이 로비를 가운데에 두고 가장자리를 빙 둘러싸는 형태로 자리잡고 있었다. 신입생들은 첫 수업에 들어가기 앞서 교장실에 들러 노트북 한 대 씩을 지급받았다. 졸업할 때 반납하는 조건으로 학기 동안 학생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학교 측에서 대여해 주는 것이었다. 학교로부터 받은 노트북은 내가 가지고 있던 보다 훨씬 최신식이었고 수업과 과제를 하는 데 필요한 모든 프로그램들이 이미 세팅되어 있었기 때문에 학업에 아주 유용했다.사무실에는 다양한 국적의 행정직원이 상주해 있었고 그들 중에는 한국인도 있어서 학교와 관련한 업무를 보는 데 있어 의사소통이 어려워 곤란을 겪을 일은 없었다. 그러니까 학교는 초반의 걱정과는 다르게 다행스럽게도 제대로 된 곳이 맞았다.







Early Childhood Education. 유아교육과의 영어 명칭은 이러했다. 동급생들은 서른 명 남짓이었다. 중국인이 가장 많았고 그다음이 인도인, 한국과 일본에서 건너온 학생이 대여섯 명, 그리고 이란, 필리핀, 스페인, 피지에서 온 학생이 각 한 명씩이었다. 학교는 학기 별로 등록이 가능했기 때문에 모두가 신입생은 아니었고 이미 전 학기에 입학하여 두 번째 학기에 접어든 학생의 수가 더 많았다. 신입생은 나를 포함하여 서너 명 정도였다. 영어가 능숙한 학생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학생들도 더러 있었다. 흥미롭게도 영어를 못하는 학생끼리의 의사소통은 오히려 수월했다. 쉬운 단어와 직관적인 표현을 사용할 뿐이었고 원어민처럼 예의를 차리거나 격식을 갖추기 위해 빙빙 돌려 말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







유아교육과의 수업을 책임지는 단 한 명의 강사였던 S는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20대 후반의 젊은 아랍계 여자였다. 몸집은 자그마하고 가냘펐지만 커다란 눈은 아주 총명했으며 똑 부러지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녀는 이미 다양한 문화와 배경을 가진 학생들을 상대로 수업을 진행한 경험이 많았기 때문에 그들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학생의 과반을 차지하는 중국 학생들을 주축으로 학급에는 일종의 우등생 그룹과 열등생 그룹이 나누어져 있었다. 이 우등 그룹의 학생들은 그룹과제를 할 때마다 항상 자기들끼리 팀을 꾸리곤 했다. 영어를 못하고 학업 수행 능력이 뒤떨어지는 특정 학생들을 언제나 배제시켰고 PPT를 잘 다루거나 영어를 잘하는, 과제를 할 때 이득이 되는 동급생만을 골라 자신들의 팀으로 데려갔다. 그에 비해 소수에 불과한 열등생 그룹으로 말할 것 같으면 우등 그룹으로부터 배척받는 가엾은 피해자라고 좋게 포장해 주고 싶지만 솔직히 그것은 아니었고 일종의 빌런 같은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과제를 분담하면 온갖 핑곗거리를 대며 맡은 분량을 제대로 하지 않는 등 대체적으로 불성실했고 다른 팀원에게 피해를 주는 것에도 별다른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 약삭빠른 우등 그룹의 중국인들은 과제의 특성에 따라 필요하다 판단되면 다른 국적의 동급생도 끌어들였다. 언제나 선택을 받는 학생 중 상식이 있는 몇몇 자기 선에서 거절하고 다른 학생들과도 팀을 꾸렸지만 우등 그룹에 들어가는 편이 과제를 할 때 훨씬 수월하고 점수도 잘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은 그들에게 선택받기를 은근히 바라곤 했다. 이것은 알게 모르게 학급 내 일종의 계급을 만들어냈다. 나와 같은 어중간한 학생들은 그들에게 선택을 받지도 못했지만 그룹과제를 할 때마다 아무도 함께 하고 싶어 하지 않 빌런 같은 학생들을 매번 떠맡는 형국이 되었다. 영어실력도 부족하고 PPT를 화려하게 만드는 스킬도 없었던 이 어중간한 학생들은 자기가 맡은 일은 그럭저럭 해낼 수 있었지만 뒤떨어지는 동급생까지 끌어줄 여력은 전혀 없었다. 나는 그룹과제 때마다 이처럼 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것이 어딘지 매우 부당하다고 느꼈지만 만사에 자신감이 떨어져 있던 탓에 우등 그룹에게 선택받지 못한 스스로의 무능을 탓할 뿐이었다. 눈치 빠른 강사 S는 얼마 안가 학급 내 이런 분위기를 감지해 냈다. 그동안 팀 구성은 전적으로 학생들끼리 알아서 하고 있었지만 S가 이것을 알아차린 뒤로는 잘하는 학생과 못하는 학생을 적절히 혼합시켜 자신이 임의로 그룹을 정해 주기 시작했다. 우등 그룹은 원래 했던 방식대로 자의로 팀을 꾸리고 싶다고 주장하며 크게 반발했지만 S는 단호하게 이를 묵살했다. 그녀의 이러한 중재 덕분에 이후 그룹 과제를 할 때마다 받는 스트레스에서 어느 정도 해방될 수 있었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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