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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루 Sep 13. 2022

같은 이름을 가진 아이들이 많으면 생기는 일

열네 번째 이야기

어린이 집에는 연령별로 구분된 총 일곱 개의 교실이 있었다. 24개월 미만의 유아를 위한 인펀트(infant) 반과 24개월에서 36개월 사이의 아동을 위한 토들러(Toddler) 반이 각 두 개씩 모두 네 개였고 3세, 4세, 5세 아이들을 위한 반이 각 한 개 씩이었다. '테일러(Taylor)'는 여자아이 이름으로 꽤 인기가 있는 모양인지 한 교실 걸러 그 이름을 가진 아이들이 있었다. 같은 이름을 가진 아이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교사와 교직원들은 그들을 구별해서 불러야 할 필요가 있었다. 생후 24개월에 토들러 반에 입학하여 이제는 5세 반으로 진급한 최초의 테일러만이 유일하게 아무런 별칭이 붙지 않았다. 하지만 그 최초의 테일러 뒤로 해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테일러가 입학했다. 같은 나이의 테일러 둘이 동시에 입학하기도 했는데 그 바람에 3세 반에는 두 명의 테일러가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교사들은 이 둘을 생일이 빠른 순으로 각각 테일러 A와 테일러 B라고 불렀다.

내가 담임교사로 있던 토들러 반에도 테일러가 있었다. 아이는 마리(Marie)라는 미들네임(middle name, 성과 이름 사이에 쓰는 가운데 이름)을 가진 덕분에 테일러 마리로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인펀트 반에 이제 막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사랑스러운 아기 테일러가 들어온 해에 이르러서 센터에는 모두 다섯 명의 테일러가 있게 되었다.


새로 들어온 아기 테일러는 그대로 베이비 테일러로 불리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 베이비 테일러는 어느덧 인펀트 반을 졸업하고 토들러 반으로 진급하게 되었지만 한동안은 계속 베이비 테일러로 불렸다. 센터 내에서 그렇게 부르는 것이 관습이 된 데다 그 아이 이후로 인펀트 반에 테일러라는 이름을 가진 아기는 더 이상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굳이 호칭을 바꿔 부를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장이 이 호칭에 대한 제동을 걸었는데 성장하는 아이에게 계속해서 베이비, 그러니까 아기라는 호칭을 붙이는 것은 교육적인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로 인해 이제는 더 이상 '아기'가 아닌 이 베이비 테일러를 앞으로 어떻게 부를 것인가 라는 주제는 한 달에 한 번씩 열리는 교직원 전체 미팅에 안건으로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교사와 교직원들은(주방에서 일하는 셰프까지 포함하여) 이렇게까지 진지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 안건을 두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테일러 A와 B를 이어 테일러 C라고 부르자는 의견의 경우에는 대다수로부터 비난에 가까운 반응을 얻으며 그대로 묵살되었다. 아이의 라스트 네임(last name), 그러니까 성(姓)을 붙여 부르자는 의견도 나왔지만 로만스키(Romanski)라는 그녀의 폴란드식 라스트 네임은 나이 어린 동급생들이 부르기에는 다소 길고 어렵다는 반대 의견이 나왔다. 그러다 한 교사가 5세 반의 최초의 테일러가 이제 어린이 집을 완전히 졸업하여 나갔으므로 베이비 테일러를 별다른 호칭 없이 그냥 테일러로 불러도 되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이유가 일면 타당하였고 딱히 다른 대안이 떠오르지도 않았기 때문에 모두 이 의견에 동의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좋아요. 그럼 그냥 테일러라고 부르기로 하지요." 교장은 앞으로 센터 내에서 아이를 베이비 테일러라고 부르는 일은 없도록 하라는 당부의 말도 덧붙였다. 베이비 테일러를 가장 오랫동안 돌봐왔던 인펀트 반의 교사들은 이 결정이 당연한 것임을 알면서도 섭섭함을 표현했다.

"My 'Baby Taylor' should be just 'Baby Taylor'(우리 베이비 테일러는 언제까지나 베이비 테일러야 한다고)!"

다른 교사들도 비슷한 마음이었는데 '베이비 테일러'는 다갈색 곱슬머리에 토실토실한 붉은 뺨을 가진 그 아이를 칭하는 고유명사나 마찬가지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후에 베이비 테일러는 처음의 결정대로 '테일러'로 불리지는 않았다. 그냥 테일러라고 하면 어찌 된 노릇인지 모든 사람들이 "그러니까 어느 테일러를 말하는 거야?"라고 되물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결국 베이비 테일러는 아이의 성(姓)을 붙여 테일러 로만스키(Taylor Romanski)로 불리게 되었다. 여전히 기저귀를 떼지 못한 천진한 두 살 배기에 불과했던 베이비 테일러는 어느 날부터 교사들이 일제히 자신을 '테일러 로만스키'라는 생소한 호칭으로 부르기 시작하자 어리둥절할 따름이었다. 담임교사가 아이를 붙들고 "너는 이제 베이비 테일러가 아니야. 왜냐하면 너는 더 이상 베이비(baby)가 아니고 빅걸(big girl)이기 때문이지. 선생님들은 이제부터 너를 테일러 로만스키라고 부를 거야. 로만스키는 네 패밀리 네임(family name)이란다."라고 자세히 설명을 해 주었지만 베이비 테일러가 자신의 새로운 호칭에 익숙해질 때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한동안 아이는 "테일러 로만스키!"라고 부르면 자신을 부르는 것인지 알아차리지 못한 채 딴청을 부렸고 "베이비 테일러!"라는 소리에는 어김없이 뒤를 돌아보았다.


두 명의 테일러가 있는 3세 반에서도 작은 혼란이 벌어지고는 했다.

"이 물병은 누구 것이니?"

교사의 질문에 몇몇 동급생들이 "테일러 것이에요."라고 답하면 교사는 의례, "어떤 테일러?(Which Taylor?)"라고 되물었고 그제야 아이들은 "테일러 A요."라고 고쳐 말하곤 했다. 이 교실에서는 테일러와 관련해서는 "어떤 테일러?(Which Taylor?)"라는 물음이 항상 따라붙었다.


"테일러 마리는 그냥 테일러라고 불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미들네임인 마리(Marie)를 붙여 부르던 또 다른 테일러의 조부모는 어느 날 담임교사였던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 주었다.

"오랜만에 만난 사촌들이 "테일러야"라고 부르니까 아이가 영 대답을 하지 않는 거예요. 왜 대답을 하지 않느냐고 물으니까 글쎄 "나는 테일러가 아니야. 테일러 마리야."라고 하더군요."

나는 그 이야기가 우스워 하하 웃으며 "아무래도 학교에서는 모두 그녀를 테일러 마리라고 부르고 있으니까요. 아이에게는 그쪽이 더 익숙한 게지요."라고 응수했다.

"우리도 테일러 마리라고 부르는 쪽이 좋답니다. 더 유니크(unique, 독특한)하게 들리잖아요."

그 바람에 아이는 언젠가부터 집에서도 테일러 마리로 불리고 있다고 했다.


이렇듯 학부모들도 각자의 테일러가 센터에서 어떤 호칭으로 불리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센터에 전화를 걸어 출결 여부를 알리거나 무언가를 문의할 때마다 "저는 테일러 A의 아빠인데요."라는 식으로 운을 떼거나 "어떤 테일러를 말하는 거죠?"라는 교사나 교직원의 질문에 "테일러 B요." 혹은 "베이비 테일러 말입니다."와 같은 식으로 답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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