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모루 Sep 04. 2022

캐나다 어린이집 교사로 일을 시작하다

열세 번째 이야기

새 학기부터 야간에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자 낮 동안은 갑자기 할 일이 없어진 듯 한가하게 느껴졌다. 학교는 오후 5시에나 시작했다. 전부터 계획했던 대로 나는 낮에 일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고 며칠 째 구직 사이트를 뒤지고 있었다. 나는 이제 막 자격증을 딴 초보 교사였고 밤에는 여전히 학교에 가야 하는 학생이기도 했다. 일과 학업을 병행하면서 번 아웃되지 않으려면 아무래도 짧은 시간 일하는 파트 파임으로 일을 시작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 강사 S가 알려준 구직 사이트에 들어가 검색을 하자 보육교사를 찾는 구인광고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대부분은 풀타임으로 일하는 정규직을 채용하는 광고들이었고 파트타임 교사를 구하는 곳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다. 거기에 더해 집에서 출퇴근하기에 너무 멀지 않은 지역 위주로 찾다 보니 선택의 폭은 더욱 좁아졌다. 그러는 중에 15km 정도 떨어진 옆 도시의 한 어린이 집에서 파트타임 보조교사를 구인한다는 광고를 발견했다. 구글맵으로 검색해 보니 내가 사는 곳에서 차로 20분 남짓 걸리는 위치였다. 센터의 이름이 낯이 익었는데 그곳은 캐나다 전역에서 기업형 프랜차이즈로 운영되는 사립 어린이 집이었다. 학교에서 들은 정보에 의하면 그곳은 놀이가 아닌 학습 위주의 독자적인 커리큘럼을 가지고 있었고 교사들도 본사에서 진행하는 자체 교사 트레이닝 과정을 따로 거쳐야 한다고 했다. 경험도 없고 영어도 부족한 내가 일하기에는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곳이었다. 하지만 위치가 출퇴근하기 나쁘지 않았고 파트타임 보조교사 포지션이라면 막중한 책임이 주어지는 업무는 없을 것으로 판단되었다. 또 캐나다의 기업형 사립 어린이집은 어떻게 운영되는지 궁금했기 때문에 일단 이력서를 넣어보기로 했다.






그로부터 며칠 뒤 낮에 공원에서 개를 산책시키고 있는 중에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이력서를 넣은 그 어린이 집이었다. 수화기 너머 여성은 자신을 pricipal(교장) 미스 길이라고 소개했다. 나는 그 전화가 면접을 볼 시간을 잡기 위해 걸려온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학교에 가기 전 면접을 적당한 시간이 언제일지 속으로 가늠해 보았다. 하지만 미스 길은 그런 나의 예상과 달리 당장 내일부터 일하러 와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내일부터 일을 해 달라고?"

내가 재차 묻자 그녀는 그렇다고 답했다.

"우리 센터는 내일 바로 일을 시작해 줄 교사가 필요해. 네가 일할 수 있는 시간대가 어떻게 되니?"

나는 오후 5시까지는 학교를 가야 하기 때문에 오전부터 낮 2시 정도까지 일할 수 있다고 답했다.

"좋아. 그러면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일하는 걸로 하자. 내일 이곳에 올 때 네 교사 자격증과 응급처치 수료증을 가지고 와줄래? 여기 주소는 문자로 보내줄게"

얼떨떨한 와중에 그러마 답하고 전화를 끊은 뒤 나는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이렇게 간단하다고? 이렇게 이력서 한 장과 전화 한 통으로 취업이 되는 거라고?'






학교 수업 중에는 면접을 대비하는 수업이 있었다. 강사 S는 인터뷰 시 받을 수 있는 예상 질문이 빼곡하게 적힌 종이를 한 장씩 건네주고 그 질문들에 대한 답변을 작성할 시간을 주었다. 그리고 S는 학생들을 둘씩 짝을 지어 인터뷰이와 인터뷰어의 역할을 서로 번갈아 맡아 면접용 질문과 답변을 연습하게 했고 최종적으로는 팀별로 교단 앞으로 나와 서로의 인터뷰를 시연하도록 했다. 면접 자체도 떨렸지만 영어로 알아듣고 답하는 일은 더욱 까마득하게만 느껴져 나는 비록 연습일 뿐인 가짜 면접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졸였다. 더듬더듬 어설프게 연습 면접을 끝내고는 더 낙심하여 이런 영어 실력으로 과연 실전에서 질문에 제대로 된 답변을 할 수 있을지 영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싱겁게도 그렇게 연습한 면접을 실전에서 써먹을 일도 없이 덜컥 취업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몇 달 뒤 학교 코스를 완벽하게 수료하기도 전에 이 센터로부터 풀타임 정규 교사직을 제안받게 되고 졸업을 하자마자 그곳에서 정식으로 일하게 된다. 그로 인해 나는 면접뿐만 아니라 어떠한 추가적인 구직 활동도 할 필요가 없었다, 당시의 나는 이 과정을 생략한 것을 매우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면접을 준비하느라 신경 쓰거나 스트레스받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결론적으로는 내 커리어 전반에 걸쳐 득이 되는 경험은 아니었다. 나중에 이직을 하게 되었을 때 나는 현장에서 5년 넘게 일한 경력직 교사였음에도 불구하고 면접이나 체계적인 구직활동 경험이 전무했다. 제대로 된 자기소개서나 이력서를 작성해 본 적이 없었고 여러 번의 면접에서 초보자나 할 법한 실수를 연발하곤 했다. 결국 나는 구직 서류를 업데이트하여   구비하는 법을 익혀야 했고 면접에 대처하는 화법이나 자세도 다시 공부해야 했다. 이렇듯 처음부터 실수와 실패의 과정을 통과하지 않으면 절대로 배울 수 없는 것을 상당히 늦은 시점에 고스란히 거치게 된 이다. 돌이켜보면 인생은 그처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운 좋게 건너뛰거나 잘 피했다고 여겼던 생략된 모든 단계들은 생의 어느 시점에선가 한 톨의 에누리 없이 돌아오곤 했다.






전화를 받은 날 오후 학교에 갔을 때 나는 취업 소식을 강사 S에게 전하며 면접을 보지 않고 이렇게 교사를 채용하기도 하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그런 경우는 매우 드물지만 permanent(영구적인) 정교사가 아닌 파트타임 보조교사의 경우는 다소 캐주얼하게 고용하기도 한다고 설명해 주었다.

S는 수업 시작에 앞서 동급생들에게 나의 취업 소식을 알렸다. 나는 Infant/Toddler 코스를 듣는 야간반에서 제일 먼저 취업이 된 학생이었다. 사실 보육교사는 구직이 전혀 어렵지 않은 직종이었지만 학업과 일을 병행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취업을 졸업 이후로 미룬 동급생도 있었고 나와 같이 영어가 서툰 외국학생의 경우에는 실전에 바로 뛰어드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쉬는 시간이 되자 동급생 무리가 다가와 일하기로 한 조건이나 면접에 대해 물었다. 나는 별달리 해 줄 말이 없었는데 한 일이라고는 이메일로 이력서 한 장을 보낸 것과 일하러 오라는 전화 한 통을 받은 것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런 별 것 없는 취직 후기를 듣고 조금은 놀라며 "I think, you were lucky."(넌 운이 좋았구나)라고 말했다. 그리고 몇몇은 안도의 표정을 짓기도 했다. 내 경험을 통해 구직에 대해 과도하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인지한 듯싶었다. 어쨌거나 나는 그날 좀처럼 수업에 집중할 수 없었다. 당장 내일부터 직장에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약간의 기대감과 두 배 쯤되는 두려움이 뒤섞여 머릿속이 복잡했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전날의 흥분은 다소 가라앉았고 차를 타고 센터를 찾아가는 동안에는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아서인지 의외로 덤덤한 마음이었다. 얼마 안 가 신호등 너머로 내가 일하게 될 곳의 노란색 간판이 보였다. 센터는 일층 짜리 커다란 건물을 단독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뒤로 돌아가자 넓은 주차장이 펼쳐졌고 건물 뒤편은 나무로 된 높은 가벽이 빙 둘러져 있었다. 가벽 너머로 미끄럼틀과 그네의 꼭대기 부분이 삐죽 솟아있는 것으로 보아 어린이 집 내의 놀이터인 모양이었다. 차에서 내리자 가벽 너머로 어린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소리를 듣자 나는 비로소 현실에 눈을 뜬 듯 온 신경이 곤두섰고 가슴이 방망이 질 치기 시작했다. 나는 더 이상 과제를 하러 온 학생이나 실습생이 아니었다. 캐나다 보육교사로서 첫 발을 내딛는 것이었다. 나는 심호흡을 하며 출입문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이전 12화 교장실에는 푸치라는 개가 있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