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는 팟캐스트 방송과 유튜브 강의, 그리고 오디오북 듣기이다. 운동을 하거나 청소, 설거지 같은 집안일을 하면서 듣는다. 덕분에 단순 반복을 요하는 그 시간이 지루하지 않다. 블루투스로 연결되는 무선 이어폰을 쓰면서 이 활동은 훨씬 간편하고 쾌적해졌다. 내가 사용하는 무선 이어폰은 2020년에 삼성에서 출시된 모델이다. 이 이어폰의 첫 번째 모델이 2019년에 나왔으니, 완전 구닥다리 모델인 셈이다.
그렇지만 이 제품을 큰 불만 없이 사용해 왔다. 음악보다는 팟캐스트나 강의를 주로 듣기 때문에 이 정도 성능으로도 충분했다. 다른 이어폰을 사용해 본 적이 없으니 품질을 비교할 기준도 딱히 없었다.
문제는 이어폰의 사용 시간이 갈수록 늘어난 데서 비롯되었는데, 귓구멍이 아프기 시작했다. 귀가 덜 아픈 무선 이어폰을 찾아보았다. 무선 헤드셋이 눈에 들어왔다. 외이도에 삽입하는 커널형 이어폰 대신 귀 전체를 덮는 헤드셋이라면 이 불편을 해소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막상 무선 헤드셋을 사려고 보니 제조사부터 사양과 디자인까지 고려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헤드셋은 내 청취 생활에 지대한 기여를 할 물건이었으므로 신중하게 골랐다. 그리하여 보스(Bose)사에서 나온 헤드셋을 최종적으로 선택했다. 택스를 포함해 오백달러가 훌쩍 넘는 가격에 흠칫했지만 구매하기로 했다.
새 헤드셋은 마음에 쏙 들었다. 옅은 회색과 은빛이 섞인 색감이 조화로웠고 이어캡을 덮은 인조가죽은 부드러웠다. 헤드밴드는 유연하게 휘어지고 이어캡도 접히는 방식이라 콤팩트하게 보관이 가능했다. 착용감도 편안했다.
소리는 또 어떤가? 전원을 켰을 때 울리는 우웅하는 시작음에서부터 무게감 있는 진동이 느껴졌다.
인상적이었던 기능은 노이즈 캔슬링이었다. 헤드셋을 끼자마자 생활 소음은 완벽히 차단되었다. 마치 깊은 물속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주변이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헤드셋을 사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예상치 못한 복병과 맞닥뜨렸다. 노이즈 캔슬링 기능으로 인한 '비정상적 고요함'에 대응하여 감각시스템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무선 헤드셋을 끼고 있을 때면 나는 불안해서 견딜 수 없었다. 문 두드리는 소리나 물이 끓어 넘치는 소리를 놓칠까 걱정이 앞섰다.
위험한 일이 벌어졌을 때 나만 모르고 있다면 어떡하지? 누군가 집에 침입했는데 그조차 눈치채지 못한다면?
그런 걱정이 자꾸만 들었다. 집 안에서도 이럴 정도니, 바깥에서 헤드셋을 끼고 걸어 다니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나는 청각에 대해 그다지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그것이 일상생활과 내 심리에 상당히 깊숙이 관여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단순히 소리를 듣는 감각을 넘어 위험을 감지하는 일종의 레이더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 기능이 차단되니 심리적 안전망이 제거된 것처럼 느껴졌다. 헤드셋은 단박에 불안을 불러일으키는 도구로 전락해버렸다.
나 같은 만성적 불안증을 가진 인간에게 필요한 건 완벽한 노이즈캔슬링도, 고성능 헤드셋도 아니었다. 불완전하지만 나를 안심시키는, 소음이 스며드는 낡은 이어폰이었다. 새 헤드셋은 서랍 깊숙이 넣어두고 다시 오래된 무선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