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근처 대형 쇼핑몰 이층의 작은 초콜릿 가게는 로컬 초콜릿 회사가 운영하는 매장이었다. 무려 1907년에 문을 연 회사로 백 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만큼 질 좋고 맛이 뛰어난 초콜릿을 만들었다. 그곳에는 초콜릿만큼이나 인기 있는 품목이 하나 더 있었는데 다름 아닌 아이스크림이었다.
냉동 부스 안 다양한 아이스크림 중 하나를 선택하면 점원은 그것을 야구공 만하게 퍼내어 두툼하고 바삭한 와플콘 위에 얹었다. 따끈하게 녹인 초콜릿 한 국자를 그 위에 부은 다음 잘게 부순 견과류가 채워진 통 안에서 아이스크림을 한 바퀴 돌린다. 초콜릿은 차가운 아이스크림과 맞닿아 적당히 굳고 겉 부분 또한 견과류 가루로 완벽히 코팅이 된다. 원한다면 견과류는 생략할 수 있었다. 초콜릿의 풍미를 온전히 느끼기 위해서라면 그 선택도 나쁘지 않았다. 다만 이 경우는 먹다 보면 초콜릿이 흘러내려 손을 끈적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잽싸게 혀를 놀려 시럽을 걷어내는 민첩함이 필요했다. 검은 바닐라 빈이 점점이 박힌 신선하고 부드러운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진하고 풍미 강한 초콜릿의 조합은 훌륭했다.
쇼핑을 가까스로 마친 뒤 나는 완전히 지쳐있였다. 나란 인간은 쇼핑이 두 시간이 넘어가면 지독한 피로감을 느꼈다. 30도가 웃도는 한 여름이었고 주말을 맞이하여 실내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비록 에어컨이 가동되고 있었지만 천장의 대형 통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과 인파의 열기로 공기는 후덥지근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초콜릿 가게 앞에 다다랐을 땐 날씨 탓인지 아이스크림을 먹으려는 줄이 어느 때보다 길게 늘어서 있었다. 한참의 기다림이 이어지고 저혈당 증세로 정신이 거의 혼미해질 지경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주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몇 분 뒤 점원이 건네주는 아이스크림을 받아 들었을 때 사방에서 시선이 쏟아졌다.
그도 그럴 것이 봉긋하게 솟은 두 덩이의 아이스크림은 실로 엄청난 크기의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이곳의 식문화 특성상 한 그릇에 담긴 음식을 다른 사람과 함께 먹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 누군가와 나눠먹을 것을 암시하는 시늉 따위 통할리 만무했다.
'저 거대한 아이스크림을 혼자 다 먹어치운다고?'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할지는 불 보듯 뻔했다.
언제나 그랬듯 나는 균형 잡힌 삶을 살아가는 일명 '일반적' 인간이 아니었다. 게다가 지독한 정제 탄수화물 중독자였다. 아이스크림으로 간에 기별이라도 가려면 많은 양이 필요하다. 나는 일인 한스쿱이라는 타성에 젖은 그곳의 관행을 보란 듯이 깨고 당당히 두 스쿱의 아이스크림을 받아 들었다(평소라면 남의 시선을 엄청 신경 쓰지만 당시에는 설탕 금단 증상이 시작되어 주변을 의식할 만큼의 이성이 남아있지 않았다). 가게 근처에 놓인 간이 의자에 앉아 예술작품이나 다를 바 없는 영롱하고 차디 찬 결정체를 음미하기 시작했다. 아이스크림의 당분은 곧바로 중추 신경을 타고 올라가 도파민을 분출시켰다. 피로감은 사라지고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정신은 명료해졌다. 이것은 확실히 마약만큼이나 즉각적이고 절대적인 효과를 발휘했다.
아이스크림을 채 절반도 먹지 못했을 때 상황은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신체가 이상하게 반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스크림을 쥐고 있는 손가락 끝마디부터 피가 무섭게 얼어붙기 시작했다. 냉기는 혈액을 타고 전신 곳곳으로 퍼졌다. 나는 어떻게든 아이스크림에 집중하려 노력했으나 끝내 실패하고 말았다. 아이스크림 덩어리가 목구멍을 넘어갈 때마다 찬 기운은 기관지를 사정없이 강타했다. 종래에는 사레가 지독하게 들렸을 때 마냥 발작적인 기침이 터져 나왔다. 온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나는 결국 먹던 아이스크림을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어쩌면 아이스크림을 먹기 전부터 이미 몸이 좋지 않았던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외와 실내의 급격한 온도 차이와 쇼핑이 가져온 피로가 겹쳐 감기몸살이라도 시작된 지도 모를 노릇이었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서둘러 쇼핑몰 바깥으로 나왔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 뜨거운 태양빛이 곧바로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바깥은 30도가 넘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더운 기운이 밀려들어오자 몸속 한기는 즉각적으로 물러갔다. 뜨거운 햇살은 전혀 덥게 느껴지지 않았고 마치 엄마 품처럼 따뜻했다. 사시나무처럼 떨리던 몸도 차츰 진정되기 시작했고 터져 나오던 기침도 잠잠해졌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열기를 받으며 한동안 가만히 서 있었다. 단 몇 분 만에 몸은 거짓말처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멀쩡해졌다.
정확히 그날을 기점으로 전처럼 아이스크림을 마음껏 먹을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정말이지 한순간 그리 되어 버렸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아이스크림뿐만이 아니라 얼음이 들어있거나 냉장고에서 막 꺼낸 차가운 음료도 먹지 못하게 되었다. 아무리 외부온도가 높고 날씨가 덥더라도 찬 기운이 몸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몸은 이상하게 반응했다. 이가 시리고 기침이 사정없이 터져 나왔으며 손발이 급속도로 얼어붙었다.
돌이켜보면 내게도 한겨울에도 냉장고에서 꺼낸 차가운 물을, 뜨거운 커피보다는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선호했던 시기가 있었다. 당시에는 그다지 의식하지 않았는데 뒤돌아보니 십 대와 이십 대를 거쳐 삼십 대 초반에 이르기까지 얼음과 차가운 음료와 아이스크림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 시절은 먼 과거가 되어 버렸다. 몸은 체온을 조금이라도 떨어뜨리는 아주 작은 요소까지도 명명백백 거부하기 시작했다. 체온이 떨어졌을 때 그것을 다시 정상으로 끌어올리는 기능이 더 이상 전처럼 작동하지 않는다. 샐러드나 냉면 같은 음식도 전처럼 자주 먹지 못한다. 찬 음료만큼은 아니지만 차가운 음식도 일정량 먹으면 온몸에 한기가 든다. 한여름이라도 에어컨이 틀어진 곳이라면 어김없이 겉옷을 걸쳐야 한다. 외출할 때마다 가방 안에 얇은 카디건을 챙겨 나간다. 아침에 기상하자마자 마시는 물은 사계절 내내 미지근한 온도여야 한다. 몇 년 전 언제라도 더운물을 마실 수 있도록 물을 채워놓으면 알아서 끓고 일정 온도를 유지하는 대용량 전기 포트를 구입했다. 신생아 분유를 타기 위한 용도로나 쓰일 것 같은 대형 전기 포트는 이제 우리 집 주방에서는 전자레인지나 냉장고만큼이나 필수 가전제품이 되었다.
아이스크림은 정말이지 포기가 될 것 같지 않았는데 신기하게도 몸에서 거부하니 별다른 금단 증상 없이 저절로 멀리하게 되었다. 아주 자연스럽게 먹고 싶은 욕구가 줄어든 것이다.
쇼핑몰 이층의 단골 초콜릿 가게는 거의 들리지 않게 되었다. 가끔 그 앞을 지날 때마다 씁쓸한 생각이 든다. 저마다 맛있게 아이스크림을 먹는 행복한 사람들 속에 섞이지 못하는 상황이 어쩐지 좀 억울하다. 한때 진심으로 사랑했던 무언가를 자발적 선택이 아닌 순전히 타의에 의해 더 이상 사랑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느낄 법한 감정이 든다. 허탈하고 그립고 아련한, 뭐 그런 종류의 기분이다. 그깟 아이스크림이 뭐라고 이 지랄이냐 싶다가도 어쨌거나 살아가는 데 있어 큰 행복을 주던 요인 한 가지가 줄어든 것만은 사실이었다. 이유가 단지 늙어서라니... 늙는 것도 서러운데 좋아하는 아이스크림도 못 먹게 하다니 너무 하잖아! 이런 생각이 치솟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