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약 수십 개를 단숨에 삼킬 때 달라지는 것들

by 모모루

노화가 가속되면서 신체 기능은 점진적으로 저하되지만 그 와중에 발달하는 기술이 하나 있다. 알약을 한 번에 삼키는 기술이다.

음식물을 식도로 넘기기란 호흡만큼이나 자연스럽고 본능적인 행위이다. 이를 두고 굳이 기술이라고까지 할 필요가 있나 의구심이 들지도 모른다. 핵심은 '많은' 알약을 '한 번에'이다. 그러니까 단순히 알약 서너 개가 아니라 최소 열 알 이상을 단번에 꿀꺽 삼키는 수준을 말한다. 이쯤이면 누군가는 분명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알약 삼키기를 어려워하는 사람이 꽤 존재한다. 이 스킬은 목구멍을 순간적으로 유연하게 조절하여 식도는 최대로 확장시키고 기도로 통하는 입구는 수축하는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다. 매일 아침 한 움큼의 영양제를 삼키는 일은 오래된 습관이었지만 비교적 최근 깨달았다. 손바닥 위 수북이 인 알약의 부피감과 제법 묵직하기까지 한 무게가 놀라울 뿐이었고 이렇게나 단단한 물체 여러 개가 단 번에 목구멍을 통과할 수 있다는 점이 새삼 놀랍게 느껴졌다.






사실 나는 알약을 잘 삼키지 못하는 편에 속했다. 일종의 심리적인 문제였다. 약을 삼키다가 자칫 잘못하여 목구멍에 걸릴까 봐 불안했고 기도가 막혀 질식할까 무섭기도 했다. 쪼갤 수 있는 제형이면 반을 쪼개 삼켰고 여러 알을 먹어야 하는 경우에는 한 번에 한 알만 삼키는 식으로 약을 먹었다. 30대 초반부터 한두 알 먹기 시작한 영양제는 수년에 걸쳐 조금씩 늘어났고 현재에는 매일 열다섯 알 이상을 섭취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열댓 개의 알약을 일일이 나눠 삼켰다가는 시간이 한도 끝도 없이 걸리는 것은 물론이고 무언가를 열 번 이상 연속적으로 삼키는 일은 그 자체로 매우 귀찮고 번거롭기 짝이 없다. 지금껏 해오던 식으로 약을 먹을 수 없는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마흔에 들어서면서 영양제를 매일 빼먹지 않고 먹기로 마음을 먹었다. 어떤 행위를 습관으로 만들고자 한다면 단계를 최대로 단축시키고 단순화시켜 실행에 옮기는데 큰 힘을 들이지 않고 할 수 있어야 했다. 약을 삼키는 매 순간마다 긴장하며 숨을 고른다면 영양제 먹기를 일상적 습관으로 만들기는 좀처럼 쉽지 않을 터였다. 그리하여 처음에는 여러 번에 나눠먹다가 그 횟수를 차츰 줄여나가기를 연습했다. 부단한 연습 끝에 마침내 한 움큼의 알약을 입에 털어 넣고 단숨에 꿀꺽 삼킬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들은 내가 약을 먹는 광경을 목격할 때마다 "어떻게 그 많은 약을 한 번에 삼켜?"라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영양제에 매달리게 되는 이유는 자신의 몸 상태와 기분을 끌어올리는 데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체험은 예측 불가능한 임상실험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도출하는 과정과 같아서 엄청난 희열과 성취감을 가져다준다. 삼십 대 초반까지는 좋다는 영양제를 먹어도 그것이 몸에서 실제로 어떤 작용을 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먹기 전과 후가 딱히 달라지는 게 없기 때문이다.

세월이 흐르고 갖가지 병증과 신체적 불편이 출현하고 당연하다 여겼던 일상이 더 이상 당연하게 돌아가지 않게 되면 위기의식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 시점부터 운동을 시작하고 금연하거나 음주를 줄이며 건강을 신경 쓴다. 특히 몸에 좋다면 뭐든지 찾아 먹으려 든다. 그 욕구를 가장 잘 충족시켜 주는 식품이 바로 영양제이다. 실제 어떤 영양제는 플라세보효과와 같이 단순히 심리적 안정을 주는 수준을 넘어서 확실하고 강력한 효능을 보여준다. 한 달째 괴롭히던 눈꺼풀 떨림을 단 며칠 만에 잠재우거나 잘 부러지던 손톱이 반복되는 젤네일을 잘 버텨줄 만큼 단단해지는 등, 소소해 보이지만 겪어보면 절대 소소하지 않은 생활 상의 불편이 해소되면 영양제의 위력에 새삼 놀라게 된다.

일례로 얼마 전 탄수화물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저탄고지 식단을 시작했다. 이 식단을 시작하고 한 달 정도 지났을 때 극심한 명현작용, 일명 키토플루라 불리는 증상에 시달리게 되었다. 몸이 물 먹은 솜처럼 무겁고 피로감이 심했으며 머릿속이 멍하여 도통 집중할 수가 없었다. 상태는 점점 나빠져서 현기증과 두통, 메스꺼움 같은 키토 플루의 대표적인 증상이라고 할만한 모든 증세가 연달아 찾아왔다. 바뀐 식생활에 따라 몇몇 미네랄을 추가적으로 보충해야 한다는 조언을 듣고 그 길로 달려 나가 추천받은 서너 종류의 영양제를 구입했다. 약을 복용하고 삼일 정도 지나자 놀랍게도 모든 증상이 사라졌다. 이처럼 영양제가 신체에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경험을 몸소 체험하게 되면 그것이 더 이상 우습게 보이지 않는다. 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이라던가 먹으나 안 먹으나 똑같다는 소리가 쏙 들어가게 된다.






많은 알약을 한 번에 삼키기까지는 단계적 연습이 필요하다. 적은 수량으로 나눠 삼키다가 그 횟수를 순차적으로 줄여가는 것이다. 단 두 번에 걸쳐 삼키는 데 익숙해지면 한 번에 삼키기를 도전해 보아도 좋다. 일단 온몸에 힘을 빼야 한다. 특히 턱관절과 어깨 근육 쪽을 신경 써서 이완시킨다. 긴장할 때 저절로 힘이 들어가는 구간이기도 하고 실제로 전신에 힘을 뺐다고 생각해도 저 부위만큼은 긴장을 놓지 않고 있는 경우가 많다.

코로 숨을 쉬는 호흡이 중요하다. 평소에 코가 아닌 구강으로 호흡하는 습관이 있다면 특히 유의해야 한다. 코로 숨을 쉬어야 하는 이유는 공기가 흡입될 때의 느낌으로 기도와 식도를 어느 정도 분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식적으로 기도와 식도가 맞닿은 부분에 주의를 집중하여 그 사이의 벽이 견고해진다는 상상을 한다. 또는 공기가 드나드는 기도 쪽의 문을 걸어 잠근다는 상상을 해볼 수도 있다. 그 상태에서 고개를 뒤로 살짝 젖힌 뒤 물을 충분히 머금는다. 알약의 양이 많을수록 입 안 물의 비중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많이 머금어야 한다. 알약을 한꺼번에 모두 입에 털어 넣은 후 고개를 뒤로 더 살짝 젖혔다가 튕기듯 앞으로 가져오면서 반동과 함께 꿀꺽 삼킨다. 머뭇머뭇해서는 안된다. 만약 삼키기 직전 조금이라도 망설여진다면 멈춰야 한다. 이 짓거리를 무리하게 실행하다 사레가 들리거나 알약이 목구멍에 걸리는 경험을 하게 되면 그 뒤에는 성공하기가 훨씬 어려워진다. 이런 경우는 목구멍과 정신이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다시 알약을 나눠 삼키는 단계로 내려가 연습을 좀 더 반복한다. 가장 바람직한 경우는 한 번에 삼키기를 처음 시도했을 때 성공시키는 것이다. 물론 처음 시도에서 단번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안전한 단계에 들어설 때까지는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 성급한 태도는 내려놓도록 하자. 연속적으로, 그러니까 대략 열 번 정도 실패 없이 한 번에 삼키기를 성공하게 되면 다음에는 더 이상 상상력과 집중력을 동원할 필요가 없다. 알약 삼키기의 달인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여기까지 쓰면서도 사실 의문이 든다. 이 방법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러니까 이런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알약을 한꺼번에 삼킨다 한들 인생이 크게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그딴 걸 연습할 시간에 차라리 다른 일을 하라고 할 사람이 더 많을 듯싶다. 하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생각을 달리 해 보기로 한다. 알약 삼키기를 조금이나마 중요한 일처럼 보이게 수 있다. 그러니까 '의미'라는 놈을 부여해 보는 것이다.

내 목구멍은 노화의 여파로 병약해져서 아이스크림도 마음껏 먹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었다. 반면 반복적인 연습으로 수십 개의 알약을 한 번에 삼키는 기술을 별무리 없이 습득하기도 했다. 나는 이 부분에서 약간의 희망을 보았다. 앞으로 늙는 일 말고는 그다지 특별할 게 없어 보이는, 단념과 포기가 빈번할 중년의 생일지라도 여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학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자꾸만 약해지고 고장 나기 시작한 신체라도 노력 여부에 따라 충분히 발달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본 것이다.

아이스크림 한입에도 지랄발작하는 늙은 목구멍이 이토록 유연하게 확장되어 단단한 알약 수십 개를 단번에 삼키게 된 것처럼, 나이 들어서 못한다는 타성을 내려놓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면,

그래. 이게 끝이 아닐지 몰라. 새로운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라, 이런 기대가 샘솟는 것이다.


keyword
이전 04화사십 대 싱글녀와 유부녀가 친구로 남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