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나 눈이 높구나. 그러니까 그 나이 먹도록 시집 못 가고 있지."
소개해준 분과는 가치관이 달라 만남을 지속하기 어렵겠다고 정중히 거절 의사를 전한 참이었다.
예상 가능한 잔소리가 이어진다.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웬만하면 눈 낮춰라, 깐깐하게 골라봤자 살아보면 다 똑같다, 남자는 나이 많아도 능력만 있으면 젊은 여자 만날 수 있지만 여자는 나이 들면 상품가치 제로다, 지금이라도 너 좋다고 해주는 사람 있으면 그저 감사합니다 해야 한다, 등등.
언제나 그랬듯 영혼 없이 네네 대답하며 쓰나미처럼 몰아치는 무례한 언사를 견뎠다.
"기껏 알아봐 줬더니 헛수고했네. 너 눈이 그렇게 높으면 다음엔 남자 소개 못 해줘."
오지랖은 정점을 치달아 거의 협박조에 가깝다.
'저기요. 애초에 그쪽한테 누구 소개해 달란 부탁을 한 적이 없거든요. 그리고 노처녀라고 취향도 가지면 안 되나요? 대충 결혼할 거였으면 이미 예전에 하고도 남았다고요.'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말을 꾹 누른다. 이런 반박이 상대에게 먹힐 리 없다는 사실을 수차례의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성질머리가 그 모양이니 시집을 못 갔다는 소리까지 덤으로 들을 수 있다. 그런데다 이제는 누군가의 뿌리 박힌 관념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지는 일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알고 있다.
결혼에 대해 저런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의견에 과거에도 그랬지만 현재까지도 동의하지 않는다. 인류 최초의 결혼이 언제였는지 불분명하지만 수렵시대부터 가족을 구성하기 시작했다는 설을 따른다면 역사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오래되었다. 결혼은 관습이다. 그 말인즉슨 대다수의 사람은 결혼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어서 그것을 하고자 함에 왜?라는 질문 자체를 던지지도 않는다는 뜻이다.
요즘은 자발적 비혼을 선택하는 인구가 과거에 비해 꽤 늘었지만 편견 어린 시선은 여전하다. 때 되면 대학 가고 취업하고 결혼하고 아이 낳아야 하는 프로세스가 여전히 정상, 내지는 일반적 프로세스로 여겨지고 그 외는 경로에서 벗어난 일탈 행위로 취급받는다.
왜 남들처럼 살아야 되는데?라고 물으면 돌아오는 대답도 비슷하다.
"다수가 가는 길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라든가, "그게 맞으니까 다들 그러고 사는 거야"라든가,
"남들처럼만 살아. 왜 굳이 다르게 살려고 해?"같은 말이다.
자신의 체면치레와 자식 사랑을 완전히 혼동하는 부모도 널렸다. "내가 부끄러워서 친구들을 못 만나" 라거나 "친척들이 너 결혼 안 하냐고 물어보면 내가 할 말이 없다" 이런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걸 보면 자녀의 결혼을 본인의 인생 도장 깨기 내지는 훈장 정도로 여기는 듯하다. 이제껏 낳아 키우고 결혼까지 시켰으니 내 할 일 다 했다, 나 정말 수고했다 같은 본인의 성취감이 우선이고 정작 아들딸 당사자가 어떤 마음인지, 행복을 느끼는 지점이 어디인지는 관심밖이다. 아무리 자식 위해서라고 포장을 한들 본질은 철저히 이기적인 마음이라고 밖에 할 수 없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혼과 자신의 성향이 잘 맞는지 여부나 가정을 꾸리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희생의 강도나 갈등과 문제 상황을 해결하려는 의지의 유무 따위는 깊게 숙고하지 않는다. 때가 되면 덩달아 결혼 안 하냐는 소리들을 해대고 일정 연령에 이르면 쫓기듯 너도나도 결혼 상대를 찾는다.
결혼은 누구나 알다시피 누군가와 여생을 함께 하겠다는 결정이다. 자신의 개인적 시간과 자유를 일정 부분 반납한 채 배우자와 삶 전체를 공유하는 여정이다. 전과는 백팔십도 다른 삶이 펼쳐지는 것이니 인생 전체가 흔들리는 엄청난 변화를 감내해야 하는 문제다. 이걸 그저 당연히 해야 하는 일로 치부한다고? 왜, 또는 어떻게라는 질문도 없이?
멀리 갈 것도 없다. 하다못해 피를 나눈 혈육도 함께 사는 게 견딜 수 없이 힘든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 별로 좋아하지도, 잘 맞지도 않는 사람과 대충 맞춰 살라니. 그게 되는 사람이 더 신기하다.
이쯤에서 정확히 짚고 가자. 나는 비혼주의자가 아니다. 혼자 사는 삶이 가정을 꾸리고 사는 삶보다 낫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삶은 누군가와 사랑하고 보듬고 의지하며 함께하는 삶이다. 그러니까 나도 졸라게 결혼이란 게 하고 싶다. 다만 전제가 하나 있다. '마음 맞는 사람과 함께'라는 전제다. 이게 중요하다. 가치관이나 생각이 맞지 않은 사람과 매일 한 공간에서 눈뜨고 생활할 것을 떠올리면 끔찍하다. 자체로 일상이 지옥이 될 듯싶다. 그럴 거라면 차라리 혼자 사는 편을 택하겠다. 그러니까 나는, '마음 맞는 사람'을 만나지 못해 지금껏 혼자 살아왔을 뿐이다. 세상은 넓고 널린 게 남자이니 이 지구상 어딘가 나와 맞는 사람 한 명 정도는 반드시 존재하리라 믿는다. 하지만 서로에게 끌려 연인으로 발전하고 남은 생을 함께 하기로 결정 내리기까지의 가능성, 서로에게 품은 호감과는 별개로 관계를 지속할 수 있게끔 하는 물리적 환경과 타이밍이 절묘히 맞아떨어지는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보자면 순전히 운이 작동하지 않는 이상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어찌 보면 대단히 희박하기까지 하다. 게다가 이 '운'만큼은 의지나 노력으로 어찌해 볼 수 없다. 운이 닿지 않는다면 어쩌면 좋은 인연이 찾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각오를 어느 정도 하고 있어야 한다. 나 같은 인간이라면 특히 그럴 수 있다. 애초에 집 밖엘 잘 나가지 않는 지독한 집순이 성향은 이런 부분에서는 크게 걸림돌이 된다. 이렇게 타고 태어나 버린 이상 지금에 와서 바꾸지 못하리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 부분도 받아들이기로 한다.
언제 만날 수 있을지 모를, 혹은 영영 만나지 못할 수도 있는 로또 같은 가능성에만 몰두한다면 내 인생은 불행할 뿐이다. 이렇게 된 이상, 이 문제에 신경 끄고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에나 집중하자,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는 사람이 되자, 삼십 대 중반 즈음 결심했다.
결혼을 못하는 사람은 이유가 있다는 말에도 백 퍼센트 동의한다. 이유는 다양하겠다. 어떤 조건도 필요 없고 아무라도 상관없는 사람인데도 결혼을 못하고 있다면 순전히 개인적 매력이나 능력이 '아무에게'조차 어필되지 않을 정도의 수준이라는 뜻이고 그렇다면 당사자가 자신의 가치를 올리기 위해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다른 경우는 타협이 좀처럼 안 되는 부류다. 이 부류가 백이면 백 '눈이 높다'는 소리를 듣는다. 사실일 가능성이 크다. 인간이란 무릇, 자신보다 가치가 높은 사람과 관계 맺고 싶어 하는 본능적 욕구가 있으니까. 동시에 이성적인 동물이라, 자신의 처지를 객관화하여 현실적으로 비슷한 짝을 선택하거나, 더 쉬운 방법으로는 아예 자신보다 가치가 낮은 짝을 만나기도 한다. 일종의 타협점을 찾는 것이다. 하지만 이놈의 타협이라는 걸 좀체 못하는 인간도 존재한다. 터무니없을 정도로 높은 수준의 상대를 바라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특이하거나 희귀한 조건을 바라는 경우도 있겠다. 나만 해도 배우자 상을 '마음 맞는 사람'이라 간략히 통칭했지만 이 얼마나 두리뭉실하고 애매한 소리인가? 결국 가치관과 기호와 성향에 일치하는 사람을 찾는다는 뜻이니 조건이 여간 까다롭다 해도 할 말 없다. 나를 포함한 이런 부류의 공통점은 결혼을 하기 위해 원하는 바를 낮추거나 버리는 쪽이 아니라 소신을 지키는 것이다. 그리고 응당 대가를 치른다. 나이가 차도록 결혼도 못하고 독거의 상태로 늙어간다. 외로이 혼자 늙어가는 것으로 죗값을 치른다. 대신 인생 살아줄 게 아니라면 이런 사람들은 그냥 내버려 둬야 한다. 이들의 결정은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는다. 남에게 상처를 주거나 해가 되지 않는다. 심각한 인격적 문제나 하자 있는 사람으로 깎아내리거나 저조한 출산율에 일조하는 사회악 취급을 하지 말아야 한다. 나이 들어서 외롭다느니, 늙어서 병들었을 때 수발 들어줄 자식은 꼭 있어야 한다느니, 결혼도, 아이도 안 낳아봐서 희생의 가치를 모른다느니, 충고를 가장한 그딴 소리 집어치우고 자기 인생에나 집중하기를.
내가 이 지랄 떠는 거 노처녀 히스테리 맞다. 노처녀 콤플렉스가 없다면 이렇게 빡쳐가며 반응할 일도 없겠지. 나는 노처녀가 확실하고 결혼하고 싶은데 못하고 있는 신세인 것도 맞고 혼자여도 괜찮지만 안 괜찮을 때도 있는 게 맞다. 가끔은 홀로 집안에 쓰러져 죽었는데 며칠 째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대문 앞에 파리가 들끓때쯤 옆집 사람의 신고를 받은 경찰이 문을 따고 들어와 구더기에게 반쯤 먹힌 내 시신을 발견하는 장면을 상상하는 것도 맞다.
자는 시간도 아껴가며 공부하라는 소리에 바르르하는 건 수험생 히스테리 맞고 여태 취직 안 하고 뭐 하고 있냐는 소리에 바르르하는 건 취준생 히스테리 맞고,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소리에 바르르하는 건 직장맘 히스테리 맞고, 집에서 살림만 해서 편하겠다는 소리에 바르르하는 건 주부 히스테리 맞고 나이지위성별 불문하고 꼰대라는 소리에 바르르한다면 자신이 꼰대가 맞음과 동시에 꼰대 히스테리가 맞다. 예시를 더 들라하면 한도 끝도 없이 들 수 있다. 앞에 열거한 상황에 단 한 번이라도 안 놓일 사람이 세상에 과연 얼마나 있을까? 그러니 우리는 남의 처지에 대해서는 그만 입을 닫고 각자 자기 할 일에나 신경 써야 한다.
보았느냐? 진정한 노처녀의 신경질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