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드는 건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아

by 모모루

며칠 전 카페에 앉아 있는데 바로 뒷 테이블에서 나누고 있는 대화가 들려왔다. 나는 읽고 있던 책에 여전히 눈을 박고 있었지만 어느새 귀로는 그 대화를 열심히 훔쳐 듣고 있었다. 대학생쯤 보이는 두 아가씨가 나누는 수다의 내용은 둘 중 한 명이 마음에 두고 있는 남자에 관해서였다. 짝사랑에 빠진 아가씨는 의문과 혼란과 흥분 속에서 갈팡질팡하고 있었고 건너편의 친구로 보이는 다른 아가씨는 짐짓 어른스러운 어투로 그 남자 앞에서 취해야 하는 행동 강령을 말해주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당사자는 순전히 자기중심적으로 상황을 해석하고 있었고 조언을 해주는 친구도 핀트를 잘못 잡고 있었다. 나는 어느새 진심이 되어 '아니지, 그걸 그렇게 해석하면 안 되지. 그럴 때는 말이야...' 하면서 속으로 열심히 훈수를 두게 되는 것이었다. 대화는 꽤나 바보스러운 구석이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유쾌했다. 짝사랑에 빠진 아가씨는 순진했으며 친구의 조언은 어쭙잖은 내용에 비해 지나치게 진지하여 귀여울 정도였다.

'좋을 때다.'

이런 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어리숙하고 세상물정에 어두울지언정 이것만은 확실하다. 정말 좋을 때야.





드라마 속 청춘 여주인공은 항상 내 또래였다. '여학생'이거나 '아가씨'였다. 그런 상태는 당연하고 익숙했다. 태어난 이래 거진 삼십여 년이 넘도록 어리거나 젊거나 둘 중 하나로 살아왔으니 그럴 만도 하다. 변화를 감지한 건 서른 중반을 넘기면서부터다. 미묘하게 시작된 변화는 시간이 흐를수록 분명해진다. 예컨대 회복되는데 단 하루면 충분하던 숙취의 여파가 며칠간 지속되거나 하루종일 높은 힐을 신고도 끄떡없던 발과 다리가 반나절을 버티지 못하거나 위장 기관이 명을 다한 기계처럼 삐꺽 대기 시작하더니 평소 즐겨 먹던 떡볶이도 잘 소화해 내지 못하거나 기타 등등,

이처럼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되는 일이 늘어나다 보면 생활 자체가 물리적으로 불편하기도 하지만 심적으로도 우울감이 든다.





다른 예시로 사진 찍기가 싫어지는 현상도 들 수 있겠다. 사진 속 내 얼굴은 이상하리만치 실제 인지하는 모습보다 훨씬 늙어 보인다. 거울의 곡면이 불량이거나 시각이 왜곡되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사진에 찍힌 상태가 실제 모습이라면 정말이지 낙담할 수밖에 없다. 셀프 사진 찍기는 점점 기피하게 되고 연신 풍경 사진만 찍게 된다. 아줌마와 아저씨가 허구한 날 꽃과 나무 사진을 찍어대는 걸 보며 의아했었는데 이제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이 정도는 그저 서막에 불과하다. 한 해 한 해 쇠약해지는 신체 부위는 전방위로 퍼지고 피부 탄력은 갈수록 떨어져 가며 새치의 출현은 예상보다 훨씬 일찍 시작한다. 이런 크고 작은 변화가 있더라도 적어도 나이 앞에 '3'을 달고 있는 동안은 '청년'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나를 그럭저럭 끼워 넣을 수 있었다. 마흔에 들어선 이상 이제는 빼도 박도 못하는 '중년'이 되었다. 드라마 속 사랑을 속삭이는 주인공들은 여전히 이삼십 대의 푸릇푸릇한 젊음 속에 머물러 있었지만 나는 더 이상 그들과 같은 또래가 아니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애 여럿을 낳아 줄줄이 데리고 다니는 동네의 아이 엄마들까지도 나보다 어리다는 점이다. 이 부분에서는 좀 돌아버릴 지경이다. 늙은 건 차치하고 나는 마흔이 넘도록 아이는커녕 결혼조차 못한 신세이기 때문이다.





젊음이 너무 당연하던 시절, 늙음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았는지 떠올려 본다. 꼰대, 주름, 흰머리, 고루함, 낡음, 뒤처짐 등등 부정적 이미지만 떠오른다. 사실 늙은 이들에게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 부러울 게 전혀 없었으므로 관심을 둘 이유가 없었다. 좀 서글프다. 중년에 들어선 나는, 여전히 젊은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아쉬움과 미련이 뒤섞인 선망의 시선이랄까? 요즘 젊은이들은 과거의 나와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궁금하다. 요즘 아가씨들은 어떤 옷을 입나? 뭐가 유행하고 있나? 또래끼리 어떤 대화를 나눌까? 내 사고방식이 소위 젊은 그들과 얼마나 다른지 궁금하면서 부디 큰 간극이 없기를 바란다.





이제는 정말 세상의 중심에서 한껏 멀어진 듯한 기분이 든다. 스포트라이트에서 서서히 멀어지는, 그러니까 환하고 밝은 빛 안에 머물다 점점 가장자리로 밀려나는 기분이다. 어떤 것도 기대한 만큼 채워지거나 완성되지 않았는데 겉 껍데기는 너무 빨리 닳아 사라지는 듯하다.

모든 나이가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질 줄 알았다. 스물의 내가 스무 살인 게 당연했던 것처럼.

법적 성인의 꼬리표를 달고도 한동안은 어린아이 마냥 무지하고 미숙한 채 헤매었지만 적어도 당시의 나이가 마냥 낯설지는 않았다. 세상의 중심이 꼭 나 같았고 어딜 가나 예쁠 때다, 좋을 때다, 한창 때다 같은 좋은 소리만 들었다. 물론 그런 찬사가 영원히 이어지리라는 기대는 하지는 않았다. 자고로 나이를 먹고 늙고 죽는다는 사실은 누구나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건 자연의 섭리고, 아직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영역도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라면 젊으면 젊은 대로, 늙으면 늙은 대로 각각의 나이가 되었을 때 그 상황을 당연하고 자연스레 받아들일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서른이 되고, 또 마흔이 되었을 때도 어느 한순간 그렇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시간은 거침없이 앞서 가는데 영혼은 언제나 한보씩 뒤처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기분이었다. 신기한 건 그런 기분이 나이가 들수록 더 심해진다는 사실이다. 순리대로라면 어떤 상황이 반복되면 익숙해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해가 바뀔 때마다 여전히 내 나이가 낯설고 변해가는 얼굴이 낯설다.

이런 감정은 비단 스스로에게서만 느끼는 게 아니었다. 오랜 기간 알아온 다른 사람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이제는 완전히 노인이 되어버린 부모를 봐도 그렇다. 당당한 어른이었던 그들은 이제 노쇠하여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지경이 되어버렸다. 미숙아로 태어나 부모의 과보호 아래 자란 집안의 막둥이였던 동생은 어느새 아줌마 특유의 억척스러움을 장착한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었다. 타인이 늙어가는 모습도 낯설게 느껴진다. 이런 기분을 떨치거나 완화할 방법은 없는지,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이도저도 못하게 완전히 늙어버리면 그때 비로소 받아들이게 될까? 마음이 편해지는 순간이 올까?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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