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 대 싱글녀와 유부녀가 친구로 남는 법

by 모모루

S는 원체 입이 짧았다. 우리가 친구로 지내 온 지난 이십여 년 간 그녀가 일 인분의 음식을 남김없이 먹는 모습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렇다고 먹기를 오로지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만 여기는 무식욕자는 아니었다. 보통의 여성이 그러하듯 그녀도 떡볶이와 불닭볶음면을 좋아했고 케이크나 도넛 같은 달콤한 디저트로 식사를 마무리하기를 즐겼다. 하지만 아무리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이라도 서너 입 정도 먹으면 젓가락이든 포크든 딱 내려놓곤 했다. 왜 음식을 매번 남기냐고 물으면 자신은 어떤 음식이라도 몇 번 먹으면 질려서 먹기 싫어진다는 소리를 했다. 아무리 배가 불러도 눈앞에 음식이 있으면 끝장을 보는 나로서는 상상도 못 할 이었다





대학을 졸업한 후 나와 S의 인생행로는 상당히 달랐다. 마흔이 넘도록 미혼인 채 해외살이를 하고 있는 나와 남편과 아이가 딸린 유부녀 S 사이에 이젠 가치관이나 이념체계의 공통점이라고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이라면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인연이 그러하듯 어느 지점부터 자연스레 멀어질 만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친구 관계를 굳건히 유지하고 있었다. 적게나마 남아 있는 몇몇 공감대의 끈은 여전히 나와 S를 단단히 묶어놓고 있었다. 이 공통의 관심사만큼은 지극히 순수하고 단일하여 어떤 경쟁이나 질투를 유발하지 않았고 정치적 의사와 이해관계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늙어서도 과자가 좋은 이유는 자극적인 맛이 좋아서만은 아니다. 배가 부르지 않기 때문이다. 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사실이다. 노화에 의해 소화력이 점차 떨어지면서 어느 순간 배부른 느낌이 괴롭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조금만 먹으면 되지 않냐고 반문할지 모르나 이 사안은 그리 간단히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배 부른 신호와 먹고 싶은 욕구 사이에는 이상한 간극이 있다. 포만감이 느껴져도 식욕이 사그라들지 않고 더 먹고픈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양껏 먹어도 소화에 부담 없는 음식을 찾게 된다. 소화 흡수가 빠른 정제 탄수화물의 대표 격인 과자는 그런 면에서 적격이다.

캐나다로 이주한 뒤에는 한동안 현지의 과자를 탐구하느라 열을 올렸지만 결론적으로 캐나다 과자는 내 입맛에 썩 맞지 않았다. 물론 한국 마트에 가면 다양한 한국 과자를 만날 수 있지만 종류가 몹시 한정적이고 가격도 놀랄 만큼 비쌌다. 나는 점차 한국 과자에 대한 일종의 욕구불만에 시달리게 되었다. 과자와 디저트 먹방을 하는 유튜브를 구독하고 다양한 경로로 신상 과자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한국에 갔을 때 꼭 맛봐야 할 과자 리스트를 작성하기에 열과 성을 다 했다.

이러한 사실을 주변에 떳떳이 드러낼 수는 없었는데, 어쨌거나 과자는 나이 마흔 넘은 여성이 취향을 운운하며 취미라고 떠벌리기에는 고급스럽지도 않거니와 성숙함을 드러낼 수 있는 품목은 아니기 때문이다. 가까운 지인 몇몇은 이런 내 취미 생활에 대해 알고는 있었지만 대개 성의 없는 반응으로 일관하거나 가끔은 애처럼 굴지 말라며 핀잔을 줄 뿐이었다. 다행히 한 줄기 해소 통로가 있었으니 바로 S였다.




S와는 열여덟에 같은 고등학교 동급생으로 만나 같은 대학에 진학하면서 가까워진 후로 무려 25년째 친구로 지내고 있었다. 비행기 조종사와 결혼하여 열두 살 된 딸을 키우고 있는 가정주부 S 역시 과자덕후였다. 앞서 묘사한 대로 S는 비록 극단적 소식가였지만 과자에 대한 열정과 관심만큼은 지대했다. 우리가 거의 매일 붙어 다니던 대학 시절, 수업을 듣다 출출해지면 나를 포함한 친구들은 백여 개가 넘는 계단을 오르내리며 매점을 가는 대신 S의 가방을 뒤지곤 했다. S는 과자나 초콜릿 같은 군것질 거리를 항상 가방에 챙겨 다녔다. 당시에도 그녀는 밥을 잘 안 먹었는데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처럼 과자를 입에 달고 살면 밥맛이 없는 게 당연했다. S의 과자 사랑은 마흔이 훌쩍 넘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었고 점차 발전하기까지 했다. 단순히 먹는데 그치는 수준이 아니라 과자를 선택하는 이유와 구매 과정에 나름의 철학이 깃들기 시작한 것이다.

S는 한 번도 먹어보지 않은 과자조차 입맛에 맞을지 어떨지를 단번에 알아보는 경지에 이르렀다. 과자 봉지 뒷면에 적힌 정보를 바탕으로 원재료와 조리 방식을 고려해 자신만의 기준에 부합하는 경우에만 구입을 했고 판단은 거의 틀리는 법이 없었다. 인기 있는 과자를 대할 때도 단순히 유행을 쫓는 소신 없는 태도로 일관하지 않았고,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를 직접 확인하고자 하는 주체적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출시된 지 꽤 시간이 지났지만 알려지는 데 실패한 숨은 보석 같은 과자를 발굴하기를 즐기는 선구자적 자세도 지니고 있었다. 사실 한국에 살았을 때도 과자에 있어서 만큼은 거의 S의 정보력에 의존했다. 내향형 집순이의 특질인 저질 체력과 병적인 귀차니즘 때문에 나는 어떤 대상을 열렬히 추종하더라도 적극적인 행동으로 옮기는 법은 없었다. 그러니까 신상과자를 누구보다 빨리 먹어봐야 직성이 풀리는 얼리어답터 계열은 아니었고 인터넷 정보만 모으는 방구석 여포에 가까웠다. 그런 내게 S는 과자계의 실력 있는 애널리스트나 다름없었다. 덕분에 가만히 앉아서도 끊임없이 최신 과자에 대한 정보를 얻어 들었고 S가 품귀 현상에 시달리는 인기 품목을 구해오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맛볼 수 있기까지 했다.





S의 과자 덕질은 중년에 이르러 정점을 찍고 있었다. 함께 덕질을 하는 입장인 나로서도 흠칫 놀라는 수준이었다. 일례로 그녀는 다른 곳에 일 보러 갔을 때조차 그 동네 편의점을 무슨 사찰 나가듯 꼭 들리곤 했다. 동네와 지점마다 입고되는 과자의 종류가 조금씩 다르고 여기에서 구할 수 없는 물건을 저기에서는 운 좋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언젠가 맛보고 싶은 과자를 동네 편의점에서는 통 찾을 수 없다는 불평을 했을 때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S는 마치 모든 걸 통달한 현자처럼 나지막이 속삭였다.

"우리가 어떤 옷을 사야겠다 마음먹고 쇼핑을 나가면 사려고 하는 옷을 찾지 못해서 그냥 빈손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잖아. 근데 그냥 구경만 해야지 하고 둘러볼 때는 어김없이 마음에 드는 옷이 눈에 띈다말이지. 과자도 비슷해. 어떤 과자를 꼭 사야겠다는 생각으로 마트에 들르면 항상 품절이거나 입고가 안 되어 있어. 근데 가끔 아무 기대나 계획 없이 무심코 가게에 들렀을 때 그 과자가 딱 진열대 위에 있는 경우가 있단 말이야. 그러니까 지나가다 과자를 살 수 있는 곳이 눈에 띄면 지나치지 말고 쓱 들르란 말야. 가벼운 마음으로. 이게 습관이 되어야 해. 알아들었어?"

나는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듯한 느낌에 휩싸였는데 그녀가 든 예시가 몹시도 설득력 있는 데다가 전체적인 내용이 철학적이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S는 과자 덕질을 통하여 삶을 관통하는 어떤 보편적 진리를 몸소 터득한 듯 보였다. 이때 과자에 있어서 만큼은 S를 영원히 이길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자각했다.





과자에 대한 대화를 할 때 나와 S는 농담 따위는 전혀 섞지 않고 업무상 미팅에 가까울 정도로 진지하다. 수다가 아니라 거의 토론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질문은 주로 내가 던진다. 맛이 어떤지를 시작으로 만약 전작이 있고 거기서 파생된 과자라면 전작과의 비교 분석은 물론이고 비슷한 종류의 다른 과자와의 차이점은 무엇인지 꼬치꼬치 묻는다. S는 평소 말이 많은 성격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가진 어휘력을 총동원하여 성심성의껏 답한다. 좋거나 싫은 이유가 명확히 정립되어야만 하는 내 편집증적 성격과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과자는 몸에 해로우니 먹지 말라고 말려도 모자랄 판에 지가 더 먹고 있다는 비난을 들을까 전전긍긍하는 아줌마의 억눌린 욕망이 만나 대화의 열기는 무척 뜨겁다.

각기 다른 나라와 정반대의 시간대에 살고 있는 중년의 여성 둘이 한 시간이 넘도록 토론을 벌이고 있는 대상이 고작 과자라는 사실을 자각할 때면 현타가 오기도 한다. 이 대화가 코미디로 비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가 과자회사 개발팀 직원이거나 적어도 회사의 정식 요청을 받은 소비자체험단 정도는 돼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S의 오랜 꿈이기도 했다. 둘이 맨날 하는 소리가 "과자회사는 우리 같은 사람을 채용하면 대박 날 텐데"이다. 나의 경우는 과자회사 직원보다는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절대적으로 크지만(물론 과자회사에 들어가게 된다면 일을 썩 잘 해낼 자신은 있다!) S는 더 진심이다. 실제로 온 영혼을 바치고 몸이 부서져라 일할 태세다.





S는 며칠 전, 출시 후 인기가 많아 좀처럼 구하기 힘든 먹태깡을 먹었다며 인증 사진을 보내왔다. 그녀가 먹태깡에 내린 평가는 '이 정도면 꽤 맛있다고 할 수 있지만 새우깡 블랙을 넘어설 정도는 아니다'였다. 그렇다면 새우깡 오리지널과 비교했을 때는 어떻냐는 질문에 S의 표현 그대로를 옮기자면 '맛이 더 풍부한 느낌이지만 그날의 기분과 입맛에 따라 순위가 엎치락뒤치락할 듯'이라고 했다.

뒤에 이어진 대화는 다음과 같다.

"어쨌거나 농심은 천재적인 발상을 한 거야. 먹태깡이라니. 그 어느 나라에도 없을 걸. 오직 한국인에게만 통하는 바이브야. 근데 그걸 캐치했어"

"그러니까. 농심은 개발팀한테 상 줘야 된다. 일을 참 잘하네."





글을 마치기에 앞서 최근, S가 극찬한 과자 하나를 소개할까 한다. 오리온의 '무뚝뚝 고구마칩'이다. 무뚝뚝 감자칩 후속이라는데 사실 나는 전작인 감자칩도 먹어보지 못했다. S는 먹태깡에 대한 감상보다는 무뚝뚝 고구마 칩에 대한 찬사를 더 길게 늘어놓았다. 나는 고구마라는 재료 자체가 예상 가능한 맛이라 그에 대해서는 시답잖은 반응을 보이고 먹태깡에 더 관심을 두었다. S는 먹태깡 따위는 집어치우고 무뚝뚝 고구마칩을 꼭 먹어봐야 한다는 열변을 토하면서 네가 이 과자를 무시한 순간을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 거라는 저주에 가까운 말을 내뱉기까지 했다. 맛이 어떨지 궁금하지 않은 게 솔직한 심정이지만 일단 먹어는 봐야겠다는 의무감이 들었다. S도 정보만 던져주면서 알아서 먹어보라는 식의 무책임한 냉혈한은 아니어서 조만간 먹태깡을 구하게 되면 고구마 칩과 함께 소포로 보내 주겠다는 약속을 곁들이는 사려 깊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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