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을수록 똑똑해지는 마법

by 모모루

방금 전까지 들고 있던 휴대전화가 보이지 않는다. 이놈의 것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지 놓아둘 만한 장소는 죄다 살펴봤지만 영 찾을 수 없다. 이제는 소파 사이와 침대 아래까지 샅샅이 뒤져야 할 판이다. 이대로라면 약속시간에 늦을 듯싶다. 마음이 조급해진다. 손에 들고 있던 외출용 가방과 옷가지를 바닥에 내려놓는다. 그러다 문득 겨드랑이 사이 뭔가 끼고 있음을 눈치챈다. 휴대전화다. 욕이 입 밖으로 비어져 나온다.


며칠 후 친구에게 이 일을 털어놓으며 점점 심해지는 건망증에 대해 하소연을 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친구가 대결을 신청하듯 입을 뗀다.

"나는 양말을 신다가 전화가 와서 통화하고 끊었는데 잠깐 사이에 신으려던 양말 한 짝이 없어진 거야. 방금 전까지 분명 두 짝 다 있었거든. 그래서 한참을 찾았는데 글쎄 양말 한 짝을 이미 발에 신고 있었던 거 있지."

짧은 침묵이 흐르고, 어때? 내가 이겼지? 하는 무언의 의기양양함이 전해진다.

실없는 웃음이 터진다. 이걸 다행으로 여겨도 될는지, 어쨌거나 나만 이런 건 아니라니 위로를 얻은 건 사실이었다.





노화로 인한 건망증에 대해 간과한 부분이 있다면 이 불행의 전조가 생각보다 훨씬 일찍 시작된다는 점이다. 거의 꼬부랑 노인이 됐을 때쯤에나 닥칠 문제라고 생각했지 사십 대 초반부터 이런 걱정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물건을 어디다 두었는지 찾지 못하는 건 둘째치고 누군가와 만나기로 한 약속도 까먹기 일쑤여서 전날 상대방이 확인 차 보낸 문자메시지를 받고 마음이 철렁 내려앉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상대가 상기시켜 주지 않았다면 아마도 만나기로 한 걸 까맣게 잊고 약속 장소에 나가지 않았을 게 뻔하다. 일정이나 많고 바빠서 그런다면 이해가 가지만 내게 누구와 만나는 약속은 달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었다. 그에 더하여 스스로 뱉은 말도 잘 기억나지 않아 "내가 그랬어?"라고 반문하기 십상이었고 이미 했던 얘기를 하고 또 하는 바람에 나도 모르는 새 상대방을 질리게 만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한심스러운 노릇이다. 하지만 이성적으로 따져보자면 이 수순은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어느 한순간에 뇌세포가 와르르 죽지는 않을 테니까. 이런 식으로 시작해서 천천히, 그리고 서서히 잠식해 가는 거겠지. 그러다 노년에 이르러 치매가 오는 거겠지. 여기까지 생각이 닿으면 씁쓸하다.





한참 우울한 소리를 해댔으니 이제는 다른 얘기를 해 볼까 한다. 나이 들수록 뇌 기능이 퇴화하는 건 맞지만 사고 능력 전체를 두고 봤을 때는 점점 똑똑해지기도 한다. 아이러니하지만 사실이다.

지나온 인생을 돌이켜 가장 나이가 많은 시점을 지나고 있는 현재, 나는 과거 어느 때보다 똑똑하다. 이런 기세라면 앞으로 점점 더 똑똑해질 듯싶고 그렇다면 미래가 기대될 정도다. 늘어가는 주름과 새치와 나잇살과 건망증은 절대적으로 싫지만 똑똑해지는 것만큼은 썩 마음에 든다.

똑똑해진다는 통합적 표현을 썼지만 이 변화를 세부적으로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사안과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확장됨

나 자신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짐

타인에 대한 이해도가 올라감

상황에 따른 대처가 유연해짐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음

새로운 변화나 도전이 예전만큼 두렵지 않음


당장 떠오르는 건 이 정도다. 여기서 말하는 '똑똑함'이란 연산이나 암기 능력이 뛰어난, 이른바 공부 잘하는 머리를 뜻하는 게 아니다. 메타인지가 높아진다는 소리다. 메타인지에 대한 정의는 다음과 같다.

자신의 인지적 활동에 대한 지식과 조절을 의미하는 것으로 내가 무엇을 알고 모르는지에 대해 아는 것에서부터 자신이 모르는 부분을 보완하기 위한 계획과 그 계획의 실행과정을 평가하는 것에 이르는 전반을 의미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또 다른 지적 능력 메타인지 - 나는 얼마만큼 할 수 있는가에 대한 판단 (생활 속의 심리학, 김경일)


메타인지를 구성하는 요소는 개별적으로 작동하는 게 아니다. 저마다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그러니까 하나의 기능이 발달하면 다른 기능도 함께 성장하고 반대로 하나가 고장 나거나 뒤쳐지기 시작하면 주변 기능도 퇴화한다. 이 변화가 발전이나 성장과 같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흐른다면 나이 들수록 점점 똑똑해지는 마법을 경험할 수 있다. 꼭 나이 들어야 가능한 거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생각한다. 지나온 과거를 돌이켜 봤을 때 경험이 쌓이는 속도와 마음속 그릇의 크기가 커지는 속도는 전혀 정비례하지 않았다. 마음은 언제나 머리보다 한발 늦어서 머리로 무언가 인지하고 이해했다 하더라도 마음에 와닿아 의식이 변하기까지는 항상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이는 과정이 어느 정도 지점에 이르러야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이런 단계를 거치다 보면 성취 면에서 훨씬 나은 결과를 낳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정신적으로 편안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전처럼 이해불가의 상태에서 거부하고 저항하는데 많은 에너지를 쏟지 않게 된다. 뭘 잘 몰랐을 때는 포기, 체념 같은 부정적 뉘앙스로 그 상태 받아들이며 좌절하고 낙담하기만 했는데 어느 순간 내려놓음으로 얻는 자유와 편안함이 무엇인지 분간할 수 있게 된다.





건망증 부분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노화 현상이긴 하지만 타개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대로 둔다면 생활이 불편해지는 것은 물론 메타인지로 한껏 끌어올려놓은 삶의 질을 다른 방향으로 떨어뜨릴 수 있다. 열심히 기록을 하기 시작했다. 꼼꼼히 메모를 남기고 일정표를 작성한다. 여전히 까먹고 잊어버리고를 반복하지만 메모 덕분에 큰 사고는 치지 않고 넘기게 되었다. 과학 기술의 덕도 본다. 스마트 폰은 이런 때 참으로 유용하다. 종이와 펜이 없어도 항시 메모를 남길 수 있으며 중요한 일정을 입력한 뒤 알림 설정을 해 놓을 수도 있다. 새로 장만한 스마트 워치의 가장 마음에 드는 기능은 휴대전화 위치 추적이다. 요즘은 휴대전화를 잃어버리고도 비교적 빠르게 찾아낼 수 있게 되었다.





다시 청춘의 시기로 되돌아가고 싶냐고 묻는다면 의외로 일초의 망설임 없이 대답할 수 있다.

돌아가고 싶지 않다.

늙는 게 싫다고 줄기차게 불평을 하고는 있지만 딱 한 가지, 점점 똑똑해지는 것만큼은 놓치고 싶지 않다. 과거의 무지하고 멋모르던 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들지 않는다. 더 똑똑해질 수만 있다면 늙고 추레해지는 신체적 변화 정도는 어느 정도 감수하겠다. 이런 생각이 들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젊은 날의 모든 조건이 지금보다 훨씬 나아서 자꾸 과거로 회기 하고픈 마음이 든다면 현재의 삶이, 또 앞으로의 미래가 불행하기만 할 텐데 그러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늙는 일에도 장점이 있어 참 다행이다.





keyword
이전 07화노처녀 히스테리 제대로 당해 보실라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