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도 늙는다

by 모모루

"에구, 네 손도 늙는구나."

오랜만에 본 엄마가 내 손을 보더니 문득 그런 소리를 한다.

"다 커서도 손만큼은 꼭 아기 손 같았는데..."

측은한 목소리로 엄마가 덧붙인다. 나도 새삼스레 손을 살펴본다.




애초에 내 손은 길쭉하고 나붓하진 않았다. 손 자체가 좀 작고 도톰한 편이다. 하지만 손등은 하얗고 매끈하여 그런대로 보기 좋았다. 손이 귀엽다는 칭찬도 가끔 들었다. 손이 변하기 시작한 건 서른 중반에 들어서면서부터다. 언젠가부터 손등 위로 파란 핏줄이 불거져 나오기 시작했다. 다른 신체부위는 군살이 붙어 고민인 와중에 유독 손만큼은 야위어 갔다. 다이어트를 하는 것도, 특별히 손을 많이 쓰는 노동을 하는 것도 아닌데 지방이 빠져나가고 손가락에서 손등으로 연결되는 뼈마디가 드러날 정도가 되었다. 그 바람에 푸르스름한 핏줄이 더 도드라져 보인다. 인터넷에 이 증상을 검색해 보니 '노화로 인해 피부 탄력이 떨어지고 피부 아래 지방이 감소하여 혈관이 도드라져 보이는 현상'이라고 뜬다. 의아하다. 피부탄력이 사라지는 건 이해하겠다만 피부 아래 지방은 도대체 왜 감소하는 걸까? 정작 살이 빠져야 할 배나 엉덩이는 나이 들수록 뚱뚱해지는데 되려 빠질 필요 없는 손등의 지방은 왜 저절로 빠지냔 말이다. 손가락이 길고 곧게 뻗은 손이 야위면 나름대로 여리여리하고 우아한 느낌을 줄지 몰라도 짧뚱하고 작은 손이 말라버리면 방법이 없다. 그나마 장점이던 복스러운 느낌마저 사라지고 볼품이 없어진다. 안 그래도 작은 손이 더 작아 보이니 원래도 좋지 않던 신체 비율이 더 어그러지는 현상이 일어난다. 멀리서 보면 큰 덩치에 전혀 어울리지 않게 작은 손이 달랑거리는 폼이 우스꽝스러워 보인다.




인터넷에서 팝스타 마돈나의 손이 포커스 된 사진을 본 적이 있다.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젊은 외모와 육감적인 몸매를 과시하고 있었다. 팔이 그대로 드러난 의상을 입은 그녀의 모습에서 유독 눈길을 끈 건 쪼글쪼글하고 푸른 혈관으로 뒤덮인 손이었다. 튀어나온 핏줄은 손등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팔뚝의 전체를 마치 거미줄처럼 휘감고 있었다. 사진 아래 달린 댓글들도 죄다 손이 징그럽다, 보기 싫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환갑이 넘은 사람에게 그 정도 손의 노화는 당연한지도 모른다. 하지만 늙은 손은 젊음을 유지하고 있는 얼굴이나 잘 관리된 몸매와는 전혀 매치가 되지 않아 부자연스러울 뿐이었다. 남에게 비치는 모습이 중요한 셀럽의 삶을 사는 그녀로서는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 외모를 가꿨을 게 뻔하다. 규칙적인 운동은 물론이고 갖가지 성형수술도 동원했을 테다. 하지만 손만큼은 어쩌지 못했다. 겉가죽은 잡아당기거나 뭔가를 집어넣어 팽팽하게 만들 수 있지만 피부 아래 혈관은 보기 싫다고 제거해 버릴 수 있는 부위가 아니니까 말이다.




나 또한 오래전부터 나름 피부를 관리하는 차원에서 주름방지 화장품을 단계별로 바르는 최소한의 노력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든 생각은 그동안 손을 간과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손도 얼굴처럼 관리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밤마다 얼굴과 목에만 바르던 고가의 안티에이징 에센스를 무슨 핸드크림마냥 손등에도 처덕처덕 바르기 시작했다. 효과가 없더라도 심적 안정을 위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기보다는 뭐라도 하는 게 낫다는 평소 신조에 따라 진짜 뭐라도 해보는 것이다.




엄마가 내 손을 언급했을 때 오랜만에 엄마의 손을 봤다. 나는 어리고 엄마는 젊었을 때의 엄마 손을 떠올려 봤다. 엄마는 손가락이 길고 곧게 뻗은 아주 예쁜 손을 가지고 있었다. 어린 시절, 내 손은 왜 엄마를 닮지 않고 이렇게 짧뚱한지, 엄마의 손을 물려받았다면 좋았을 텐데 이런 생각을 했었다. 이제 일흔이 넘은 엄마의 손은 완전히 노인의 손이 되어있었다. 온통 주름 투성이에 검버섯이 점점이 퍼져있었고 손가락 마디는 울퉁불퉁했다. 그걸 보고 있자니 늙어가는 내 손을 인식했을 때보다 더 슬퍼졌다. 지금의 나보다 더 늙어버린 엄마가 거기 있었다. 내 손은 그에 비해 여전히 젊었다. 벌써부터 손을 두고 늙었네 어쩌네 불평할 때가 아니라고, 아직 이만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엄마한테 미안해졌다. 엄마의 손을 보고 아직 저 정도는 아니라고 위안 삼는 내가 어쩐지 못되고 이기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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