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음을 논하기 적합한 나이

by 모모루

서점을 둘러보는데 매대 위 놓인 책 하나가 눈길을 끈다. <서른다섯, 늙는 기분>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책을 펼쳐보지 않고도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단박에 알 수 있다.

서른다섯이라...... 그래, 이제 슬슬 고민이 시작될 때지. 동시에 어떤 반발심이 고개를 든다.

이봐, 서른다섯이면 아직 한참 때라고. 적어도 마흔은 넘어야지......

문득 깨닫는다. 누군가는 사십 언저리에서 늙음을 논하고 있는 나를 보고 콧방귀를 뀌겠구나. 이봐, 네 나이면 아직 애송이라고, 하면서.




나이와 노화에 대한 담론을 다루기에 적합한 나이는 몇 살일까? 이 문제를 논할 자격에 대해서라면 나이가 많을수록 유리해 보인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덜 늙은 사람들이 노화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다. 서른을 목전에 둔 이십 대 후반을 기점으로 여전히 법적으로 청년에 속하기는 매한가지인 삼십 대는 물론이고 젊다고 하기도, 그렇다고 막 늙었다 하기도 뭣한 사십 대에 이르기까지 시끌시끌하다. 와중에 진짜 늙은 사람들은 잠잠하다. 그들이 표출하는 늙음에 대한 메시지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현재의 상황에 대해 만족하고 감사한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실제로 편안해 보이기까지 하다.




나 또한 서른이 넘기 전부터 청춘은 끝났다고 징징대기 시작했다. 노화의 낌새가 시작됐다 한들 현실 나이는 여전히 청년이었으므로 연장자 앞에서 좀 눈치를 보긴 했다. 마흔이 넘은 현재에도 이 짓거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변화가 있다면 과거보다 눈치는 덜 보여서 약간 대놓고 하고 있다. 제대로 늙기 전부터 왜 이리 말이 많은가에 대한 답은 이미 나와있다. 아직 덜 늙어서 그렇다. 말하자면 노화는 조만간 닥칠 재난이나 다름없다.

멀리서 토네이도가 다가온다는 소식을 듣는다. 처음에는 아예 보이지 않아 그런가 보다 한다. 저 멀리 작은 점처럼 무언가 눈에 띄더니 어느새 미친 듯 소용돌이치는 모양새가 그대로 관찰될 정도로 가깝게, 바람은 성큼 다가와 있다. 태풍이 그대로 덮치리라는 사실은 자명하지만 피할 방도는 없다. 두렵고 겁이 난다. 불안감을 떨치자니 자연스레 말이 많아진다.

그러니까 요즘 젊은것들이 늙었다 어쨌다하는 꼴을 영 마땅치 않게 볼 필요는 없다.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냐는 식의 반응도 접어두기 바란다. 잘 모르니까 불안하고 그러다 보니 주저리주저리 떠들게 되는 것이다. 종의 과도기를 거치는 중으로 질풍노도 같은 이 시기가 지나면 어느 순간 받아들이고 결국 잠잠해질 테다. 이 관점에서 본다면 이른 나이에 늙었다는 설레발은 삶의 몇몇 필수 관문을 통과하는 과정 중 일환으로 타당하다. 청년이든 중년이든 장년이든, 어느 누구나 이 문제에 대해 떠들어도 상관없다.




스물에 서른의 진입을 두려워했고 서른에 마흔의 진입을 두려워했다. 나이 앞자리가 바뀔 때마다 인생이 크게 요동칠 거라 걱정했지만 천지가 뒤집어지는 일은 없었다. 시간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으니 그저 받아들이며 삶을 영위할 뿐이다. 어제와 비슷한 오늘이, 그리고 내일이 이어진다.

이 모든 게 어쩌면 죽음을 대비하기 위한 준비 과정이 아닐까 싶다. 죽음에 대한 태초의 불안이 늙음과 함께 동행하고 있다. 죽음을 떠올리면 영원히 닥치지 않을 먼 미래의 일 같다. 하지만 언젠가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만큼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생은 어쩌면 가장 현명한 방법으로 인간을 대비시키는지도 모른다. 육신이 낡고 닳아가는 사이 정신만큼은 단단히 무장시키는 식으로 말이다.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대부분의 것이 당연한 게 아니고, 당연하지 않은 순간이 언제고 닥치는 경험을 다 보면 어느 순간 죽음도 순순히 받아들이는 상태에 이를 수 있을지 모른다. 늙음 그 한가운데에서 침착하고 담담하기를 소망한다. 뒤따른 죽음의 문턱을 건널 때 태풍의 눈처럼 고요하기를 바란다.

생의 끝에서 실제 이런 생각을 하고 그래서 덜 두려울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그저 추측만 할 뿐이다. 미리 경험해 보고 싶지도 않다. 그건 뭔가 부자연스럽다. 딱 현재 머물러 있는 시간과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올라오는 감정을 온전히 느끼기로 한다. 여전히 늙는 게 두려운 건 충분히 늙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그렇다면 아직 괜찮다. 지금은 늙는 거나 열심히 걱정하면서 덜 늙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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