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카이스트 공대 교수가 개발했다는 새치 케어 샴푸의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염색약처럼 화학적 작용으로 머리에 색을 입히는 게 아니라 바나나에 있는 폴리페놀 성분이 산소와 만났을 때 갈색으로 변하는 성질에 착안하여 만들었다는 샴푸였다. 이제는 진짜 새치 염색을 시작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중이었다. 독한 염색약을 사용하고 싶지 않아 염색만큼은 최대한 미루고 싶었던 차에 그 샴푸는 꽤 괜찮은 대체제 같아 보였다. 한국에 휴가차 들렀을 때 재빨리 그 샴푸를 구입했는데 한통에 무려 삼만 원이 넘는 비싼 가격에 충격을 받았다. 게다가 그것을 캐나다로 싸들고 가야 하는 실정이었는데 샴푸란 매일 쓰는 일상용품이므로 한두 통 가지고는 택도 없었다.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수십만 원의 거금을 들여 샴푸 여러 통을 구입했다. 샴푸 상자만으로 캐리어 하나가 가득 채워질 정도였다.
굴욕은 공항에서 벌어졌다. 캐나다로 돌아가는 날, 가방 하나의 무게가 넘는 바람에 졸지에 항공사 부스 앞에서 가방 문을 열어젖히고 짐을 다시 분배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만 것이다. 가방을 열자 그 안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거무죽죽한 빛깔의 새치샴푸 상자들이 그대로 드러났다. 항공사 직원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의 호기심과 의아함이 섞인 시선을 단박에 느낄 수 있었다. 저 샴푸가 도대체 뭐길래 저렇게 잔뜩 사갈까 싶은 눈치였다. 한국에서 샴푸 떼어다가 외국 나가 팔려는 사람같이 비쳤을 수도 있다. 창피함에 얼굴이 붉어진 채로 허겁지겁 물건을 처박듯이 옮긴 뒤 서둘러 캐리어를 닫았다.
새치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삼십 대 중반을 막 넘기면서부터였다. 하얀 머리칼 한두 개가 눈에 띄기 시작했는데 특히 내 경우는 관자놀이 옆 부근에서 집중적으로 시작되었다. 머리를 풀어 내렸을 때는 육안 상 크게 드러나지 않았지만 문제는 머리를 하나로 묶었을 때였다. 관자놀이 옆머리가 겉으로 드러나는 순간 드문드문 눈에 띄는 하얀 새치는 신경에 거슬릴 지경이었다. 대여섯 개에 이르는 그 머리카락들을 뽑으면서 나는 불길함에 사로잡혔다.
'너무 이르지 않나? 나는 고작 서른다섯이라고!'
노화로 인한 새치가 이토록 이른 시점에 시작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머리가 하얗게 세는 현상은 나이 듦의 대표적 특징이었으므로 적어도 사십 대쯤에나 시작하지 않을까라고 막연히 생각했을 뿐이다.
당시의 나는 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고단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캐나다로 이주한 지 이 년이 지난 시점이었지만 막 학교를 마치고 취업하여 고군분투하던 시절이었다. 직장과 일상생활 양쪽에서 막대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부족한 영어 실력으로 인한 소통의 어려움도 겪고 있었지만 한국 문화와는 여러 면에서 다른 이 나라만의 사회적 통념과 전혀 예상치 못한 구석에서 튀어나오는 생소한 관습을 습득하느라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전쟁 같은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돌아오면 온종일 쌓인 스트레스를 정제 탄수화물과 폭식으로 풀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신경성 두통과 비만과 역류성 식도염과 생리불순과 고지혈증을 얻고 말았다. 이처럼 건강이 완전히 무너진 상태였으므로 새치의 경우도 극도의 스트레스로 야기된 신체적 부작용 중 하나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이 힘든 시기가 지나가고 건강을 잘 관리하면 새치도 사라질 거라는 바보 같은 착각을 하고 있었다.
그즈음부터 같은 걱정을 토로하기 시작하는 친구들이 속속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떤 친구는 새치의 진행이 상당히 빨라서 이미 오래전부터 전체 염색을 하기 시작했다는 고백을 했고 어떤 친구는 새치는 물론이고 탈모까지 시작됐다고 토로했다. 나와는 달리 모두 자기 관리도 꾸준히 하고 건강했으며 생활 상에 별다른 문제없이 잘(?) 살고 있는 친구들이었다. 그러니까 이 문제는 단순히 내 개인적 신상에만 국한된,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었다.
노화였다. 노화는 치료할 수 있는 질병이 아니다. 그 말인즉슨 새치가 나기 시작한 이상 과거의 검은 머리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뜻이다. 이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삼십 대 이후부터 신체적 노화가 시작된다는 사실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말로만 들어 알고 있는 상태와 현상의 실체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것은 강렬함의 정도가 비교할 수 없이 달랐다.
이제는 사십 대 초반이다. 새치의 진행은 여전하다. 서너 개에서 시작했던 새치는 일일이 헤아리는 게 불가능할 정도다. 건강했던 머리는 특별한 이유 없이 메마르고 거칠어졌다. 아무것도 바르지 않아도 윤기가 흐르고 찰랑대던 머리칼은 이제는 머리를 감은 뒤 말리고 나면 온통 부스스하여 오일이나 에센스 같은 헤어제품을 바르지 않으면 도통 차분해지지 않는다. 게다가 머리를 한번 빗을 때마다 머리카락은 어찌나 많이 빠지는지 이제는 드디어 탈모의 시작인가 싶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은 치운 지 단지 몇 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어느새 다시 출몰한다.
공항에서의 굴욕적인 상황을 감수하고 한국에서부터 힘들게 싸들고 온 새치 샴푸는 참고로 드라마틱한 효과는 볼 수 없었다. 계속 자라나는 모발의 뿌리 부분은 샴푸가 닿아 갈변할 시간이 짧기 때문에 만족할 만큼 검게 변하지 않았고 그리하여 두피 부분의 새치는 그대로 희끗희끗하게 눈에 띈다. 요즘은 새치커버 스틱을 눈여겨보고 있다. 염색은 여전히 하기 싫으니 차라리 외출 전에 새치를 임시방편으로나마 까맣게 칠하는 편이 나을 듯싶기도 하다. 그 외에도 흰머리를 검게 만들어준다는 검은콩과 견과류를 수시로 먹어볼까 이런저런 궁리 중이다. 물론 이 또한 마법 같은 효능이 있을 거라는 기대는 없다. 하지만 아무 것도 안하는 것보다는 낫다의 정신으로 일단 뭐든 해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