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망가뜨리거나 혹은 구원하거나
지속성에 관하여
“고지혈증이네요.” 건강검진 결과를 훑어보며 의사는 말했다. 혈액은 점점 끈적해져서 언젠간 뇌나 심장 가까이의 혈관을 막게 될 것이라고,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대로 반신불수가 되거나 심장이 멎게 된다고 덧붙였다. 더 끔찍한 건 스타틴이라는 알약을 평생 동안 먹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아직 이렇게 젊은데 죽을 때까지 약을 먹어야 한다고요?”
의사는 그렇다고 답했다.
언젠가부터 생리가 제때 시작하지 않았다. 몇 달을 건너뛰다가 막상 시작하면 오랫동안 출혈이 멈추지 않았다. 산부인과 의사는 자궁내막 증식증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이대로 둔다면 자궁내막암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했다. 출혈을 멎게 하려면 자궁 내막을 긁어내는 소파 수술을 해야 하고 호르몬을 조절하는 루프를 손목 어딘가에 이식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그보다도 몇 달 전에 찾은 내과에서는 역류성 식도염을 진단받았다. 이미 오래전부터 위산이 역류하는 바람에 밤마다 제대로 눕지 못한 채 침대 머리맡에 비스듬히 기대 쪽잠을 청하고 있었다. 나는 마침내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이런 결과를 맞닥뜨리게 되리라 오래전부터 예감하고 있었다. 더 솔직하자면 진단받은 병명 중에 당뇨가 없다는 사실이 좀 놀랍기까지 했다. 몇 년 동안 과중한 스트레스에 허덕이고 있었고, 비만과 폭식증과 지독한 탄수화물 중독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지만 당시의 나는 뭐랄까, 완전히 자포자기한 상태였다. 의사들은 하나같이 내가 가진 병이 약을 먹거나 수술을 받는다 해서 완치되는 건 아니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나는 물었다.
그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놀랍도록 똑같이 답했다.
“체중조절하시고 운동하세요.”
지침은 아주 단순하고 명확했다. 어떤 반박도 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이미 모두 알고 있는 방법이었다.
일상 속 반복했던 작은 행위가 나를 어떻게 철저히 망가뜨렸는지 곰곰이 되짚어 본다. 기분이 가라앉거나 피곤할 때마다 초콜릿이나 과자를 집어먹었다. 재료를 손질하고 요리하기가 귀찮아서 식사의 대부분을 인스턴트와 가공식품으로 채웠다. 유난히 몸과 마음이 힘든 날이면 알 수 없는 허기에 시달렸는데 그럴 때마다 달거나 짠 음식을 폭식하곤 했다. 배가 터질 만큼 먹고 나면 무거워진 몸을 감당 못하고 그대로 드러누웠다. 쉬는 날이면 침대에 누워 꼼짝도 하지 않았다. 운동은 당연히 하지 않았고, 30미터 앞의 신호등이 초록색으로 바뀌어도 절대 뛰지 않았다. 평소 습관을 나열해 보면 혀를 끌끌 찰 수밖에 없다. 몸과 정신이 병들지 않으면 더 이상할 노릇이다. 억울하단 생각도 든다. 피곤하고 힘들면 누구나 다 그렇지 않나요? 이게 그렇게 큰 죄는 아니잖아요?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마약이나 도박에 손댄 것도 아니라고요.
항변할 거리는 많았지만 나를 만신창이로 만든 원인은 이처럼 사소한 습관이었다.
이후로 나는 가공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식품으로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외식을 줄였으며 빵이나 과자 같은 디저트 먹기를 중단했다. 늦은 시각에는 먹지 않았고 먹은 뒤 바로 눕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를 타는 대신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쉬는 날에는 일부러 약속을 잡아 외출을 했고, 약속이 없는 날이면 묵혀두었던 집안일을 하며 몸을 움직였다. 전의 생활 패턴과 비교했을 때 꽤 많은 노력이 수반된 변화였지만, 상식적인 시각으로는 남에게 자랑하기도 뭣한, 아주 평범한 일과였다.
어쨌거나 나는 그런 하루하루를 쌓아나갔다. 이쯤 되면 모두가 ‘생로병사의 비밀’과 같은 TV프로에 나올 법한 결과를 기대하게 된다. 예상대로 그렇게 좀 뻔하지만 한편 나에게만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 같던 결과가 펼쳐진다.
체중이 점차 내려가기 시작했다. 한동안은 걷기만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달리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5km 정도를 쉬지 않고 달릴 수 있게 되었다. 늦은 시간에 음식을 먹지 않아서인지 자려고 누웠을 때 위산이 역류해 목구멍이 타 들어가는 증상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덕분에 숙면을 취할 수 있게 되었다. 72시간의 단식을 한번 시도했다. 이틀째 되는 날 새벽에 엄청난 양의 설사와 하혈이 쏟아져 나와 이러다 쓰러지는 건 아닌지, 응급실에 가야 되나를 걱정했지만 아침이 되자 간밤에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멀쩡해졌다. 단식을 끝내고 딱 하루가 지난 뒤 자궁 내막을 긁어내는 수술을 받기 위해 수술대 위에 누웠다. 의사가 의아한 표정으로 그만 일어나라고 했다. 자궁 안에 더 이상 출혈이 보이지 않고 내막도 깨끗해졌으니 수술도, 호르몬 치료도 받을 필요가 없다고 했다.
일 년 뒤 받은 건강검진에서 결과를 받아보니 콜레스테롤 수치도 정상 범위로 내려가 있었다. 방법은 단순하고 사소했으나 결과는 실로 드라마틱했다.
무언가를 지속하기란 대체적으로 어렵다는 선입견이 있는데 한편으론 쉽기도 하다. 과거 나쁜 습관들은 사실 일부러 하려고 노력한 적이 없다. 그저 본능에 따라 하고 싶은 대로, 편한 대로 반복했을 뿐이다. 어렵기는커녕 내가 그런 선택을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식하지 못할 정도였다.
선입견 그대로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변화하거나 바꾸기 위해 무언가를 반복하는 일은 지난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과정은 대체적으로 절제와 인내가 동반되어야 하기 때문에 일종의 수련과 비슷하다. 나쁜 습관을 토착시키는 과정은 쉬웠으나 그것을 몰아내고 좋은 습관을 새로 장착하는 과정은 어려웠다. 하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고, 하기 싫은 욕구도 억눌러야 했으므로 자주 지치고 화가 났다. 매일 운동을 한지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아침마다 운동하고 싶지 않은 마음과 싸운다.
행동의 반복 너머에 자리 잡은 시간이라는 엄청난 복병을 망각하고 있었다. 시간은 지속성에 일종의 부스터 역할을 한다. 지속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힘은 점점 더 강력해진다. 또 다른 복병으로 사소함과 익숙함을 들 수 있겠다. 사소하다는 특성은 시작이 작고 하찮기 때문에 그것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일찍부터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 설사 알아차렸다 할지라도 감당하기 힘들 만큼의 죄책감이나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익숙함은 어떤가? 그것은 감정을 무디게 만들고 고통과 통증마저 무감각하게 만들어 버리는 힘이 있다.
모든 과정은 상대가 단박에 알아차리지 못하게 서서히 스며들고 은밀하게 침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들은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동일한 방법으로 가동된다. 모든 것을 망가뜨리거나 혹은 모든 것을 구원하거나.
지속하기의 힘은 위대하고 파괴적이다. 이러한 진리를 몸소 통과해 온 나는 스스로를 믿지 못하지만 지속성의 힘만큼은 믿는다. 이제 선택의 문제만 남았을 뿐이다. 전 생애와 사유의 방향성을 두고 나는 무엇을 지속할 것인가? 혹은 무엇을 지속하기를 멈출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