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날까지 나답게 살기로 했다(3)

by 하명환

버스에서 내리자, 너무나 바뀌어버린 서울 터미널이 눈에 들어왔다.


"서울에 올라온 게 언제가 마지막이었더라?"


어찌보면 당연했지만, 이곳은 이미 내가 알던 곳과는 너무나도 달라져 있었다.


"아들한테 연락하고 왔어야 했나?"


당연하지만, 기석에게는 내가 서울에 올라간다는 걸 아직 알리지 않았다.


깜짝 놀라게 해주려고 그런 건 아니었다.

그저, 내가 직접 찾아왔다는 사실을 내 입으로 말하는 게 부끄러웠을 뿐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이렇게 직접 서울 땅을 밟게 되니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출발하기 전만 해도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내가 찾아가는 게 맞긴 한 걸까?

그런 생각이 점점 머릿속을 채워가기 시작하자, 심장도 덩달아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나는 그저 서투른 아버지였을 뿐이지만, 아들에게는 그리 좋은 아버지는 아니었다.

그런 서투른 아버지가 할 수 있는 것은 적어도 부족하지 않게 키우는 것이 전부였다.


당연히 아들을 대하는 방범 같은 걸 잘 알리가 없었다.

그래서 더욱 미친 듯이 일만 했던 시기도 있었다.


이런 홀아비 밑에서 자랐다면 삐뚤어질 만도 했을 텐데, 삐뚤어지지 않고 똑바로 자란 것만 봐도 참 착한 아이였다.


"택시라도 타야 할 것 같은데... 왜 안 멈추는 거야?"


밖에서 지나다니는 택시를 향해 손을 들어 열심히 흔들어봤지만, 택시는 본채도 하지 않고 속도를 올리며 쌩하니 지나갔다.


"서울 인심이 옛날 하고는 다르다더니, 그래서 저렇게 매정한 건가."

"여기서는 택시가 안 서요. 택시 타는 곳이 따로 있거든요."


나는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거기에는 학생으로 보이는 여성이 가만히 서 있었다.

이 더운 날에도 땀 하나 흘리지 않는 창백한 피부가 참으로 인상적인 여성이었다.


"혹시 괜찮으시면 안내해 드릴까요?"

"그래주면 정말 고맙지."


나는 친절하게 말을 건네는 학생에게 고마움을 표시하자, 학생은 자신을 따라오라는 듯 몸을 돌려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하하, 참으로 고마워. 아직 서울도 정이 남아있었구먼."

"다들 바빠서 그렇지, 서울사람도 다들 친절해요."


내 별것 아닌 말에도 가볍게 웃으며 대답하는 학생.


"그런데 말씀하는 거 보니까 서울에 사는 분은 아닌가 봐요?"

"어어, 이번에 아들 좀 보려고 올라왔어."

"그러면 아드님한테 마중 오라고 하시지, 왜 여기서 혼자 그러고 계셨어요."


학생이 싱긋 웃으며 그렇게 물었다.


인상이 좋아서 그런가?

원래라면 남에게 않았을 자신의 속마음을 쉽게 말할 수 있었다.


"혼자서도 문제가 없을 줄 알았는데, 서울이 이렇게 바뀌었을 줄은 상상도 못 했어."

"여기는 바뀐 지도 오래됐는데, 진짜 오랜만에 오셨나 봐요."

"오래되었지... 거의 30년인가?"


아내가 죽은 지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서울에 있으면, 서울병원이라고 무조건 괜찮을 것이라 믿었던 내 안일함이 자꾸 떠올라 일부러 서울을 떠났던 것이 마지막 기억이었다.


그 뒤로 서울에는 일부러 눈길조차 안 줬는데 서울로 떠나버린 아들이 야속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아들 번호는 모르세요? 알면 제가 전화 걸어드릴게요."


그러면서 낡은 핸드폰을 꺼내는 학생.

누가 봐도 오래되어 보이는 것이 20년은 넘게 사용한 것처럼 보였다.


"아, 이거요?"


내 시선을 눈치챈 것인지, 학생은 부끄러워하며 핸드폰을 숨겼다.


"저희 집이 조금 엄해서, 폰을 잘 안 사주세요."

"젊은 사람이 늙은이보다 안 좋은 휴대폰을 쓰면 어떡하나."


그렇게 말하며 자랑스럽게 최신형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이게 우리 아들이 저번에 선물해 주고 간 거야. 자기 회사에서 만든 거라고 말이야."


전화 거는 법 이외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스마트폰이었지만, 아들을 자랑할 기회가 생길 때마다 꺼내는 물건이었다.


"아들이 대기업에 다니시나 봐요?"


그리고 그 물건이 아들이 서울로 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기도 했다.


"그럼~ 우리 아들이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회사에 다니지."


그렇게 말하고는 아차 하며 학생의 표정을 살폈다.

평소에도 이 씨에게 이런 짓은 하지 말라며 주의를 들었던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정말 자랑스러우시겠어요."


하지만, 학생은 불편한 기색도 없이 웃으며 그렇게 맞장구를 쳐줬다.

이 씨가 젊은이한테 그러면 무조건 싫어한다더니, 꼭 그렇지만도 않은 모양이었다.


"암 그렇고 말고. 정말 자랑스러운 아들이지."


야속할 때도 있었지만, 삐뚤어지지 않고 좋은 직장에 취직한 아들은 내 자랑이었다.

그렇기에, 마지막을 앞두고 이렇게 보러 가는 것이다.


"아 여기에요. 여기서 기다리면 택시가 곧 올 거예요."


그렇게 말하고는 꾸벅 고개를 숙이고 자리를 떠나는 학생.

그러자, 학생의 말대로 택시가 와서 내 앞에 멈췄다.


"이 주소로 가주쇼."

"네."


택시에 올라타 기사에게 주소를 말하자, 택시는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서울사람이라 그런가, 학생이 얼굴도 곱고, 그만큼 마음씨도 고운 거 같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오랜만의 서울의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한 탓에 피곤해진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런데 아까 그 학생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어디서 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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