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by 하명환

“ㅇㅇ님의 아드님 맞으시죠?”

“네, 맞습니다만...”


병원에 들어서자, 묵묵히 앉아있던 경비원이 내가 목적을 알리는 것보다 먼저 나의 신분을 확인했다. 최근에 방문한 적 없는 내 얼굴을 기억할 리는 없었으니, 병원 측에서 사전에 내가 도착한다는 사실을 경비원에게 전달한 것으로 보였다.


경비원은 어디론가 짧게 전화한 후, 병동에 들어갈 수 있는 통행증을 건네주었고, 나는 통행증을 목에 걸고 엘리베이터에 탑승하기 위해 기다렸다.


'띵~'


늦은 시간이라 엘리베이터는 금방 도착했고,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엘리베이터에 올라 아버지가 계신 층을 눌렀다.


"문이 닫힙니다."


이 병원의 엘리베이터는 닫기 버튼을 눌러도 반응하지 않았기에, 벽에 기댄 채 엘리베이터 문이 천천히 닫히는 것을 바라봤다. 그런데 천천히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 사이로 경비원이 나를 안타까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뭐지... 왜 저런 눈으로...”


불안한 마음에 경비원에게 왜 그러냐고 물어보려고 했지만 엘리베이터의 문은 굳게 닫히고 말았다.


'우우우웅~'


천천히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

하지만 엘리베이터의 속도하고 다르게 내 심장은 빠른 속도로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아버지가 계신 층에 도착하자 엘리베이터 앞에는 간호사 한 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30분 전쯤에 아버님께서 돌아가셨어요... 원래는 바로 전화를 드렸어야 했는데, 운전 중이라고 들어서 충격으로 운전에 지장이 생길까 봐 바로 연락드리지 못했어요. 죄송합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통보에 잠시 동안 간호사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오늘 나는 병원에 방문할 때마다 항상 들었던 '아버지는 다시 괜찮아졌어요'라는 이야기를 들은 후, 면회실에서 내가 누군지도 기억하지 못하시는 아버지와 몇 마디 이야기나 나누다가 근처에 있는 모텔에 가서 챙겨 온 노트북으로 아직 처리하지 못한 업무를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그랬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니...


아버지가 요양병원에 들어갔을 당시가 63세. 1년이 지났으니 지금은 64세로, 일반적이라면 현역에서 일할 나이였다. 게다가 아버지와 비슷한 나이임에도 나보다 더 건강하게 지내는 분들이 내 주변에 적지 않았기에, 요양병원으로 오는 동안 아버지의 죽음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었다.


“아버지... 보시겠어요?”

“네? 아, 네... 그래야죠... 네.”


간호사의 침착한 안내와 함께 도착한 구석에 있는 좁은 병실.


‘진짜로 텔레비전에서 보던 것처럼 하얀 천을 얼굴에 덮고 있네.’


그곳에는 하얀 천을 얼굴에 뒤집어쓴 사람이 누워있었다.


“천 치워드릴게요.”


그저 멍하니 하얀 천만 바라보고 있자, 간호사가 얼굴에 덮어져 있던 천을 치웠다. 그러자 내 눈에 들어온 건 평소에 자고 있던 모습과 크게 다르게 느껴지지 않는 아버지의 얼굴이었다.


"자리 비켜드릴게요."


간호사가 자리를 비우자, 나와 아버지밖에 없는 작은 공간은 비유가 아닌, 정말로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조용함이 찾아왔다.


아버지와 연결되어 있던 것으로 보이는 기계의 전원은 이미 꺼져있었고, 머리 주변에 설치된 모니터도 검은 화면만이 비춰지고 있어, 병실 안의 조용함은 더욱 무겁게만 느껴졌다.


그 소리없는 공간 속에서 아버지의 얼굴에 천천히 손을 올렸다.


아버지의 볼을 만지작거렸고, 얼마 있지도 않은 머리카락도 한 번 쓰다듬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가 놓았다를 반복했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아, 정말로 돌아가셨구나.’


아버지에게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4~5년 정도는 버틸 거라고 생각했는데...


요양병원 비용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빨리 돌아가셨으면 하는 못된 마음도 있었기에 아버지가 돌아가셔도 아무렇지 않을 줄 알았는데, 막상 이런 상황이 다가오니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처음에 전화 왔을 때 왔으면...

어제라도 왔으면...

오늘 조금만 빨리 왔으면...


무엇보다도 아버지가 가시는 마지막을 보지 못했다는, 한 마디조차 나누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결국 소리 없는 눈물이 되어 주르륵 흘러나왔다.


“이후에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아버지의 예상 밖의 죽음은 받아들였지만 처음 경험하는 가족의 죽음 앞에서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알 리가 없었다.


“장례식장 따로 알아보신 곳 없으시면 여기로 전화하세요. 바로 근처라서 바로 아버님 모시러 올 거예요.”


내 질문에 간호사는 익숙하다는 듯 전화번호를 하나 건네주었고, 그 말을 들은 나는 다른 분들의 수면에 방해되지 않도록 1층으로 내려가 전화를 했다.


잠시 후 간호사의 말대로 금방 달려온 응급차는 아버지를 싣고 장례식장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가까운 거리의 장례식장에 도착하자, 50대쯤으로 보이는 남자가 자신을 총무라고 소개하고는 나를 데리고 사무실로 향했다.


“아이고 젊은 나이에... 힘드시겠어요.”

“하하하...”

“아버지는 어디 사셨어요?”

“이 근처에 사셨어요.”

“그러면 동네 주민들이 좀 올 거 같은데... 얼마나 올 거 같아요?”

“글쎄요... 아마 많이는 안 올 거 같은데...”


나는 아버지의 상황을 떠올리며 그렇게 말했고, 상담하며 내 말을 가만히 듣던 총무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안타까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우리 아들이 딱 그 정도 나이라서 그런지, 진짜 남의 일 같지가 않아."


어느샌가 편한 말투로 바뀐 총무는 내가 많지 않은 나이 때문에 재산이 그리 많이 않을 것이라 판단하였는지, 최대한 저렴하게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말했다.


"사람이 없으면 1일장으로 해. 요즘엔 그렇게 많이들 하거든. 다행히 화장터 자리가 있네. 요즘엔 이것도 복인 거 알지?"

"네. 그렇게 할게요. 감사합니다"


듣기로는 화장터가 부족해서 어쩔 수 없이 길게 장례식으로 치르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총무의 말대로 운이 좋다면 좋다고도 할 수 있었다.


총무는 그 이외에도 음식, 수의 등등을 일사천리로 정한 뒤, 오늘은 늦었으니 푹 쉬라며 빈소로 안내했다.


그렇게 안내받은 빈소는 정말 깜짝 놀랄 만큼 좁은 곳이었다.


10명 정도가 한꺼번에 온다면 곤란할 정도의 크기. 지금까지 사회생활 등으로 장례식장을 몇 번 다녀봤지만 이 정도로 작은 곳은 처음이었다. 총무의 말대로 이 정도 크기라면 가격은 정말 걱정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그 뒤로 짧게나마 마트와 샤워실 같은 시설의 이용 방법 등을 설명한 총무가 자리를 떠나자 빈소에 혼자 남겨진 나는 그대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잠시 후, 자연스럽게 바닥에 누운 채로 동생에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렸지만...


“굳이 나까지 갈 필요가 있어?”


동생은 철이 들기도 전에 아버지 하고는 떨어져 살았기에 거의 남이나 다름없는 삶을 살았고, 평소에도 동생이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기에 강요 할 수는 없었다.


“굳이 안 와도 될 것 같은데. 편한 대로 해.”

“어, 생각 좀 해볼게.”


나는 착잡한 미소를 지으며 다음에는 친가 큰아버지에게 연락하여 지금 상황을 알리며 다른 친척분에게도 전달해 달라 부탁했다. 아버지 문제로 나와 친가 어르신들과의 관계는 그리 좋은 편은 아니어서 직접 연락하기는 좀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그래... 결국 그렇게 되었구먼... 알겠다."


큰아버지와의 짧은 전화 후, 이번에는 내 지인들에게 전화를 하려다가 너무 늦은 시간에 연락하면 서로 불편해질 수 있다는 총무의 조언이 떠올라 내일 연락해야겠다 생각하며 내가 잘 자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평일이기도 하고, 거리도 먼 탓에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하거나 아예 못 올지도 모를 내 지인들을 떠올리다가, 아버지의 지인들에게도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알려야 한다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아버지의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런 의문이 들었다.


아버지의 지인들은 장례식에 찾아올까?

온다면 과연 몇 명이나 찾아올까?

keyword
이전 01화아버지가 계신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