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전형적인 옛날 가정의 차남으로 태어나셨다.
그 시설이 흔히 그렇듯이 집안의 모든 것은 장남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그러다 보니 아버지에겐 학업 같은 건 꿈꿀 기회조차 없었고, 어쩔 수 없이 어린 시절부터 공장에서 일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성인이 된 아버지는, 계속된 실패로 집안의 재산을 소모하는 큰아버지와는 다르게 공장에서 배운 기술로 독립하여 자신의 회사를 차리는 데 성공했다.
덕분에 우리 집은 꽤나 부유했다. 정원이 있는 넓은 단독주택에서 살았고, 아버지는 사장님, 어머니는 사모님 소리를 듣는, 어깨에 꽤나 힘주면서 다녔던 시절도 있었다.
내가 6살이 되기 전이라, 내 기억에는 전혀 없는 이야기지만 말이다.
내가 어린 시절, 아버지는 큰아버지보다 큰 성공을 이뤄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큰아버지를 중심으로 돌고 있는 친가가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집에서 형한테 해준 것의 반만 나한테 해줬어도 난 더 성공할 수 있었는데!”
그래서일까?
아버지는 항상 자신의 성공을 주변 사람들에게 더욱 어필하고 싶어 했고, 누구보다 다른 사람의 인정에 목말라있었다.
“굳이 그렇게 해야겠어? 이제 곧 둘째도 태어나는데...”
결국 아버지는 사업을 크게 확장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겠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었지만, 어머니는 곧 태어날 내 동생 때문에 무리한 사업 확장을 반대했다. 이미 충분한 부를 축적했으니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안전한 삶을 확보하고 싶었던 것이다.
“여자가 뭘 안다고 떠들어! 난 더 크게 성공할 수 있어!! 그러면 곧 태어날 아이도 더 행복할 거라고!!!”
하지만 어머니의 반대에도 아버지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 성공한 탓에 자신을 위해 충고하는 사람의 중요함을 알지 못했고, 시대의 흐름을 보는 눈, 보려는 노력도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당연하게도 무리한 대출까지 받아 진행한 사업은 어마어마한 빚과 함께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아빠는 말이야, 형 때문에 부모님한테 지원도 못 받았지만, 혼자서 성공한 사람이야.”
“우리가 예전에 얼마나 큰 집에서 살았었는지, 아들은 어릴 때라 기억도 못하지?”
화장실이 없어 밖으로 나가야 하는 아주 좁은 집, 씻을 곳이 없어서 추운 겨울에도 주방에 쭈그리고 앉아 대야에 받아둔 물로 샤워를 해야 하는 것이 그 당시 우리의 모습이었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과거의 영광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과거는 과거일 뿐, 남아있는 빚을 갚기 위해 하루 종일 일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었고, 그 탓에 우리 가족은 여행은커녕, 그 흔한 외식조차 한 적이 없는, 좋은 추억 따위는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 굉장히 무미건조한 가족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나쁜 기억이라면 적지 않게 있었다.
아버지는 다른 사람들과 술 마시는 걸 굉장히 좋아했는데, 그 탓에 좋은 기억이 있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일 할 때는 묵묵한 사람이지만, 술만 먹으면 가벼운 사람이 되곤 했었는데, 특히 술만 먹으면 자신이 돈을 내려고 하는 버릇이 있었다. 처음에는 주변 사람들도 말렸지만…
“내가 거지인 줄 알아! 나 돈 있어! 무시하지 말라고!”
과거의 성공 탓에 가득해진 허세, 하지만 과거와 다른 자신의 모습에서 오는 자격지심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윽박지르며 불편하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던 아버지가 어느 순간부터 밖이 아닌 집으로 사람들을 데려와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나가서 먹을 돈이 없으니까.
집에 찾아온 손님을 위해, 어머니는 늦은 시간까지 어린 동생을 등에 업은 채 요리를, 나는 늦은 시간까지 어른들의 술과 담배 심부름을 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지금이야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 당시에는 어린아이가 부모님의 술, 담배를 대신 사 오는 것은 매우 흔한 모습이었다.
그 좁은 방에서 성인 남자들이 늦은 시간까지 술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환경이 어린 나에게 좋은 환경일 리가 없었다. 덕분에 지금까지도 술과 담배는 입에 댄 적도 없을 정도로 끔찍하게 싫은 환경이었다.
그런 모습이 못마땅한 어머니는, 아버지가 집에서 술을 마실 때마다 아버지를 비난했고, 아버지는 그때마다 집안 물건을 부수며 화풀이를 하는 등, 부모님이 싸우는 날은 점점 늘어만 갔고, 그렇게 우리 가족은 조금씩 삐걱거리며 무너져가고 있었다.
그런 아버지였지만, 능력만큼은 확실히 있는 분이었다. 그도 그럴게,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알만한 대기업에서 아버지에게 생산공장의 공장장으로 올 것을 제안할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아니었다. 그 공장이 꽤나 먼 지방에 위치한 공장이었기 때문이었는데, 만약 아버지가 공장장으로 간다면 아버지는 혼자 지방에 내려가야만 했다. 게다가 그 당시에는 지방까지 연결된 고속도로도 없는 탓에 자주 오고 갈 수도 없어, 혼자서 기러기 생활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아버지는 그다지 가고 싶어 하지 않았지만, 제안을 받은 당시, 나는 곧 대학에 갈 나이였다.
지금 상황에서 갑자기 큰돈이 필요한 상황은 내 대학 입학금 밖에 없는 상황. 그렇기에 나는 대학을 포기하려고 했었다.
“나 대학 안 가려고.”
“돈 걱정 하지 말고! 학생이 그런 거 생각하는 거 아니야! 아빠는 배우고 싶어도 못 배웠었으니 너는 대학에 꼭 가야 해!”
결국 아버지는 혼자 지방으로 떠났다.
하지만 나도, 집에 부담이 가지 않도록 장학금을 주는 지방대를 선택했기에 자연스럽게 집에 있는 시간이 줄어들었고, 게다가 아버지가 집에 오는 시간과 내가 집에 가는 시간이 맞더라도 아버지는 친구들과 술 마시러 나가는 경우가 더 많다 보니, 내가 아버지와 마주치는 시간은 점점 줄어만 갔다.
그래도 입대날 만큼은 아버지가 날 마중하기 위해 춘천까지 찾아왔었고, 난 오랜만에 얼굴을 봐서 마냥 기뻐했던 기억이 있다.
부모님이 이혼했다는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