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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다

by 하명환

이혼한 사실을 알게 된 건 전역을 한 후였다.


국가장학금을 신청하기 위해 서류를 제출할 당시, 부모님 기준으로 된 등본이 필요했기에, 여러모로 불편했던 아버지보다 편한 어머니께 서류를 부탁드렸다.


그런데 얼마 후 서류에 문제가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당연히 그 이유를 물었지만...


“가족관계가 아니시네요. 한번 확인해 보셔야 할 것 같은데...”


돌아온 답변은 생각보다 훨씬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지금까지 20년을 넘게 가족으로 살아왔는데 다른 사람한테 '너희는 가족이 아니라'는 말을 들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어릴 적부터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더니 그게 농담이 아니라 진짜였나?


"그게 뭔 헛소리야? 내가 배 아파 가며 낳은 자식인데. 어디서 그런 이상한 헛소리를 하고 있어?"


내 농담 섞인 질문에 어머니는 황당해하셨다. 다행히 나는 주워온 자식은 아니었다.


하지만…


“네 아빠랑 이혼했다.”


부모님이 이미 이혼한 사이라는 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 그게 무슨 말이야?

"이혼했다고. 그냥 그렇게 알아."

“아니 언제?”

“너 대학 입학하고.”


그것도 며칠 전도 아니라 몇 년 전에 말이다.


“나한테 왜 말 안 해줬는데? 동생은? 이혼한 거 알아?”

“뭐 좋은 일이라고 말하고 다니겠어? 창피하게. 네 동생도 알고는 있다.”


그 당시의 이혼이란, 불명예스럽고,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기 굉장히 창피한 일이었다. 그래서 나한테도 알리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지금은 너희 둘 다 아빠 밑으로 들어가 있지만, 네 동생이 성인 되면 다시 데려올 거야. 신경 쓰지 마.”


그날 밤, 나는 기숙에 침대에 누워, 소리를 억누르며 끅끅 울었다. 내가 2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갔다가, 전역하고 1년 동안 학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했으니, 이혼한 건 거의 5년 정도 되었다는 말인데, 그런 사실조차 몰랐다니.


그러다 갑자기 파노라마처럼 떠오르는 광경들이 있었다. 다시 생각해 보니 입대 당시, 부모님의 분위기가 매우 이상했다.


서로 굳이 가까이 가려고 하지 않는다던가, 서로 말이 없다던가.


평소에도 우리 집은 잦은 싸움으로 그런 분위기일 때가 많았다. 그래서 그냥 넘어갔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아버지는 지방에서 생활하고 있어서 싸울 일이 많이 줄어든 상태였다. 그런데 굳이 내가 입대하는 날에 그런 분위기였던 것은 이상했다.


그리고 그 분위기는 첫 면회까지도 이어졌다. 입대 당시와 마찬가지로 부모님의 분위기는 더 어색하고 서먹했지만, 이등병이었던 내가 다른 사람을 신경 쓸 여유 따위는 없었기에,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었다.


나중에 어머니에게 들은, 아버지와 이혼하게 된 계기는, 어머니가 반찬을 가져다주려고 정기적으로 지방에 가시는 일이 있었는데 그때 목격했다고 한다.


아버지가 다른 여자와 같이 살고 있는 모습을 말이다.


그 이외에도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우선, 외가 쪽 어른들은 당연한 말이지만 아버지의 외도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어머니의 동생이었던, 큰삼촌과 작은삼촌은 어머니께 그 사실을 듣자마자 아버지를 찾아가 주먹질을 하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외할머니는 침착하게 삼촌들을 타이르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등을 정해 어머니가 흔들리지 않도록 해줬다고 한다.


하지만, 외할아버지에게는 아버지의 외도 사실을 비밀로 하셨다. 삼촌들의 성격에서 알 수 있듯, 외할아버지도 굉장히 불같은 성격을 가지신 분이셨기에, 몸이 굉장히 약해져 있는 상태에서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큰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너네 아버지한테는 말하지 마라, 그러다 집안 풍비박산 난다.”


남은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판정을 받고 병원에 누워계신 외할아버지까지 굳이 알게 할 필요는 없다는 것도 외할머니의 판단이었다. 그렇게 외할아버지는, 끝까지 아버지의 외도 사실을 모른 채 편하게 돌아가셨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건, 친가 또한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야 이혼했으니까 알고 있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내가 놀란 부분은 이혼하기 전부터 아버지의 외도를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건, 이혼 사실을 알게 되고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고 나서의 일이었는데, 친할머니의 장례식에 친척들이 모였을 때였다. 그때 처음 보는 여성분이 검은 상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걸 보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내가 모르는 사람이구나 하고 넘어가려고 했었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이 그 여성을 부르는 호칭 때문에 그냥 넘어갈 수 없게 되었다.


“제수씨, 이것 좀 저기로 가져다줘.”

“새언니, 잠깐 쉬세요.”

“외숙모, 손님 오셨어요.”


이상한 감각이었다.

뭔가 혼자 다른 곳에 떨어진 것 같은 느낌.


친척들이 평소에 우리 어머니를 부르던 호칭이, 나는 한 번도 본 적도 없는, 모르는 사람에게 향하고 있었다.


그것도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친가 친척들이 그 여성을 내 어머니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대하고 있는 모습에, 인지부조화가 오는 것을 느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런 자연스러움은 한두 번의 만남으로 생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 친가 어른들은 물론, 사촌들까지 이미 그 사람과 자주 만났다는 뜻이기도 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이미 친가에서는 아버지의 외도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아버지의 외도를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모르는 척하거나, 묵인하고, 심지어는 응원까지 해줬다고 한다.


그 덕분인지, 아버지는 제사 때 바람난 여성을 당당하게 데려와서 친척들에게 인사시키기는 등, 가족 행사에도 같이 참가할 정도의 사이가 되었다고 한다.


정말로 믿을 사람 하나 없다더니, 어떻게 사람들이 우리한테 이럴 수 있는 건지. 심지어, 우리 집은 친가 친척들과 비교적 자주 만나는 편이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바람피운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아무것도 모르는 척, 아무런 문제도 없다는 듯이 나와 어머니를 대했다는 사실이 너무 무서웠다.


‘동생은 안 와서 다행이다.’


당시의 동생은 고등학생이라는 핑계로 굳이 장례식에 참여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혼한 상태인데 굳이 둘 다 갈 필요 없다고 생각한 어머니의 판단이었지만, 이런 꼴을 보여줄 바에는 안 오는 게 정답이었다.


'내가 굳이 여기 있을 필요가 있나? 그냥 집에 가면 안 될까?'


마치, 내 자리가 사라진 듯한, 이 어정쩡하고 불편한 느낌은 나를 힘들게 했다. 그저 한시라도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지만, 결국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눈치만 보면서 자리를 지켰고, 발인이 끝나서야 도망치듯이 그 자리를 떠날 수 있었다.


그 뒤로 아버지의 소식은 듣지도,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일부러 더욱 일에만 매달려 살았다. 그러다가 군대에 간 동생을 통해 아버지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동생이 소속된 군부대에선 의무적으로 아버지와 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을 관물대에 부착하도록 지시하고, 이를 지키지 않으면 벌점을 부과하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이미 호적이 어머니에게 넘어간 상태라 아버지는 굳이 말하면 남이나 다름없는 상태였지만, 한창 사춘기 때, 부모님의 이혼으로 받았었던 스트레스 때문에 동생은 군부대에 그 부분을 제대로 어필하지 못했고, 어쩔 수 없이 아버지에게 연락하고 찾아갔다고 한다.


그때 아버지는 처음 보는 여자를 데려와 엄마라고 부르라며 호통을 쳤다며 하소연했고, 그 일로 동생은 마음을 문을 닫고 아버지를 남처럼 대하기로 마음먹게 되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동생의 마음까지 잃어가면서도 엄마라고 부르라 했던 사람과 결국 헤어졌다.


아니 버림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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